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교수(중국 중앙민족대학 박사생 지도교수)
조선족 동포 고 황정자 여사 일대기 그린
'국자가의 전설' 독후감 발표

"세상 살아가는 데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일깨워준 전기문
당신들 부모 키워낸 ‘우리 조선족 어머니’들이
거의 다 ‘못 말리는 어머니’들이었단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황유복 교수
황유복 교수

젊은 나이에 연변촬영가협회 주석 겸 길림성촬영가협회 부주석을 지냈던 사진작가 남용해 씨가 남하하여 기업인이자 사회활동가로 청도에서 활약을 보이더니 이번에는 책까지 써냈다고 하니 우선은 박수부터 보내 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 열정을 갖고 열심히 살아 온 사람이니 고래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책 한권 펴낼 만도 하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내 온 원고를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작자가 연변 태생임은 언녕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나 인생의 황금기를 산동반도를 구심점으로 살아온 건데 책 제목을 어찌하여 《국자가의 전설》이라고 달았는지가 궁금했다. 〈들어가는 말〉을 읽고 나서 그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었다. 실은 본인의 인생을 쓴 회억록이 아니라 92세에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황정자의 서민갑부 인생을 쓴 장편인물전기였다.

글의 주인공 황정자는 소꿉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유동성이 강한 아버지를 따라 목단강, 영안 일대를 거쳐 송눈평원에까지 가서 ‘소녀가장’으로 별의별 고생을 다 경험하게 된다. 그 와중에 북만에서 광복을 맞이하게 되어 이제는 살맛나는 세상이 도래한 줄로 알았는데 또다시 지방토비들의 기습을 받아 모든 걸 포기하고 구사일생으로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국자가로 귀환하게 된다.

장편인물전기 '국자가의 전설'
장편인물전기 '국자가의 전설'

18살 꽃나이로 국자가에서 한때 길동군구 후근부 피복공장에 들어가 전선원호에 열성을 보이게 된다. 하는 일마다에서 솔선수범하여 선진사업자로 표창장까지 받게 되는데 그 숙명적인 ‘무대’에서 평생의 반려를 만나 도문에서 결혼하여 신혼을 보내게 된다.

도문에서 세 아들의 엄마가 되고나서는 그냥 자식들을 대학이 있는 곳에 가서 공부시켜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막무가내로 도문의 집을 처분하고 보따리를 싸안고 연길로 이사를 왔다고 한다. 평생 학교 문에 가보지도 못한 여인이지만 ‘내 남편’, ‘내 가족’, ‘내 자식’을 향한 모성애와 일편단심만은 이 세상 어느 어머니하고도 비교가 아니 될 정도로 유별났었다.

그렇게 국자가에서 재봉틀 한 대를 마련해서 시작한 바느질이 평생 직업이 되어 그것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고 그것으로 네 아들을 의젓한 대학생으로 키워냈을 뿐만 아니라 남 씨 가문, 황 씨 가문의 기강을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살벌했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코신부대’ 사령원이 되어 연변의 ‘부녀운동’을 좌우할 정도의 파워를 보이기도 했던 겁 없는 ‘무대포’ 어머니다.

그런 어머니가 환갑 년을 넘긴 나이에 개혁개방의 봄바람을 맞아 다시 제2창업 인생을 시작하여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한 남 씨 가문이의 원조 CEO로 거듭났다는 얘기는 말 그대로 ‘전설’ 그 자체다.

남영철 황정자 부부 생전 모습.
남영철 황정자 부부 생전 모습.

이 책은 저자인 남용해 씨가 어머니를 하늘나라에 보내놓고 그 애절한 마음을 누그릴 길이 없어서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가문의 풍요로운 오늘이 있기까지 그 ‘유별난’ 세대주였던 어머니 덕이 절대적이었다는 메시지만은 후세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폰 ‘메모지’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내려 간 것이 책 한권 분량이 되어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고 한다.

창작동기가 단순해서인지 아니면 저자 본인이 조선족문화에 깊은 조예가 있어서인지 전편 문장이 꾸밈이나 화려한 수식어가 전혀 없음에도 독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숨은 매력이 있어 그 수십만 자 분량의 장편을 단숨에 읽었다.

기존에 책으로 나온 인물전기하면 역사에 획을 그은 위인이나 우국선열, 영웅모범인물의 일대기를 다룬 이미지로 일관되어 서두를 읽고 나면 그 결과가 뻔히 알려져 읽다가 덮어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자가의 전설》은 빈손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부를 창출한 서민갑부 어머니의 못 말리는 유별난 창업사를 다루고 있어서 한 장절 읽고 나면 그 다음 장절이 기대되어 ‘무대포’ 어머니의 겁 없는 질주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참으로 재미나게 읽었다.

역시나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쪽에서 나온 물이 그 쪽보다 더 푸르다’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와 남 씨 형제의 인연도 보통 인연은 아니다. 1992년 중한 수교가 되면서 중국조선족사회는 미증유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1994년부터 〈조선족발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과 워커숍〉을 개최하기 시작했다. 2008년 제13회 학술심포지엄은 남용해 회장의 지원으로 청도동방항공호텔에서 〈조선족사회의 변화와 발전〉이라는 주제로 개최하게 되었다.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남용해 회장과 내가 주필이 되어 북경의 민족출판사에서 공식 출판되었다. 그에 앞서 나는 2007년 4월에 국가 민정부의 인가를 받아 〈중국조선민족사학회(국가 1급)〉를 발족시켜 놓고 그 운영자금 중압감에 고민하고 있던 중 어느 지인의 소개로 남용해 씨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이 끈이 되어 북경에서 동화원이라는 기업을 운영하는 그의 동생 남룡 동사장과의 만남도 이어졌다. 그 뒤 남 씨 형제는 중국조선민족사학회의 초창기 멤버가 되어 물심양면으로 협회를 밀어주어 협회가 중국 전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겸비한 권위성학술단체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저자 남용해 선생
저자 남용해 선생

일 년 간의 준비과정을 거쳐 조남기 부주석 등 영도들을 명예회장으로 모시고 남 씨 가문의 셋째인 남용 동사장을 상무이사장으로 선임하고 내가 회장을 담당한 〈중국조선민족사학회〉가 2008년 4월에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남용 이사장은 본인이 시종여일하게 솔선수범을 보여 왔을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흩어져 있는 기업인들을 협회 주위에 묶어 세워 조선족사학회의 이론연구, 학술교류, 지식전수를 동반한 제반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겠끔 뒤받침을 해주었다.

남 씨 두 형제의 갸륵한 소행에 늘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살아왔는데 그 남씨 형제를 낳은 어머니의 일대기를 다룬 책에 서문을 써달라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어머니기에 그런 아들 넷이나 키워냈는지가 솔직히 궁금했다. 단숨에 책을 읽고 그 궁금증이 일소에 해소되었다. 책에서 볼라니 아들 4형제 중 맏이도 심수 보안구 하이테크단지에서 100기업 중 49위권에 들었던 실체를 운영하는 CEO인데다가 막내도 한 때 고향에서 잘 나가는 기업인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조련찮은 가문이라 하겠다.

그 배후에 남 씨 가문의 원조 CEO로 황정자 어머님이 계셨다고 하니 국자가에 또 하나의 ‘전설’이 생겨난 기분이어서 감개무량하다. 그 국자가의 ‘전설’이 지금은 산해관을 넘어, 황화, 장강을 넘어 ‘연경의 전설’로 ‘제로의 전설’로 ‘주강삼각주의 전설’로 거듭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 얼마나 무궁무진한가를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나는 이 책을 이 세상 모든 어머니들에게, 아니 이제 어머니로 될 ‘예비 어머니’들에게 특별히 권장해 드리고 싶다. 오늘날 당신들의 어머니 아버지를 키워낸 ‘우리 조선족 어머니’들이 거의 다 이런 ‘못 말리는 어머니’들이였다는 걸 뒤늦게나마 조금이라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2021년 11월 10일

북경에서

'황유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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