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점을 '코신부대' 지휘부로 바꾼 리더십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1966년 모택동이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남용해 군은 그 때 당시 고작 소학교 6학년생이었던지라 문화대혁명 참여에는 자격미달이었다. 남 군보다 한 살 많은 중학교 1학년부터 문화대혁명에 참가했는데 애매하게 왕따를 당한 기분이라 은근 서운했었다고 한다.

당시 초중1학년생들부터 왼팔에 ‘홍위병’이라는 붉은 완장을 두르고 대련합을 한답시고 이런저런 학생조직을 내왔다. 그들은 자나 깨나 모택동 주석의 접견을 받고자 다들 초록색 군복에 붉은 오각별이 빛나는 군모를 쓰고 허리에 혁띠까지 두르고 삼삼오오 떼를 지어 북경으로 향했다. 이 모든 게 그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던지라 그는 그 속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 빨리 1년이 지나길 기대했다.

어머니 황정자 여사는 넷씩이나 되는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밤낮없이 일했기 때문에 혁명이니 뭐니 하는 사회의 변화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남편인 남영철은 문화대혁명 시작을 앞두고서야 연길로 전근을 받아 일가족이 모여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연길시에 ‘홍색’과 ‘홍군’이라는 두개 큰 파벌이 생겨나면서 치열한 대립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대자보를 써 붙이는 형식으로 서로 공격하더니 차츰 입 싸움, 말 싸움으로 번졌고 나중에는 아예 무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격돌로 발전했다.

여기서 ‘홍색’은 반란파 조직으로 그들의 주되는 진압목표가 당시 중앙위원 겸 길림성 부성장에 연변주위 제1서기로 있던 주덕해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그에 맞선 ‘홍군’은 노동자혁명위원회라는 조직이었는데 이름 하여 주덕해를 보호하고 지지하는 보수파 진영이었다.

두 집단의 무차별적인 유혈투쟁이 가시화되면서부터 도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학교나 공장 및 사회구조 전반이 불꽃 튀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백화점이며 소형잡화점들이 죄다 ‘홍색’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서 반란파조직들의 ‘물자공급기지’로 변해버렸다. 당시 그의 집이 해방로 바로 옆 서시장 부근이었던지라 바로 문 앞이 불꽃 튀는 전쟁터였다.

별 생각 없이 그냥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문밖으로 나갔다가는 어디서 날아 온 지도 모르는 ‘돌총’에 머리통이 묵사발이 될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 그의 어머니 ‘황정자’ 여사는 워낙 바빴던지라 어느 조직에도 가담하지 않았지만 은근 보수파 쪽에 마음이 쏠려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큰아들과 남편이 보수진영 쪽에 가담해 있었으니 여하불문 아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전혀 내색을 내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는 복장업에 집중했다.

파벌 싸움이 지속되고, 격렬해지면서 그녀는 매일 바느질에 전념하면서도 아들과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면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양복점의 장아줌마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그녀에게 말했다.

“큰일 났어요. 지금 보수진영이 ‘홍색’의 고립과 타격을 받아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네요. 이제 더는 빠져 나올 수조차 없게 되었다는데 어쩌지요?”

그녀는 이 얘기를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아들과 남편이 ‘홍군’ 조직이었으니 말이다. 우리 가문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보수진영에 힘을 보태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정작 합심해서 나가 싸우자고 말하자 선뜻 응하는 사람은 없었다. 남편이 보수 진형이었던 장 아줌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내 자식, 내 남편이 위기에 처해 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이판사판으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들 내 말 똑똑히 들으시오. 지금 우리 집안의 세대주인 남편, 그리고 새끼들이 위험에 처했단 말이오.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나서주겠소? 우리가 모여앉아 안달복달한다고 길 가던 사람이 선의를 베풀어 줄 것도 아니잖소? 지금은 우리 어머니들이 나설 때란 말이오.”

그렇게 그녀는 겁 없이 사람들을 설득했고 그녀의 그런 모습에 힘을 입어 장 아주머니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주변에 아는 보수파진영의 아줌마들한테 연락을 취했다. 이제나 저제나 애끓는 속만 태우던 치마저고리 입고 코신 신은 엄마들이 하나 둘 복장점으로 모여든다. 어머니는 그들을 조직해 일단은 보수진영을 두둔해 반란파들과 싸울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 날부터 신흥가를 중심으로 하는 가도아줌마들이 하루가 멀다하게 그녀가 운영하는 복장점으로 모여 보수진영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한 수다를 한 바탕 떨고는 그 내용을 실천에 옮겼다. 복장점이 금세 보수파진영의 ‘작전 지휘부’로 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모인 엄마들을 누가 ‘코신부대’라고 처음 불렀는지는 모르나 그 ‘코신부대’가 순식간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던 것만은 분명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보수진영 쪽에 제 때 ‘탄약’을 공급할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중심엔 늘 황정자 어머니와 그녀가 운영하는 복장점이 있었다.

중국 조선족문단의 대표소설가 류원무가 쓴 《연변취담》이라는 책에 <코신부대>라는 글의 대목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온 사회가 동난 속에 빠지고 파벌성이 우심화되는 때 가두의 녀성들이 거리에 뛰쳐나와 대변론에 가담하였는데 그들 모두 코신을 신었다고 「코신부대」라고 불려진 것이다. 이는 코신 신은 여들에 대한 찬미이기도 했다. 그들 모두는 정의감에 불타 이악스러웠고 당찼다.”

‘총성’에도 꺾이지 않은 ‘모성’

계속되는 싸움은 가라앉기는 커녕 점점 심화되며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황정자는 집안에서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다렸지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아들의 생사가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자 도저히 앉아서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판사판으로 아들을 찾아보리라 마음먹고 반란파들에 의해 압송된 포로들이 갇혀있다는 복무대루를 향해 뛰어갔다. 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의 아들인 연변일중 학생들이 들어있냐고 물었고 또 어제 저녁 있었던 총격에 쓰러진 사람 중 학생이 몇 명이냐 있냐고 확인했다. 다행히 희생자는 모두 성인이었던지라 아들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한 연변일중학생들이 일부 연변병원 병동청사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알아내 아들이 그 곳에 있다고 판단이 서자 직접 병동 안에 들어가 내 눈으로 자식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리라 마음을 단단히 굳혔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그녀는 연변병원 병동청사 부근으로 가 그 주위를 맴돌며 안으로 들어갈 방도를 찾기 시작했다. 그 사이 무장을 한 반란파에게 걸려 저지를 당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도 먹었지만 그녀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반란파들은 대낮에도 병동 안에서 얼씬하는 기척만 나도 총질을 해댈 정도로 가차 없었다. 이런 살벌한 판국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고 끝끝내 병원 후문 쪽에 나있는 작은 입구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 입구를 같은 마음과 처지로 주변을 서성이던 두 어머니들에게 알렸고 같이 후문 쪽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입구에서 청사 대문까지 불과 60미터 거리였는데 그 사이를 무슨 정신에 뛰어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고 한다.

뛰기 시작하자 곧이어 총소리가 자지러지게 울렸지만 그들은 멈춰 서지 않았다. 그녀는 이판사판으로 뛰고 또 뛰어 끝내 포위를 뚫고 병동청사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이 동시에 출발해 뛰었는데 다른 한 어머님은 총에 맞아 쓰러져 끝내 따라서지 못했다.

청사 안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보수파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그 탄우가 빛발 치는 포연 속을 뚫고 들어 온 여인들을 보고 다들 초풍환장할 지경으로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회상하며 그의 아들 남용해 군에게 이렇게 말했다.

“설사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 병동 안으로 뛰어 들어가야 내 아들의 행방을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세상 아무 것도 뵈지 않더구나. 물론 자리러지게 짖어대는 총소리가 귀전에 아니 들린 건 아니지. 하지만 무슨 수가 있나? 여하를 불문하고 저 지하방공구 입구에 다달아야 내 아들의 행방을 확인할 수 있다는데…”

총싸움이 시작된 뒤로 병동엔 전기며, 전화며 다 막힌 건 물론 식량 공급마저 되지 않아 다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행방이 묘연한 자식과 남편을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이런 거사를 강행한 겁 없는 두 여인의 깜짝 출연은 청사 안에 갇혀있던 사람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청사 진입에 성공 후 한 어머니는 공포에 의한 정신착란으로 마구 헛소리를 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황정자 여사는 정신이 올롱해 들어서자마자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갇힌 사람 중 연변일중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천만 다행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