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경묵 교수(서울대 경영학과)

- 친일(親日) 반일(反日) 용일(用日) 극일(克日) 중
어떤 자세 우리나라에 도움될까
- 과거 지향적 관점에서 제시하는
친일(親日) 반일(反日) 주장 별 효용 없어
- 일본 활용해서 우리나라 부강하게 만들고
일본 극복할 수 있는지 토론하고 대안 찾아야
- 일본제품 불매운동 극단적 반일감정에 근거
과거 아닌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논쟁해야
- 우리 체면 살리고 일본 처지도 살리는 대안 필요
용일(用日) 관점에서 한일관계 접근해야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병자호란 때 척화파 주화파 싸우는 것 같아  

일본이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핵심 소재 부품을 '포괄적 수출허가' 대상에서 '개별 수출허가' 대상으로 변경한다고 하면서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우리도 불매운동을 벌여 보복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이 지경까지 왔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매국노나 토착 왜구라고 하면서 서로 비난합니다.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고 나서도 오랑캐와 죽을 때까지 싸우자고 주장하는 척화파와 싸워서 이길 수 없고 백성들에게 너무 큰 피해가 가니 화친을 하자는 주화파가 싸우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옛일을 잊고 어떻게 하면 일본을 더 잘 활용해서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 우리끼리 싸울 일이 없지 않을까요? 과거 지향적인 관점에서 제시되는 친일(親日)과 반일(反日) 주장은 별 효용이 없습니다

과거지향적 관점서 제시하는 '친일 반일' 주장 효용 없어

​우리는 잘못한 것이 전혀 없는데 일본이 경제 제재를 가하니 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한 극단적 반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아주 싫어하면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생각까지도 합니다. 손익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이성적인 반응이 아닌 매우 감정적인 반응입니다. 일제의 지배로 우리나라가 엄청나게 큰 피해를 봤으니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영원히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데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일제 지배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면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제 지배 시에 받는 피해 중에 배상받지 못한 것이 있다고 요구하면 배상해 줘야 하는데 배상해 주지 않는 것을 보니 진정성 있게 반성하지 않는 나쁜 나라라고 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에게 경제 제재를 가한다니 적반하장도 그런 적반하장이 없다고 봅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도 하고, 일본 기업이 일부 지분을 가진 우리나라 기업들의 제품에 대해서도 불매운동을 하고, 일본에 여행 가지도 말고, 우리도 일본에 제재를 가해 보복을 하자고 합니다. 극단적인 반일감정에 근거한 대응 전략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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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본보다 더 심하게 역사왜곡해 반일감정 키웠다는 주장도 있어

​한 편에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극단적인 반일감정은 우리가 왜곡한 역사에 기반한 잘못된 감정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이 우리를 지배할 때 그렇게 나쁘게 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본보다 우리가 더 심하게 역사를 왜곡해서 반일감정을 키웠다는 것입니다. 핵심 주장은 일본이 약탈형 도적이 아닌 정주형 도적처럼 우리나라를 지배했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정치경제학자인 맨서 올슨(Mancur Olson)은 도적을 약탈형과 정주형으로 나누었습니다. 약탈형 도적은 필요한 것을 다 빼앗고 떠나는 도적들입니다. 주민들에게 인기를 얻을 필요도 없고 미래의 생산성을 고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주형 도적은 해당 지역을 계속 지배하면서 지속적으로 단물을 빼먹는 도적입니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단물을 빼먹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생산성도 높여야 하고 일할 의욕도 높여야 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영구 지배할 목적으로 통치했기 때문에 정주형 도적처럼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1912년부터 1918년까지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전국 농토의 40%를 탈취했다는 주장이 전혀 근거가 없는 역사왜곡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주형 도적이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었답니다. 그렇게 빼앗아가면 농사를 지을 생각도 하지 않고, 농지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언제 또 빼앗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각 지자체에서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토지대장에 다 나와 있는데 우리 역사학계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 다른 증거로 해방 이후 토지조사사업으로 땅을 빼앗겼으니 돌려달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40%의 땅을 빼앗겼다면 자기 땅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나올 텐데 그런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 탈취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일제가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쌀을 강탈해서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것도 우리가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주형 도적이 값을 지불하지 않고 약탈해 가면 농민들이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니 그럴 리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일제가 지배하면서 일본 사람들이 대규모 간척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간척을 하기 위해 농부들을 임금을 주고 동원했는데도 마치 노예처럼 데려다가 임금도 주지 않고 일을 시킨 것처럼 왜곡했답니다. 일본 쌀값이 우리나라 쌀값보다 비싸거나 전쟁으로 쌀이 많이 필요할 때는 일본으로 쌀을 가져갔습니다.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다가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역사적 사실인데, 한 푼도 안 주고 우리 농민들의 쌀을 강탈해갔다고 우리가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합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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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약탈형 도적'인지 '정주형 도적'인지 역사학자들이 밝혀야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도 우리가 왜곡한 것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일제가 우리나라 지배를 통해 장기간에 걸쳐 단물을 빼먹자는 생각을 하는 현명한 지배자였다면 정책적으로는 정주형 도적처럼 했을 것입니다. 철도를 깔고, 신작로를 만들고, 수력발전 댐을 짓고, 간척을 하고, 관개 공사를 하고, 학교를 세우고 한 것을 보면 일본의 기본적인 식민지 정책은 정주형 도적의 정책인 것처럼 보입니다.  일본 정부의 정책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단 행정관청에서는 약탈, 수탈이 있었을 것입니다. 뇌물을 받는 공무원이 있는 것처럼 정부 정책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땅을 빼앗고 곡식을 빼앗는 순사, 공무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강제로 처녀를 끌고 가고 속임수를 써서 위안부로 데리고 가는 포주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나쁜 짓을 한 사람들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역사학자들이 일본이 약탈형 도적처럼 지배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고 실행한 것인지, 아니면 정주형 도적처럼 지배했는데 일부 말단 공무원이나 순사들이 약탈 행위를 한 것인지를 밝혀 주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 책을 쓰고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대일 감정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을 잘 활용해 왔고, 앞으로도 일본의 활용 가치는 매우 높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일본을 아주 잘 활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 과정에서 우리보다 훨씬 앞서서 근대화를 한 일본을 굉장히 잘 활용해 왔습니다. 우리나라의 법과 행정 체계는 거의 대부분 일본의 것을 베낀 것입니다. 서구에서 발달한 학문, 과학 기술 등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용어는 일본이 먼저 한자로 번역한 것입니다. 경영학, 경제학, 사회학, 통계학 등 학문의 명칭부터 그렇습니다. 우리가 외국어에 적합한 우리말을 만들기 위해 고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본이 번역해 놓은 한자를 우리말로 옮기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우리가 쓰는 대부분의 학술적인 한자 단어는 일본이 만든 것입니다. 서구의 문물도 대부분 일본이 번역한 것으로 배워왔습니다. 외국의 문학전집이나 과학 도서를 일본이 먼저 번역하고 우리는 일본 말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말로 번역했습니다.

필자가 70년대 중반에 계몽사에서 발간한 50권짜리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당시에 그런 책을 만들만한 역량이 우리나라 출판사에는 없었을 것 같아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서 만든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TV프로그램, 만화, 만화영화 등 일본 것을 베낀 것이 굉장히 많았답니다. 앞서 간 일본을 굉장히 잘 활용해서 효율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것입니다.

일본이 패망하면서 남기고 간 적산 기업들을 잘 활용했습니다. 동양맥주, 조선맥주, 한국화약, 선경직물, 대한방직 등 굵직한 회사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일본이 돈을 한 푼도 받지 않고 남기고 간 기업들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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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 과정서 우리나라는 일본을 굉장히 잘 활용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도 우리나라는 일본을 굉장히 잘 활용해 왔습니다. 첨단 분야에서 기술과 경험이 거의 없었던 우리 기업들이 일본 기업에게 굉장히 많은 것을 배워서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포스코는 신일본제철의 기술 지원을 받아 건설했습니다. 전기 전자 사업에 대한 기술과 경험이 전혀 없던 삼성은 1968년에 일본 산요전기, NEC와 합작사를 세우면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산요전기와의 합작사가 현재의 삼성전기이고, NEC와의 합작사가 현재의 삼성SDI입니다. 일본 부품을 가져다 조립해서 판매하면서 기술과 경험을 쌓아 현재의 삼성전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현대자동차도 미국 포드 자동차와의 합작으로 시작하였으나 1976년에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와 기술 협약을 맺고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인 포니를 자체 브랜드로 생산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회사만 예로 든 것이고 대부분의 제조업에서 그런 식으로 일본을 활용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고 언어적으로 잘 통했기 때문에 빨리 배워 올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인 합작회사, 기술 협약 등 선진 일본 기업들을 굉장히 잘 활용해서 압축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첨단 산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우리나라 기술을 훔쳐 가고 핵심 인력을 빼간다고 중국 욕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일본을 대상으로 굉장히 많이 했던 것입니다. 일본 제품을 분해해서 모방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은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일본에 산업 시찰을 갔다가 보고 온 것을 바탕으로 설계를 한 것도 많습니다. 퇴직한 일본 기술인력을 데려와서 배운 것도 굉장히 많이 했고, 일본 기업에 근무하는 기술인력을 영입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 기업에 근무하는 근무자를 일본 기업 몰래 주말에 한국으로 데려와 기술 지도를 받은 일도 많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일본을 잘 활용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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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앞으로도 우리나라에 활용가치 매우 높은 나라

현재 시점에서 일본과의 교역 관계가 악화되면 우리나라 경제는 치명상을 입을 것입니다. 일본은 세계 1등을 하는 산업이 많습니다. 우리나라가 진출한 첨단 산업 분야에서 일본에서만 사 올 수 있는 소재나 부품이 아직도 상당히 많습니다.

대한민국, 일본보다 적게 일하고 많이 받을만한 실력이 있는 나라일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반일 감정이 상당히 강합니다. 일본이 36년간 우리를 지배하면서 온갖 패악을 저질렀으니 당연합니다.

메모리 반도체 산업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는 굉장히 많은 화학소재가 사용됩니다. 하나의 소재만 구매하지 못해도 생산 라인이 멈춥니다. 설사 해당 소재를 다른 업체에서 사 올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재를 바꾸면 불량률이 확 올라갑니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 세척을 위해 과산화수소(H2O2)를 사용하는데 한솔케미칼 것을 쓰다가 공급처 다원화 차원에서 다른 납품업체 것도 사용해 봤답니다. 불량률이 확 올라가서 다시 한솔케미칼 것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과산화수소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과산화수소가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닌데도 그렇답니다. 삼성전자나 한솔케미칼에서도 불량률이 높아진 근본 이유를 알지 못했답니다. 

반도체 산업만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첨단 산업에서는 아직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습니다. 아직까지는 일본에서 수입해야 하는 핵심 소재나 부품, 장비가 너무 많습니다. 일본에서 더 많이 배워와서 기술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게 일본의 활용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외교와 국방이라는 면에서도 일본은 활용가치가 높은 나라입니다. 일본과 상호 수호조약을 맺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을 통해 유사시에 일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미일 관계가 아주 좋기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미국과의 관계까지도 나빠질 수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 일본이라는 지원 국가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중국에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미국, 일본과 적대적인 관계를 맺으면 우리나라는 중국에 좋은 먹잇감이 될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협상력도 마찬가지로 떨어질 것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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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감정 대신 철저하게 용일(用日) 관점서 한일관계 접근해야

일본이 우리나라를 어떻게 지배했는지는 역사학자들이 시간을 가지고 밝혀내도 됩니다. 현 시점에 일본이 정말 나쁜 나라냐 아니냐를 두고 싸우고 논쟁할 여유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일본을 더 잘 이용 혹은 활용해서 우리나라를 더 부강한 나라로 만들고 일본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지 토론하고,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가 아닌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논쟁해야 합니다. 미래를 두고 논쟁하는 젊은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노인들은 옛날이야기만 하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미래에 더 잘 살기 위해 투자하지 않습니다.

일본을 잘 활용하려면 적대적인 관계보다 우호적인 관계가 더 좋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활용 가치가 매우 높은 나라입니다. 더 잘 활용하려면 적대적인 관계보다 우호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사건이 수교 이래 일본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보복 조치를 가한 사례라고 합니다. 수교 이후 최악의 관계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우호적인 관계를 복원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도 같이 맞대응하는 것이 우호적인 관계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메모리 반도체나 OLED 제품 수출 금지 같은 보복 조치가 효과가 있을까요? 맞대응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려면 맞대응할 때 우리가 보는 손해보다 일본이 보는 손해가 훨씬 커야 합니다. 일본이 무릎을 꿇게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만한 소재나 제품이 없습니다. 기업의 사정을 잘 모르는 정치인이나 일반인들은 삼성전자나 하이닉스가 세계 1, 2 등을 하지 우리의 실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사 오지 않아도 우리나라 첨단 산업이 잘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수출을 금지하면 제대로 돌아갈 첨단 산업 공장은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수출을 금지한다고 할 때 멈춰질 일본의 공장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일본에서만 사 와야 하는 것이 많은데 일본은 우리에게만 사 가야 하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1등을 한다고 하는 메모리 반도체나 OLED 제품조차 무기로서의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일본에도 메모리 반도체 공장이 있고 OLED 대신 LCD로 TV를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핵심 소재에 대해 높은 관세를 매기거나 우리 제품을 일본에 수출하지 못하게 하면 어떨까요? 이에 대해 일본이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거의 자해하는 수준입니다. 일본의 손실에 비해 우리의 손실이 훨씬 더 큽니다. 일본이 맞대응하고, 우리도 거기에 맞대응하는 비합리적 몰입의 상승이 일어나면 경제 전쟁 수준으로 갑니다. 우리의 손해가 몇 십 배는 되는 필패 전략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거나 WTO에 제소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대안이 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일본의 조치로 해당 제품을 수출했던 일본 기업이 손해를 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액수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해 줄만 합니다. 일본이 더 독한 마음을 먹고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 공장을 멈추게 하겠다고 하면 우리의 피해는 천문학적입니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협력업체들까지도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WTO에 제소해서 해결하는 것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답이 될 수 없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과거처럼 미국이 싸우지 말라고 일본을 설득해 줄까요? 트럼프의 성향상 별로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의 대중 외교 정책에 적극 협조하지 않는 우리나라를 고운 눈으로 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일본의 보복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나빠져도 미국이 손해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일본과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 일본과 함께 매를 들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양국이 문서로 약속한 내용을 따르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체면도 살리면서 일본의 입장도 살릴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된 중요한 요인인 위안부와 징용 문제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1965년에 맺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에 대한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협정에 따라 이미 다 배상을 한 문제이고 과거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그렇게 해석해 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고 주장합니다. 징용 갔다가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분들에게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우리나라 예산으로 보상해 줬고 그때는 일본 정부에 아무런 요청을 하지 않다가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하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결에서는 청구권으로 배상해줬다고 해서 피해를 본 개인에 대한 배상까지 완결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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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중재 방법으로 과거사 매듭짓자고 해야

이렇게 협정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1965년에 일본과 맺은 협정 제3조에서 해결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가 중재를 요청하면 다른 나라에 그에 응하고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고 하고 있습니다. 양 국가가 문서로 명확하게 약속한 방법을 우선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국 간의 협정한 것을 따르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체면에 손상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중재라는 방법으로 과거사를 매듭짓자고 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입니다.

​간접적인 외교 경로의 복원이 필요합니다. ​일본과는 계속 문제가 있어 왔습니다. 그때마다 미국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간접적인 외교 경로를 통해 문제를 풀기도 했습니다.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우리나라의 전경련과 일본의 게이단렌의 네트워크를 통해 문제를 풀어왔습니다. 전경련이 와해 수준에 와 있으니 그것을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나 경영자총협회의 경우 아직까지는 그럴만한 네트워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디가 되었든 간에 일본의 경제정책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합니다. 정치나 외교적인 문제는 한일의원연맹 같은 곳에서 막후교섭을 통해 풀기도 했습니다. 김종필과 나카소네 같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많이 했답니다. 지금은 그런 네트워크도 많이 약화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네트워크의 복원도 필요합니다.

간접적 외교 경로도 하루빨리 복원해야

협상에 관한 교과서들은 한 번만 협상하고 끝낼 상대가 아니라면 이익(Interests)은 확실히 지키되 상대방과의 관계는 무조건 우호적으로 가져가라고 가르칩니다.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제시되는 것입니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도 'Lose-Lose' 하는 대안이 채택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협상에 대한 책도 썼고 협상의 대가라고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합니다. 김정은이나 시진핑과의 협상이 완벽하게 결렬돼도 우리는 좋은 친구라고 하고 다음에는 잘 될 것이라고 합니다. 감정을 숨기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일본에 대해 우리도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말고 철저하게 용일(用日)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실력이 아직 매우 낮기 때문에 일본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실력을 키우고 극일(克日)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실력을 키우고 극일을 해서 우리나라가 일본에 매를 들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면 좋겠습니다.(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참고문헌>

Olson, Mancur. "Dictatorship, democracy, and development."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87.3 (1993): 567-5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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