"일본 엔카의 대부 '한국 가락에서 영감 얻어 작곡했다' 실토"

K트롯의 한류 열풍 기원하는전기제조업체 이경호 대표K트롯이 일본 엔카를 모방한 게 아니라오히려 한국의 전통가락이 엔카의 뿌리개인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2,000여 장의 유성기 음반 수집(SP·Standard Play)1910~1960년대 고음반1980년대 말부터 30년간 모아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한국 트롯은 한류 붐을 일으킬 수 있을까.’

경기도 고양시 일산킨텍스에서 열린 '2020 트롯어워즈'가 생중계되던 1일 밤. 포털 사이트 검색창에 ‘트롯’을 입력하자 '2020 트롯어워즈' 수상자들 기사가 속속 올라왔다. 특히 국민투표 100% ‘글로벌스타상'에 신인가수 임영웅이 득표율 54.65%로 수상한 소식엔 축하 댓글들이 붙었다. K트롯을 전 세계에 알릴 스타로 주목된다고 입을 모았다.

트롯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조선일보 계열사인 종합방송채널 TV조선에서 예능 프로그램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을 방송한 게 시발점이다. 이 분위기는 한국의 가요가 '제2의 한류'를 일으킬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내일은 미스트롯2'엔 세계 각국의 참가자들이 대거 지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미국과 이란, 미얀마, 모로코, 프랑스 등에서 지원자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팝송에서 느끼지 못한 다채로운 감정이 담겨 있다, 주현미의 꺾기 창법에 호감이 간다”고 했다.

이경호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성기 음반을 모은 수집가디.(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이경호 대표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성기 음반을 모은 수집가디.(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성기 음반 모은 수집가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의 '우울증 예방약'으로 떠오른 트롯 열풍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기업인이 있다.

전기제조업체를 경영하는 이경호(65)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이 대표는 개인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2,000여 장의 유성기 음반(SP·Standard Play)을 갖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30년간 1910년부터 1960년까지의 고음반을 수집했다. 30년간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를 정리한 주인공이다.

이경호 대표의 서울 강남구 대치동 집에는 1910~60년대 발매된 우리나라 유성기 음반들로 가득 차 있다. 실물로 전해지는 유성기 음반 중 가장 오래된 최초의 창가이자 대중가요인 '학도가'부터 한국 최초의 캐럴인 윤심덕의 '파우스트노엘'(1926)까지 소장하고 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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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은 사회변화상 알 수 있는 역사물

““유성기 음반은 60~70년 정도된 역사물로 볼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가수들의 음성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반을 통해 흘러간 역사와 변해진 사회상, 달라진 창법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대표는 단순 수집에 그치지 않고 각 음반의 역사적 가치를 평하고 노래 가사를 일일이 확인하는 작업도 해 왔다. 대중음악 평론가들과 진행한 포털사이트 지식백과의 ‘한국대중가요앨범’ 필진에 참여하고, 이 음반들을 토대로 대중가요 역사를 정리한 ‘대중가요 유성기 음반 가이드북’(안나푸르나 발행)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에는 거래가 500만원 이상의 A등급부터 20만원 이하의 E등급까지 다섯 등급으로 소장 앨범을 구분해 소개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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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손 제패가'엔 손기정의 육성 담겨

1923년에 나온 ‘학도가’는 당연히 A등급, 소설가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아름다운 희생’의 OST 미스시에론의 ‘청춘행’(1933)은 D등급(20만~50만원 선)이다.

이 대표가 꼽은 ‘가장 중요한 앨범 베스트 3’는 윤심덕의 ‘파우스트노엘’(1926), 채규엽의 ‘마라손 제패가’(1936), 1958년 영화 ‘지옥화’의 주제가인 송민도의 ‘양공주아가씨’다.

“‘파우스트노엘’은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입니다. 무척 귀한 자료지요. ‘마라손 제패가’는 손기정의 육성이 담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양공주아가씨’는 음반 전체에 그림을 넣은 ‘픽처 디스크’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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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우리 가수들 이미 일본서 활약

"K-POP의 위상이 근래에 갑자기 우뚝 세워진 것은 아닙니다. 이미 1900년대 창가 형태로 서양 음악이 소개된 이래 채규엽, 이난영, 강석연, 이애리수, 나선교 등 많은 기수들이 일본에서 활동한 저력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식민지라는 특수성이 있지만 일본에서 일본어로 음반을 내며 활동했습니다."

이경호 대표는 "해방 후에는 옥두옥, 김씨스터즈, 손시향 등이 미국에서 활약했다"면서 "많은 사람들은 트롯을 일본의 엔카를 모방한 노래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엔카의 대부인 작곡가 고가마사오는 한국의 가락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했다고 실토한 바 있습니다. 엔카의 뿌리가 한국이란 뜻입니다."

트롯이 엔카를 모방한 것으로 오해

이 대표는 "전에 이 뿌리를 찾고자 도쿄에 있는 고가마사오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면서 "하지만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의 그의 흔적을 철저히 지우고 언급하지 않아 실망했다"고 덧붙였다.

K트롯이 한류에 성공한다면 이경호 대표의 정성도 한몫한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2020 트롯어워즈'에서 팔순의 원로가수 이미자가 부르는 '동백아가씨'를 들으면서 이경호 대표의 사연을 정리해 보았다. 지난달 21일 서울 강남구 선정릉공원 인근에서 이 대표를 만난 뒤 이메일로 몇 차례 추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K트롯의 한류 가능성 충분히 가능

- '미스터트롯' 열풍을 계기로 K트롯의 한류 가능성이 거론됩니다만.

“'K트롯의 한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TV조선이 정말 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기획력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코로나19로 우울한 국민들에게 웃음과 흥을 선사하고 있거든요."

- K트롯 한류가 가능하다고 보는 이유가 궁금하네요?

"원래 우리는 노래와 흥을 좋아했던 민족이지요. 사실 방탄소년단 등의 K-POP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 받는 것도 갑자기 나타난 일은 아닙니다. 이미 일제강점기에도 우리 가수들이 일본에서 음반을 내며 활약했습니다."

- K트롯이 일본의 엔카를 모방한 게 아니라 그 정반대라면서요?

"일본 엔카의 대부로 불리는 작곡가 고가마사오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우리나라에서 청소년기를 지내며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했습니다. 그는 그의 음악이 한국의 가락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실토하였습니다. 엔카의 뿌리가 한국이란 사실을 밝힌 거지요."

'가수를 불러낸다'고 착각할 정도로 자연스러워

- 유성기를 언제 처음 접하셨나요?

“1960년대 서울 경동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서 우연히 유성기를 봤습니다. 당시 기계 고치고 만드는 동아리에서 활동할 때였지요.”

-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물건이 살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LP에서는 느낄 수 없던 물성(物性)이었지요.”

- 느낌이 확 다른가 보지요?

“‘가수를 불러낸다’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음악 재생’이 아닙니다. 실제 가수의 목소리 다음으로 자연스러운 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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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통해 나는 음악보다 '소리의 왜곡' 적어

- 유성기 음반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요?

“전축 소리보다 소리 원형에 가깝습니다. 전축 소리는 좀 더 섬세하고 고급스러을지 모르지만 유성기는 자연적인 확성방식을 활용하기에 전기를 통한 소리보다 왜곡이 적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 어떤 매력이 있을까요?

“사람이 부른 노래처럼 매번 그 음이 미묘하게 달라집니다. 이것이 유성기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음악을 재생할 때마다 음반 표면이 닳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지금 나오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는 두 번 다시 들을 수 없어요. 음반이 상할 수 있어서 아주 조심스레 유성기를 조작해야 합니다.”

- 그러면 전축과 유성기는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전축은 녹음된 매체를 카트리지를 통해 전기적으로 재생하는 기계입니다. 하지만 유성기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확성기와 같이 자연적으로 소리를 증폭하는 방식입니다. 레코드를 돌리려면 전축은 전기 모터를 사용하지만 유성기는 태엽을 손으로 감아서 풀면 됩니다.”

유성기 음반 수집가인 이경호 대표.(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유성기 음반 수집가인 이경호 대표.(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서 주로 구입

- 음반 수집을 시작한 동기도 궁금하네요.

“‘가짜 유성기’를 산 게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사를 창업하고 자리 잡을 무렵 인도 바이어에게 유성기를 부탁했지요. 유성기와 함께 외국 음반들을 함께 받아 데코레이션용으로 집안을 장식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본 한 전문가가 ‘가짜’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대로 공부하기로 마음 먹고 이 길로 들어선 겁니다.”

- 그래도 결정적인 계기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의 가수 채규엽의 음반을 많이 구입했습니다. 노래가 참 좋더군요. 그런데 아무도 그 이름을 몰랐습니다. 월북해서 그 존재를 잘 몰랐던 겁니다. 그 시대의 음반을 보존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 수집을 시작한 거죠.”

- 주로 어디에서 구입하셨나요?

“서울 황학동 벼룩시장에 많더라고요. 꾸준히 모으니 황학동 고물상들에게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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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대표가 집필한 '대중가요 유성기음반 가이드북'
이경호 대표가 집필한 '대중가요 유성기음반 가이드북'

'대중가요 유성기음반 가이드북' 출간

- 대중가요 연구자들과도 교류하셨겠네요.

“장유정 단국대 교수, 이준희 성공회대 교수, 배연형 판소리 학회장 등 전문가들과 소통하게 되었지요. 2000년대 초반 홈페이지를 만들어 음원을 공개한 게 계기였습니다.”

- ‘유성기음반 가이드북’을 집필하셨던데.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가 ‘대중가요 유성기음반 가이드북’을 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관련 자료를 받아 2탄 격인 ‘유성기음반 가이드북’을 직접 제가 쓰게 되었어요. 2년 전의 일입니다.”

- 어려움이 많으셨겠어요.

“발로 뛰면서 집필한 작품입니다. 책 구성과 집필은 물론 가사 채록, 음반 촬영까지 전부 제가 다 했습니다. 쓰는 데만 꼬박 2년이 넘게 걸리더군요. ‘이것도 책이냐’라는 말을 들을까봐 압박감을 받았지요.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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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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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이 일제강점기 겨레의 아픔 달래

- 유성기 음반을 모으시는 의의가 어디에 있을까요?

“유성기 음반은 1960년대까지 생산되었기에 최소 60~70년 정도된 역사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수들도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분들의 음성이 간직된 역사물입니다.”

- 역사적 가치가 크겠네요.

“물론이지요. 일제강점기 이난영 같은 가수들의 신인 시절 육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민족의 한이 소리로 남은 역사적 사료지요. 당시의 사회문화를 노래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는 게 큰 의미가 있을 겁니다. 우리 민족에게 힘겨운 시절이었지만 대중음악이 그 아픔을 달랬지요. 음반을 통해 흘러간 역사와 변해진 사회상, 달라진 창법을 알 수 있습니다."

- 우표 수집과 비교하신다면.

"우표 같은 경우는 그냥 눈으로 보는 감상에 그칩니다. 하지만 음반은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좀 더 생동감 있는 수집품입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유일한 캐롤 음반 '파우스트노엘' 소장

- 기억나는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시지요.

“윤심덕의 '파우스트노엘'이라는 음반은 아주 희귀한 유일본입니다. 제목의 의미를 몰라 골동품상에 2년동안 방치되어 있었지요. 이것을 싸게 구입했는데 알고보니 'First Noel'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었습니다. 이 음반이 유일하게 한 장 남은 우리나라 최초의 캐롤 음반입니다. KBS 프로그램 '진품명품'에도 출품되어 당시 1,000만 원으로 감정을 받은 바 있습니다.”

- 음반이 상할까봐 관리에도 신경 쓰일 것 같습니다.

“음반은 당시 얇은 종이에 넣어 판매하여 보관 자켓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판지로 자켓을 만들어 넣고 라벨을 붙입니다. 구입하자마자 초음파 세척기로 몇십 년간 묻은 때를 청소하여 보관합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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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양도하여 여러 사람 활용하길

- 음반을 감상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음반은 역사물입니다. 쇠바늘을 사용해 재생하기 때문에 손상이 많이 갑니다. 그래서 음반을 자주 듣는 대신 구입하자마자 특수장비로 MP3 파일을 만들어 감상합니다. 한 개 이상 보유한 음반은 가끔 감상하기도 합니다.”

- 100년 뒤, 200년 뒤엔 가치가 더 커질 것 같습니다.

“향후 박물관에 양도하여 여러 사람이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이 가지고 있기에는 2,000여 장이나 되는 부피가 너무 큽니다. 가치도 상당히 크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보관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사진=이경호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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