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특별전을 다녀와서

 지난 7월 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데이비드 호크니 특별전을 관람했다. 3월 말부터 시작한 전시회이지만 마지막 주간이어서 그런지 아침 10시 개장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2시간 정도 오디오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가며 관람을 마쳤다. 엊그제는 데이비드 호크니 영화를 보았다. 호크니의 예술과 사적인 인생 전반을 그린 영화는 대가인 주인공의 이력과는 달리 웬지 다소 건조하게 느껴졌다. 그는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비교적 일찍부터 성공의 길로 들어섰기에, 예를 들자면 극심한 궁핍 속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야 했던 반 고호같은 격정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도 반 고호의 삶을 그린 영화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보다 극적인 재미는 없었다.

​호크니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현존 예술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작품 활동 초창기부터 '현대' 미술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회적 리얼리즘을 거부하고 미국 작가 잭슨 폴록(1912-1956)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를 시도했고,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과도 교류했다.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로 건너간 호크니는 그곳의 이국적 분위기에 영감을 받아 광택있는shining 색감으로 표현된 아크릴화 작품 수영장 시리즈를 그렸고 정물, 인물 초상화 등을 제작하면서 대중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60여 년 동안 작품의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실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였다.

- "대중적 이미지와 과거 및 근대미술사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 등 다양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하는 호크니의 작품은 정물, 초상, 풍경 등 전통적인 대상들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무엇보다 재현reresentation과 원근perspective에 천착한다. 그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혁신적이면서도 모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2차원 평면 작품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회화, 판화, 드로잉 등 전통적인 장르와 더불어 최근에는 사진과 디지털 기술을 사용하면서 폭넓은 범주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 호크니 특별전 도록 13쪽 머리말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이 입장하고 있다

호크니 특별전을 보고 나서 느낀 몇 가지 단상을 적어본다.

우선 오디오 가이드 해설 마지막 부분에서 호크니가

"나는 향수에 잠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저 현재를 살 뿐이다" 라고 말했다는 멘트가 나오는데 정말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과거를 잘 잊지 못한다. 그것이 긍정적이고 화려한 것이든, 부정적이고 고통스러운 것이든. 그렇지만 역시 과거보다는 현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호크니의 생각을 빌려 다시 상기해 보게 된다. 이것은 작금의 우리나라를 보면서 한 국가에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역사를 잊은 민족,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지만 "과도한 역사 성찰은 미래의 활력을 빼앗는다"는 말도 있다. 후자는 긍정주의의 철학자 니체가 한 말이다.

1961년 작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
1961년 작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
1961년 작 "Queen"
1961년 작 "Queen"
1961년 작 "끌어안은 우리 두 소년"
1961년 작 "끌어안은 우리 두 소년"
1962 년 작 "베를린 사람과 바이에른 사람"
1962 년 작 "베를린 사람과 바이에른 사람"

두 번째로는 호크니 작품 사조에 대한 의문이다. 모더니즘modernism 사조에 속하는 건 틀림없겠지만 모더니즘이란 20세기에 들어와 지난 세기의 전통 예술을 거부하고 대두한 새롭고 진보적인 광범위한 분야의 예술이고 보면 이것만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가 팝 아트, 인상주의, 표현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미니멀리즘, 추상 등 여러 경향을 넘나들고 있음을 볼 때, 그의 작품 세계를 한 가지 특정한 사조나 시그니처 스타일에 붙들어 매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이긴 하다. 하지만 전반적인 그의 작품 경향을 볼 때 표현주의와 인상주의에 각각 접근하고 있으면서도, 작가의 내면을 중시하는 표현주의적 경향이 생애 전반의 작품을 통하여 꿈틀대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표현주의는 객관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예술가가 "보는 대로", 주관적인 상상과 결부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가 마티스나 피카소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나의 이러한 관찰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이러한 관찰의 타당성에 대하여는 전문가들의 평가에 맡긴다.)

숫자와 글자로 된 코드가 들어간 1961년 작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이라든가, 같은 해 그린 "끌어안은 우리 두 소년", 그리고 그림 속에 이니셜 eCR과 Queen이 쓰인 - e 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CR은 클리프 리처드를 나타내며, Queen은 게이를 뜻하는 은어이다.-에칭 작품 "여왕"이나, 유쾌하고 토실토실한 바이에른 사람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살집이 없고 유쾌해 보이지 않는 베를린 사람 간의 차이를 강조한 1962년 작 "베를린 사람과 바이에른 사람" 같은 작품들에는 표현주의의 "보는 대로" 그리는 작가의 내면적 세계가 강조되고 있다. 이에 반하여 로스앤젤레스 이주 후 1960년대 후반 그려진 수영장을 모티브로 하는 그림들과 1970년대 그려진 "클라크 부부와 퍼시", "조지 로슨과 웨인 슬립", "나의 부모님" 같은 인물화들과 1984년 그린 "아카틀란 호텔" 시리즈나 1998년 작 "더 큰 그랜드 캐니언" 같은 작품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실주의적 인상주의 경향에 접근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67년 작 "더 큰 첨벙"
1967년 작 "더 큰 첨벙"

 

1970년 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년 작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 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 / 2018.11.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최고 경매가인 9천만 달러에 낙찰
1972년 작 "예술가의 초상- 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 / 2018.11.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당시 최고 경매가인 9천만 달러에 낙찰

 

1977 년 작 "나의 부모님"
1977 년 작 "나의 부모님"

세 번째, 그의 작가로서의 성공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호기심과 끈질긴 관찰과 연구, 그리고 샘솟는 혁신적 창의력의 소산에 다름 아니다. 호크니는 페인팅, 드로잉, 판화, 수채화 등 전통적인 장르뿐 아니라 팩시밀리나 심지어는 컴퓨터와 아이패드의 드로잉 프로그램 등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더욱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나 런던의 오페라 하우스 외 다수의 오페라 무대도 제작하였다. 특히 새로운 매체에 대한 호크니의 실험은 계속 활발하다. 최근에는 3D 스캐닝 기술을 작품 제작에 활용하고 있을 정도다.

"호크니는 새롭게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와investigations of new ways of seeing and depicting 더불어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그가 혁신적인 작업을 하는 것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신이 바로 그를 오늘날 활동하는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의 위치에 서게 했다" - 호크니 특별전 도록 8쪽, 마리아 발쇼Dr. Maria Balshaw 영국 테이트 미술관장의 인사말에서

"대단히 실험적이고highly experimental, 조화롭지 않은 스타일inconguruous style, 회화적 전통pictorial conventions, 공간 개념concepts of space을 도입한 자기 지시적인 새로운 묘사 방식 new mode of self-referential depiction을 시도해 왔다." - 도록 17쪽에서

1998년 작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년 작 "더 큰 그랜드 캐니언"
2017년 작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2017년 작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3,000장의 사진을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이어 붙여 만든 사진 드로잉이다. 여기서 느껴지는 3차원의 움직이는 초점은 three- dimensional moving focus 시점에 대한 호크니의 원칙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실제로 다섯 명의 사람을 바라볼 때 거기에는 1천 개의 시점perspective이 존재한다" - 도록 246 쪽 에서 헬렌 리틀 테이트 미술관 큐레이터

네 번째, 그는 그림을 그렸을 뿐 아니라 책도 썼다. 2001년에 쓴 "비밀의 지식: 옛 마이스터들의 잃어버린 테크닉"이라든가 2005년에 쓴 자서전 "내 눈에 비친 세계" 외에 다수의 저작을 남겼다. 책을 많이 읽었던 빈 분리파의 기수 클림트와도 견주어 볼 수 있다. 이것은 그가 많이 생각하는 예술가란 의미다. 그의 생각은 그의 어록에 투영되고 있다.

- " 나는 내가 좋을 때 좋아하는 것을 그린다"

 

- " 새로운 방법으로 본다는 건 새로운 방법으로 느끼는 것이다"

 

- " 표현하려는 욕구는 우리 내면에 깊이 내재해 있다"

 

- " 궁극적으로 나는 자유를 얘기한다. 우리는 자유를 지켜야 한다"

 

 

 

참 공감이 가는 말들이다. 나는 최근 트위터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트윗을 팔로우 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말들에 무척 마음이 끌린다. 이런 것들이다.

"다가오는 날들을 하루 또 하루, 마치 기와 직인이 기와를 쌓아가듯이 참을성 있게 꼼꼼히 쌓아가는 것에 의해 이윽고 어느 시점에 "그래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작가야"라는 실감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또는 "이런저런 이유로 여름밤은 무더운 것이 좋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여름은 무더운 것이 당연하며 그것이 가장 평화로운 것이다."

다섯 번째, 그는 모험심 많은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끌어안은 우리 두 소년"에서 동성애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데 이 그림 속의 숫자와 코드는 미국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에서 가져왔다는데 바로 동성애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당시 영국에서 동성애자는 처벌했다고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 용기가 없고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들 수 있겠는가. 1961년 처음 미국을 갈 때도 비행기 삯을 걱정해야 했고 천신만고 끝에 두 달 정도 머무를 수 있는 여비만을 갖고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한다.

2011년 작 "월드게이트에서 봄의 도래"
2011년 작 "월드게이트에서 봄의 도래"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역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미술 세계에서 대가가 되는 중요한 전제가 다작을 남겨야 한다는 것인데 오래 살수록 유리하지 않을까. 피카소가 91살을 살았고, 루벤스는 63살까지 살았는데 당시 17세기의 평균 수명을 감안한다면 상당히 장수를 누린 것이다. 호크니가 1937년 생이니 이제 80 중반이 되어가는데 지금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호크니의 메세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호모 픽토르 데이비드 호크니는 산수(80세)가 넘었음에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한 채 진화를 거듭하며 가장 전통적인 미술 장르인 회화에 동시대적 현대성을 부여한다. 이런 그의 모습에 무한한 경의를 표하며 언제나 젊음을 간직한 호크니의 그림과 삶을 더욱 오랫동안 볼 수 있기를 바란다." - 도록 227 쪽에서 이승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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