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충북 청주서 만주 이주한 남영철 선생의 손자 남지용 군
연길서 태어나 광동성 심천서 성장...북경대학교 합격
소수민족이 수석한 사례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셈
희망진로는 역사학자...미국 영국서 박사과정도 검토
컴퓨터 게임 좋아하고 놀기도 잘하는데 집중력 탁월
문과생이지만 수학 실력 훌륭해 수석하는 데 원동력
'성공한 조선족 사업가'로 유명한 동화원 남용 회장의 조카

남지용 군과 어머니 문정숙 씨.
남지용 군과 어머니 문정숙 씨.

친할아버지가 충청북도 청주 출신인 조선족 고교생이 중국의 대학입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수석(짱위엔, 壯元)을 차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태어나 광둥성 심천에서 성장한 심천중고등학교의 남지용 군(19)은 올해 ‘가오카오(高考)’에서 광둥성 지역 수석을 차지했다.

올해 가오카오에는 1천193만 명이 응시해 지난해보다 115만명이 늘어 역대 최대 인원을 기록했다. 광둥성에서는 올해 70만 명이 응시했으며 남지용 군은 문과 수석의 영광을 얻었다.조선족 등 소수민족은 (언어 구사의 한계 등으로) 문과에서 장원을 차지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중국은 지역별로 문제와 배점이 달라 전국 수석은 정할 수 없다. 다만, 매년 지역별 1등인 짱위엔(壯元)을 누가 했는지가 큰 관심사다.

남지용 군은 심천으로 이사한 5세까지는 중국어를 구사하지 못했다. 문과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수학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수석을 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남 군은 칭화대와 북경대를 저울질하다 북경대를 선택했다. 2학년에 올라갈 때 역사학과를 선택할 예정이다. 남용일 씨와 문정숙 씨의 2남 중 막내다. 미국에서 유학한 친형 남 양 씨는 미국에서 개발자(프로그래머)로 활약 중이다.

연길에서 촬영한 남지용 군의 어렸을 적 가족사진. 아랫줄 왼쪽 두 번째가 남 군이다. 아랫줄 오른쪽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지용 군, 아버지고, 뒷줄은 어머니와 형이다.
연길에서 촬영한 남지용 군의 어렸을 적 가족사진. 아랫줄 왼쪽 두 번째가 남 군이다. 아랫줄 오른쪽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지용 군, 아버지고, 뒷줄은 어머니와 형이다.

남지용 군의 조부인 남영철 선생(2011년 별세)은 일제강점기에 충북 청주에서 흑룡강성으로 이주한 뒤 길림성 도문과 연길에서 지냈다. 남북이 분단되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 즈음해서야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상봉 프로그램을 통해 가족 친척들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남 선생은 중국에서 황정자 여사(2022년 별세)와의 사이에 4형제를 두었다.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가로 기반을 잡아 ‘성공한 조선족 가문’으로 통한다.

1남은 헝디잔자제품회사의 남용운 회장, 2남은 청도코리아수정실업유한회사의 남용해 회장이다. 남용해 회장은 모친이 4형제를 성공적으로 키운 과정을 담은 전기문 ‘국자가의 전설’(지식과 사람들)을 지난 6월 한국에서 출간한 바 있다. 이 책은 조선족 동포들이 지난 세기 만주벌판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선 발자취가 담겨져 있어 드라마나 영화 제작도 검토하고 있다.

3남은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베이징동화원유한공사의 남 용 회장이다. 성공한 조선족 20인에도 포함된 바 있으며 현재 ‘충청북도 명예도민’이다. 4남은 남지용 군의 부친으로 연변약검소 약제사를 거쳐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남지용 군의 할아버지(오른쪽) 남영철 선생이 일제강점기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시잘의 모습.
남지용 군의 할아버지(오른쪽) 남영철 선생이 일제강점기 중국 흑룡강성 하얼빈에서 운전기사로 일하던 시잘의 모습.

남지용 군의 모친인 문정숙 씨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가오카오(高考)’에서 수석(짱위엔, 壯元)을 차지하는 게 쉽지 않은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문과에서 소수민족이 장원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긴 합니다. 집안의 경사지요. 조선족 사회에서도 난리가 났었지만 부모가 너무 자랑하는 것 같아서 조용히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알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2등 하면 괜찮은데 1등 하면 더 부담스럽습니다. 2등 하면 주목을 덜 받는데 장원하니까 더 주목 받는 것 같습니다.”

- 중고교는 어디를 나왔나요?

“심천중고등학교라고 광동성에서는 제일 이름이 있는 학교에 다녔습니다. 옛날에는 두 번째 였는데 지금은 제일 이름이 있습니다.”

-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나요? 역사학을 전공하겠다고 들었는데….

“역사와 철학에 흥미가 있습니다. 각 성에서 시험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북경대학의 원배학원에도 들어갔습니다. 이과 문과 같이 공부하는데 한 학기 지난 뒤에 전공을 선택합니다.”

남지용 군 모교인 중국 광동성 심천중학교 정문에 걸린 축하 현수막.
남지용 군 모교인 중국 광동성 심천중학교 정문에 걸린 축하 현수막.

- 지용 군이 학업 성취력이 좋았었나 봅니다.

“게임을 무척 좋아합니다. 놀기도 많이 하는데 집중력이 상당히 좋습니다. 그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문과생이면서도 수학을 특별히 잘합니다. 수학을 잘하니까 문과에서 상대적으로 점수를 더 많이 땄을 겁니다. 문과생들은 보통 수학을 잘 못하는데 지용이는 수학 실력이 아주 뛰어납니다.”

- 연길에서 심천으로 이사한 사연이 있었나요?

“첫째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옮겼습니다. 지용이가 다섯 살에 연길에서 심천으로 이사를간 건데 중국 말을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생도 많이 했지요.

남지용 군의 작은 아버지인 남용해 회장이 집필한 전기문 '국자가의 전설'. 조선족 동포들이 지난 세기 만주 벌판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는 일도 검토하고 있다.
남지용 군의 작은 아버지인 남용해 회장이 집필한 전기문 '국자가의 전설'. 조선족 동포들이 지난 세기 만주 벌판에서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국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는 일도 검토하고 있다.

- 할아버지가 한국 출신인 사실을 알고 있나요?

“어려서부터 심천에서 자라서 조선족,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은 별로 없을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주하신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사춘기여서 그런지 친구들과는 이야기를 많이 해도 부모와는 별로 대화를 많이 하지는 않네요.”

- 공부 말고 무엇을 잘하나요?

“피아노와 서예를 잘합니다. 소학교 때 전국 서예 대회에서 특등상 받은 적도 있습니다.”

-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버지 영향이 많습니다. 아버지가 역사를 좋아합니다. 원래 문과를 전공해야 할 분인데 이과(약학)를 전공했지요. 아버지는 옛날부터 역사책도 많이 보고 지용이와도 역사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역사를 전공하려는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클 겁니다.”

남지용 군을 지도한 교사와 함께. 어머니 문정숙 씨는 "지용이가 수석을 하는데 이 선생님이 가장 큰 도움을 주셨다"면서 고마워 했다.
남지용 군을 지도한 교사와 함께. 어머니 문정숙 씨는 "지용이가 수석을 하는데 이 선생님이 가장 큰 도움을 주셨다"면서 고마워 했다.

- 어느 분야에서 활약하면 좋겠나요?

“학자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중국 역사도 외국에서 더 많이 연구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으로 유학을 갈지도 모릅니다. 그곳에 중국사를 연구하는 유명한 학자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니면 북경대학에 남아서 석박사과정을 밟을 수도 있습니다.”

- 기대가 됩니다.

“이제 대학입학시험을 치르고 1학년일 뿐입니다. 대학에서 어떻게 될지,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 활약할지는 아직 모릅니다. 너무 일찍 소문나면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너는 2등 하지 왜 1등을 했니? 2등 해도 북경대학 갈 수 있는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 이과보다도 문과에서는 소수민족이 지역 수석(성 단위 1등)을 하기가 더 힘든가요?

“지방에서는 장원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도 조선족 학생이 이과에서 1등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성 단위에서 수석을 하는 건 진짜 드뭅니다. 10년, 20년 가야 있을까 말까 합니다.

흑룡강성에서 조선족 여학생(64년생)이 이과에서 성 단위의 장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현옥이라는 분인데 청화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아무튼 조선족 중에서 성 단위의 문과 수석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용이를 지도한 교사들도 ‘조선족인데 문과에서 이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남지용 군이 모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장면.
남지용 군이 모교에서 장학금을 받는 장면.

- 부모님께서 지용 군의 형도 잘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큰아들은 미국 아마존에서 팀장으로 일했습니다. 얼마 전 두 배의 연봉 인상 조건으로 새로운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교육했다기보다는 주변에서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운도 있었고요.”

- 지용 군이 한국에 온 적이 있었나요?

“할아버지의 고국인데 안 가 보았겠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가족이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친척 친지들도 한국에 많이 있습니다.”

(어머니 문정숙 씨는 남지용 군의 사진을 보내 달라는 요청에 ‘가족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고, 촬영해 놓은 사진도 볼품이 없고, 미남도 아니다’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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