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남영철, 꿈에 그리던 한국으로...50년만에 부녀상봉 '김포공항 울음바다'
기회는 ‘오는 게’ 아니라 ‘잡아오는 것’ 70년대 말에 접어들면서 황정자의 집 앞 거리가 보행로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워낙 비즈니스에 촉이 있던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가정집을 영업집으로 개조해 고가로 세를 주었다. 가정집이 영업용으로 용도가 바뀌다보니 집값도 껑충 뛰어올랐다. 그녀는 높은 가격대로 집을 팔아버리고 그 돈으로 다시 그 부근에 있는 더 쾌적한 아파트 한 채를 사들였다. 거기에 확장 공사까지 진행해 남씨 형제들은 ‘독집’ 같은 공간에서 활보하며 살게 되었다. 남 씨 형제들은 그 집에서 대학에 붙어 장성 안팎으로 뻗어나갔다. 큰 아들은 안상강철대학에, 둘째는 강서대학, 셋째는 1980년에 중산대학 일본어학부, 막내는 연변대학 의학원에 붙었다. 그 당시 연길시내 인구가 30만 명을 웃돌았는데 한 가문에서 네 아들이 다 대학에 붙어갔다는 건 희한하리만치 이슈가 되는 특종뉴스였다. 돌아보면 그녀는 참으로 원견성이 있는 여장부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