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자유대 인근 주택가에서 만난 어느 독일 어린이 사연]

▲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 지역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와플을 만들어 팔면서 구호기금을 모으고 있는 크로트 양(왼쪽)과 레나 양
▲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 지역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직접 와플을 만들어 팔면서 구호기금을 모으고 있는 크로트 양(왼쪽)과 레나 양

[베를린(독일)=신향식 특파원] 베를린자유대에서 베를린 전철 3호선(U3) 티일플라트역으로 향하는 블뤼머길. 베를린자유대에서 취재를 마치고 역으로 가던 중 작은 도로 왼쪽 편에 파란 잔디가 깔린, 그림 같은 2층 집이 보였다.

“햐~, 이렇게 예쁜 어린이들이…. 꼬마들 여기서 뭐해요?”

여자 어린이 두 명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집 입구의 잔디밭에 탁자를 설치하고 벌집 모양의 와플을 만드는 중이었다. 앙증맞은 손으로 국자에 반죽을 떠서 오븐에 붓고 앞뒤로 뒤집어가면서 와플을 굽는 솜씨가 제법 능숙했다. 탁자에는 ‘네팔을 위한 와플 굽기’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주고 싶은 것을 기부해 주셔요. 그것을 필요로 하는 네팔 사람들에게 전달해 드립니다.(WAFFELN-BACKEN FÜR NEPAL / Spende, was du geben magst-ich gebe es weiter an die Bedürftigen!)

지진 참사로 고생하는 네팔을 돕기 위해 구호기금을 마련하는 중이었다. 크로트(9세)와 레나(13세)로 자신을 소개한 두 어린이는 “네팔 지진 뉴스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면서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네팔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슬프다”고 말했다.

“학교에서도 이미 모금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부족한 것 같아서 네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더 모으려고 해요. 부모님께서 시킨 것은 아닙니다.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고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분홍색 모금함에는 5유로 지폐부터 동전까지 제법 많이 쌓여 있었다. 자전거를 탄 남학생 한 명이 두리번거리면서 지나갔다. 할머니 한 분이 대견스럽다는 듯이 메모와 와플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시작한 지 1시간이 되었는데 모두 15명이 와플을 구입했다고 한다.

▲ 네팔 지진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와플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크로트 양
▲ 네팔 지진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와플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크로트 양

울타리 안에는 벤츠 승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품종을 알 수 없는 커다란 검은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렸다. 크로트 양이 두 팔을 벌려 검은개를 살짝 포옹했다. 빨간 지붕에 길다랗게 생긴 2층 집이 주변의 수풀과 어우러져 운치있게 보였다.

“네팔에 가본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아시아에서는 태국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음식이 맛있고 날씨가 따뜻해서 좋았습니다.”

“그럼, 네팔을 주제로 글을 써볼 생각은 없나요? 네팔 어린이들에게 힘내라고 편지를 보낸다든지….”

“아직 그 생각까지는 못했습니다. 평소에 책과 신문은 많이 읽습니다. 일주일에 최소 반 권은 읽습니다. 모험이나 비극을 주제로 한 책이 재미있습니다.”

학교에서 글을 잘 쓰는 방법도 배우냐고 묻자 레나 양은 “선생님들께서 글쓰기는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글을 쓰는 목적은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고, 우리 생각을 효과적으로 표현을 하는 데 있다고 하셨습니다. 항상 깊이 있게 생각하고 글을 쓰라고 하셨고요.”

두 어린이가 부모에게 어떤 교육을 받고 자라나는지 궁금했다. 초등학생이 신문을 많이 읽는다는 게 기특했고, 자발적으로 네팔 구호기금을 모으는 것도 대견스러웠기 때문이다.

▲ 네팔 지진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와플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크로트 양(왼쪽)과 레나 양, 그리고 어머니 야스민 코흐만 씨
▲ 네팔 지진 구호기금을 모으기 위해 와플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크로트 양(왼쪽)과 레나 양, 그리고 어머니 야스민 코흐만 씨

마침 이들의 어머니 카로타 코흐만 씨가 기자에게 다가왔다. 언니인 레나 양이 엄마에게 달려가 ‘아시아계의 어떤 아저씨가 이것저것 캐묻는다’고 전한 모양이었다.

“직접 모금을 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좋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독일 외의) 다른 세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해서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어린이로 키우는지, 평소 자녀를 교육하는 방향을 물어 보았다.

“교육을 잘 받는 게 중요합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뒤에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교육을 잘 받아야겠지요. 가족과 같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한 가치라고 교육합니다. 그런데 좋은 교육을 원하면서도 아시아권 부모들처럼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1시간 정도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어떤 의무감을 심어주지는 않습니다.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만큼만 읽게 합니다.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많이 읽으면 좋겠지요.”

어머니는 “(부모의 압력과 자녀의 자발적인 노력이)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다”면서 “부모의 잔소리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공부하는 것도 필요하며 서로 균형이 맞아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함부로 삶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고 봅니다. 자기 생각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게 가장 좋겠지요,”

글쓰기 교육은 어떻게 하는지 질문하자 “글쓰기도 소홀히 할 수는 없지만 우선 읽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책을 읽으면서 좀 더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 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책과 신문 읽기를 권유합니다. 물론 억지로 시키지는 않습니다. 단, 전자기기 사용만큼은 최대한 금지시킵니다.”

글을 잘 쓸 수 있는 노하우가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자 “정말 어려운 질문”이라고 답했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단락(paragraph)을 효율적으로 펼쳐가면서 글을 구성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체계 있게 전개하는 게 무엇보다도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자는 10유로를 모금함에 넣고 와플을 맛봤다. 귀여운 꼬마가 과일 잼을 잔뜩 발라 주었다. 점심 무렵이라 시장하던 차에 꿀맛처럼 달콤했다. ‘어린이 천사’들과의 만남은 와플보다 더 새콤달콤했다.

전철역으로 가면서 고개를 돌려 먼발치의 크로트 양과 레나 양을 바라보았다. 와플을 굽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고사리 손놀림’이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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