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습 문 제]

1. 아래의 예문을 통일성의 원리에 비추어서 분석해 보자.

<예제 1>

개는 어린이를 보호하도록 훈련시킬 수 있다. 이런 훈련을 시키는 첫 단계는 개로 하여금 어린이는 연약하다는 것을 알아차리도록 하는 일이다. 훈련자는 개가 지켜보는 데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어린이를 구하는 시범 행동을 한다.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다가, 어린이를 구하는 작업의 마지막 순간에 일부러 머뭇거린다. 개가 그 일을 수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영리한 개는 바로 그것을 눈치채고 그 일에 뛰어들게 되며, 그때부터 어린이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렇게 되면 훈련자는 어린이가 부닥칠지도 모르는 여러가지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개를 본격적으로 훈련시킨다. 이를테면, 찻길에 뛰어든 어린이, 높은 곳에 올라간 어린이, 길잃은 어린이, 또는 물건을 잃은 어린이들을 도와 주는 일들을 개에게 훈련시킨다. 그러한 훈련으로써 영리한 개는 어린이의 어머니보다도 더 나은 보호자가 될 수 있다. 요즈음 개 훈련자는 인기를 끌고 많은 수입을 올린다. 부모들이 어린이를 돌볼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 후론 윌리스, "단락 전개의 방법" 중에서--

[길잡이] 통일성있는 단락을 이루려면 무엇보다도 그 핵심인 소주제만을 집중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이런 원리에 따라 위 예문에서는 대부분의 뒷받침문장들이 첫머리의 소주제문을 집중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개 훈련자가 인기가 있다, 부모들이 어린이들을 돌볼 시간이 적다"라는 마지막의 두 문장은 소주제와 먼 내용이어서 통일성을 깨뜨리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필자가 마지막에 가서 소주제문을 잊어버린 데서 나온 실수일 것이다. 이러한 실수는 소주제를 집중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생각이 철저하지 못한 데서 나온 것이기도 할 것이다.

2. 아래 글은 통일성을 지키지 못한 데가 있다. 통일성의 원리에 맞게 고쳐 써 보자.

<예제 2>

한글은 참된 우리 겨레의 글자다. 한글은 우리 나라 임금인 세종대왕이 학자들을 시켜 만들어낸 글자이다. 곧 한글은 딴 나라에서 빌려다 쓴 글자가 아니라 지금부터 500여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한글은 우리의 말 소리를 남김 없이 다 적을 수 있다. 더구나 남의 나라 말 소리까지도 적을 수 있는 우수한 글자다. 우리는 한글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글은 오랫동안 한자에 억눌려 기를 피지 못하였다. 지금도 한글은 한자와 함께 써야 하는 불완전한 글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길잡이] 위의 글은 통일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다. "한글은 참된 우리 겨레의 글자"라는 주제와는 무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의 나라 말 소리까지 ..." 이후의 문장들은 한글이 우리 겨레의 글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과 직접 관련이 없다. 이 뒷부분은 앞의 소주제에서 빗나간 서술이 되어 통일성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자에 억눌려 지냈다거나 불완전한 글자라고 한 점 등은 비록 한글과 관련된 서술이기는 하지만 "한글이 참된 우리 글자다"라는 소주제문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이 단락의 중심 사상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위의 글을 통일성의 원리에 맞게 고쳐 써 보면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한글은 참된 우리 겨레의 글자다. 한글은 우리 나라 임금인 세종대왕이 학자들을 시켜 만들어낸 글자이다. 곧 한글은 딴 나라에서 빌려다 쓴 글자가 아니라 지금부터 500여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직접 만들어 낸 것이다. 또 한글은 우리 말 소리를 남김 없이 다 적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 말 소리를 적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글은 우리 나라 사람이면 아주 어린 아이를 내놓고는 거의 누구나 쉽게 배워서 쓰는 글자이다. 이렇게 한글은 우리 겨레가 만들었고 우리말을 적기에 가장 알맞으며 우리 겨레가 쉽게 배워서 쓰는 글자다.

위의 글에서는 통일성이 잘 지켜지고 있다. 그것은 맨 앞의 소주제문에서 내세운 바를 뒤의 문장들이 잘 떠받들고 있기 때문이다. 뒷받침문장들이 소주제에서 벗어나는 서술을 하지 않고 있어서 내용적으로 일치됨을 보이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만들었고 우리의 말소리를 다 적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이 거의 다 배워서 쓴다는 것은 다 우리 글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3. 다음 예문에 대하여 통일성의 원리에 비추어 비판하고 바르게 고쳐 보자.

<예제 3>

비교(比較)와 대조(對照)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에 대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밝혀 내는 지적 작용이다. 비록, 비교와 대조는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는 사고 작용이긴 하지만, 실제의 적용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다. 어떤 두 가지 사물이 특성을 밝힘에 있어서, 비교의 원리를 적용할 경우에는 그들의 차이점을 반드시 밝힐 필요는 없이 비슷한 점에 주된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대조의 원리를 적용할 경우에는 그들의 비슷한 점은 밝히지 않고 차이 점만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유추(類推)는 일종의 확장된 비교로서, 어떤 전제에 바탕을 둔 논리적 추리라고 할 수 있다.

<고등학교 국어(하)>(1991), 45쪽

[길잡이] 위의 예문은 주제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첫문장에서는 "비교"와 "대조"를 뭉뚱그려서 뜻매김하려 한 것도 같고, 둘째 문장을 보면 "비교"와 "대조"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려 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마지막 문장을 보면 "유추"에 대한 뜻매김도 포함되어 있어 그 주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윗글 자체의 내용에서 다소 주제로 삼음직한 것은 "비교와 대조는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는 사고 작용이긴 하지만, 실제의 적용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다."는 둘째 문장이다. 그 뒤의 문장들이 대부분 "비교"와 "대조"의 차이점에 대한 뒷받침이기 때문이다. 만약 첫 문장 "비교(比較)와 대조(對照)는, 둘 또는 그 이상의 사물에 대하여 그들이 지니고 있는 비슷한 점과 차이점을 밝혀 내는 지적 작용이다."를 소주제로 삼거나 마지막 문장 "유추(類推)는 일종의 확장된 비교로서, 어떤 전제에 바탕을 둔 논리적 추리라고 할 수 있다."를 소주제로 삼는다면 뒷받침이 전혀 없는 소주제를 내세운 경우가 되어 곤란하다. 물론 이런 내용 자체는 소주제가 됨직한 것들이기는 하지만 윗글의 경우에는 뒷받침이 전혀 없기 때문에 소주제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둘째 문장을 소주제로 삼을 때,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삭제되어야 마땅하다. 소주제와는 관련이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설사 이것들이 비교와 대조의 한 양상을 반영하고 있는 내용들이기는 하지만 정작 소주제와는 관련성이 희박한 것들이다. 특히 "유추"에 관련된 내용은 갑자기 끼어 들어온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소주제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면 단락의 통일성이 크게 흐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주제를 부각시키지 못하는 뒷받침 내용들은 과감하게 삭제를 하든지 아니면 소주제로 내세워서 새로운 단락으로 구성해야 마땅하다.

다음과 같이 윗글의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하기만 해도 훨씬 주제가 명료하게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비교와 대조는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는 사고 작용이긴 하지만, 실제의 적용 과정에서는 차이가 있다. 어떤 두 가지 사물이 특성을 밝힘에 있어서, 비교의 원리를 적용할 경우에는 그들의 차이점을 반드시 밝힐 필요는 없이 비슷한 점에 주된 관심을 가지게 되지만, 대조의 원리를 적용할 경우에는 그들의 비슷한 점은 밝히지 않고 차이점만을 부각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윗글만해도 소주제가 훨씬 명료해졌음을 알 수 있다. 다소 뒷받침이 부족한 느낌은 있으나 이 정도만 해도 "비교"와 "대조"의 차이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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