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무릅쓰고 동지들 도움될 방법 찾아나서 

비록 아들은 찾지 못했지만 황정자는 청사 안에 어떤 사람들이 갇혀있고 그들이 어떻게 반란파들과 대치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청사에 소금이 떨어진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얘기를 듣자 그들이 절박하게 원하는 소금부터 구해 주리라 마음먹었다. 보수파 리더들은 너무도 위험한 행동을 하려는 황정자를 말렸다.

하지만 어차피 포연 속을 뚫고 왔으니 기회를 노리다보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 그녀는 동지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모험을 자처했다. 그렇게 황정자는 다시 한번 극적 탈출에 성공했다. 휴대가 가능한 정도의 소금을 얻은 다음 새벽녘에 다시 청사 안으로 돌진했다.

손에 땀을 쥐며 기다리던 보수파 사람들은 무시무시한 사선을 겁없이 넘나드는 그녀를 보고 너무도 놀라 두 눈이 꿀 등잔만 해졌다. 비록 많은 양의 소금을 얻어다 준 건 아니지만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용감하게 소금을 가져다 준 그녀를 보수진영의 리더들은 ‘영웅’이라 칭송했다.

그녀의 용감한 행동은 단순히 소금이라는 물자를 지원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축 쳐져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

아들을 찾으러 갔다가 병동청사에 도움을 주게된 그녀는 사흘째 되는 아침, 지휘부 책임자의 부름으로 그를 만났다. 그는 병동청사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사항을 낱낱이 적어 당 중앙에 보고할 ‘고소문’을 작성했다. 그걸 북경에 가지고 갈 적임자로 황정자를 지목했다. 총탄이 빛발치는 곳으로 겁 없이 뛰어 들어온 여인이라면 그 어떤 험난한 상황이 들이닥친다 해도 거뜬히 임무를 완성할 거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고소문' 몸에 품고 북경으로 출발

황정자도 주어진 임무가 수백 명 고위급 지식인과 간부들의 운명과 관계되는 사명이기에 어련히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고 그날 밤 고소문을 몸 속 깊이 숨겨 야밤삼경에 나섰다. 또 다시 포위권과 총성을 뚫고 빠져나왔다. 

병동 청사는 뛰쳐나왔는데 어디로, 어떻게 북경에 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자칫 반란차에게 잡히면 고소문을 뺏기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경계가 삼엄한 연길역에서 기차를 타는 것 역시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황정자는 일단 밤도와 왕청 방면으로 걸음을 서둘렀다. 다음날 날이 밝을 무렵 왕청 기차역에 당도했지만 이미 반란파의 통제로 경계가 삼엄해 아예 발길을 돌려 락타산 쪽으로 길을 바꿨다. 마침 락타산에 본가가 있어서 그 곳에서 방도를 생각해 보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락타산은 간이역이었던지라 반란파들의 손이 닿지 않고 있었다. 그 곳에서 북경 방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한평생 바느질만 하며 살아왔던지라 북경행이 그녀에겐 처음이라 할 수 있는 출장길이었다.

그 살벌한 시대에 노래로만 알던 북경역을 찾기 위해 시위에 끼어 천안문을 지나는 방법을 찾아 중남해로 가는 방법을 택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시위행렬에 꼈다가 북경에 들어와 활동하고 있는 보수진영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시위대 행렬서 보수파측 인사 접촉...고소문 무사히 전달

그의 도움을 받아 국무원 산하 래신래방 접대실에 찾아간 황정자는 고소문을 무사히 전달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답장이 나오기를 계속해서 기다렸다. 황정자의 지극정성이 전해졌는지 접대실에서 끝내 당 중앙의 회신을 전해 주었다. 황정자는 다시 중앙의 회신을 품고 연길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중앙 지도부 회신 받아 품속에 넣고 다시 연길로 이동 

하지만 그 땐 이미 보수진영이 완전히 힘을 잃어 국자가가 반란파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연변의학원 병동청사는 반란파에게 모두 함락되었고 그 안에 갇혀있던 간부와 지식인들이 이미 잡혀 간 뒤였다.

황정자는 암담한 현실에 공든탑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 목숨을 걸고 사수해 온 당 중앙의 회신을 넘겨줘야 하는데 그것을 접수할 조직이 이미 사라진 뒤였으니 말이다. 그나마 그 사이 총격전을 피해 외가에 가 있던 큰 아들이 돌아온 걸 확인한 뒤에야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코신부대’ 멤버들은 황정자가 북경에 다녀왔다는 소문을 듣자 기울어진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아볼 심정으로 여러 질문들을 쏟아냈다. 북경 분위기는 어떤지, 당 중앙의 태도는 어떤지 등을 물었다. 그녀는 멤버들에게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당 중앙에서는 어디까지나 우리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들 신심을 잃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뭉쳐야 합니다.”

그렇게 두서없이 찾아오는 멤버들을 격려하며 근심을 위로했다. 그녀의 말에 고무된 멤버들은 너도나도 보수조직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주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당시 그녀의 복장점은 코신부대의 ‘사령부’로 활용이 되었기에 황정자의 위상은 대단히 높은 상태였다. ‘코신부대’ 멤버들은 그녀의 말은 ‘철칙’으로 믿고 따랐다. 그녀의 따뜻한 인품과 리더십 덕분인지 코신부대의 규모는 하루가 다르게 장대해졌다.

황정자 역할로 다시 일어선 ‘코신부대’

황정자는 이따금 코신부대 대원들과 비밀활동을 진행했다. 선전삐라나 대자보들을 거리에 붙이며 야간활동을 개시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잽싸게 몸을 숨기거나 도주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코신부대 멤버인 어머니들의 야간활동은 주도면밀한 준비로 작전 수행이 명확했다. 망을 봐주는 사람, 대자보나 표어를 붙이는 사람 등 업무를 잘 나누고 혹여 반란파들에게 잡혔을 경우 중국어를 모른다는 점을 살려 막무가내로 마구 들이대는 ‘작전’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잡혀갔던 보수 세력이 리더들이 풀려나오고 그들은 북경에 다녀온 그녀에게 소식을 묻기 위해 복장점을 자주 찾았다. 보수진영 리더들이 복장점에 모여 조직편성 회의나 사업 문제에 대한 토론 등을 진행하다보니 복장점이 보수파들의 사무국 역할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녀는 사무국이 된 복장점에서 리더들의 편의 지원을 위해 회의비용 분담과 식사 대접 등 편의를 제공하며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밀고로 반란파 조직이 가택 수색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황정자의 집에서 꽤나 많은 양의 삐라가 나오자 첫째 아들이었던 남용운 군을 협의분자로 지목해 잡아갔다. 다행히 황정자는 그저 가정주부로만 여기고 잡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이 잡혀가는 걸 가만히 지켜볼 황정자 여사가 아니었다. 반란파 조직의 사무실까지 쫓아가 "내 아들을 내놓으라"고 드세게 호통쳤다. 그들은 남 군의 몸에서 별다른 단서를 찾아내지도 못하자 그만 돌려보냈다.

선전삐라 대자보 붙이는 등 비밀활동 전개

보수파 조직은 이참에 시위를 조직해 사기를 북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그녀가 조직자로 나서게 되었다. 많은 이들이 다시 또 무장 진압을 당하면 더 큰 희생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그녀는 ‘코신부대’ 어머니들에게 이번 기회에 반드시 우리 여인들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그렇게 그 날 자발적으로 조직된 ‘코신부대’ 어머니 100여 명이 모여 해방로에서 출발하였다. 치마저고리를 입고 코신을 신은 어머니들이 표어를 들고 거리에 떨쳐 나와 구호를 부르면서 행진했다. 반란파들에게 무장진압을 당한 후 처음으로 있은 민중적 항의였다.

시위대오가 외쳐대는 구호 소리에 크게 놀란 반란파들이 총을 꼬나들고 거리에 뛰쳐 나섰지만 뜻밖에도 함부로 총부리를 겨누지 못했다. 그 대상들이 코신 신은 어머니들인데다 그 기세가 하도 사나웠기 때문이다. 시위는 더욱 규모가 커졌고 나중에는 100여 명 대오가 500여 명 대오로 크게 늘어났다.

시위를 계기로 연변에서 ‘코신부대’하면 얼마나 무서운 조직인지에 대해 이렇쿵 저렇쿵 전설 같은 미담들이 많이 나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번째 시위에 1,000명이 넘게 참가하면서 국자가를 들어놓았으니 말이다.

코신부대의 시위 활동과 발맞춰 보수진영에서도 공개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보수진영은 군사편제로 되어 있어 각 사에는 모두 사령원과 부사령원이 배정되어 있었는데 황정자는 ‘코신부대’의 리더이자 보수진영 총 지휘부 산하 상무위원 겸 제9사 ‘사령원’으로 선임되었다. 실로 대단한 영향력이었다.

코신부대 활약으로 시위대 1,000명 돌파

어느 날 연변군관회에서 연변 각 파벌 련합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대회주석단에는 여러 진영의 ‘사령원’들이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

연변의 최고권력자 최해룡이 ‘문화대혁명’ 가운데서 상호 분열이 된 대오의 대련합을 위해 각 파벌의 대표들을 접견하기로 되어 있었다. 보수진영 쪽에서는 어머님을 주석단에 추천했고 최해룡이 직접 황정자를 만나 ‘평화담판’을 진행했다. 당시 그녀는 보수파 조직을 부활시킨 공로자로 추대되어 주석대에 오르기도 했다.

대연합을 계기로 사회는 점차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무질서하게 결성되었던 민강성을 띈 여러 조직들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 한 단락의 역사를 만든 황정자는 정말 탄복할 수밖에 없는, 상당히 우람한 산 같은 존재였다. 아들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는 어머니 '황정자'는 그 다사다난했던 시대에서 말이 아닌, 실제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남편과 자식들에게 영화에서나 봐왔을법한 ‘영웅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