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해마다 5월에 석가탄신일이 옵니다. 그런데요. 많은 사람이 아무렇게나 쓰는 ‘탄신일’은 아주 이상한 말입니다.

바르지 않은 ‘탄신일’이 널리 쓰이는 것은 사람들이 한자말 ‘탄신’의 뜻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인 듯싶습니다. 우리말을 꽤 안다는 언론사 기자들까지 “세종대왕의 탄신을 기념한다”라거나 “석가 탄신을 경하한다” 따위로 쓰는 일이 흔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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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誕辰)’은 “임금이나 성인이 태어난 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辰’은 “때, 날짜, 하루” 등의 뜻을 지닌 ‘신’자입니다. 지난달에 지나간 스승의 날(5월 15일)이 바로 세종대왕의 탄신이죠.

우리가 기념하고 경하해야 하는 것은 세종대왕의 ‘탄생’이지, 세종대왕의 ‘생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3·1절을 기리는 것은 3·1운동에 담긴 나라사랑의 정신이지, 1919년 3월 1일 자체는 아닙니다.

‘탄신’은 다른 말로 ‘탄일’ ‘생일’ ‘탄생일’로 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종대왕 탄신 613돌을 기념해 열린 과거시험에서…”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135회 탄신 기념식이 26일 오후 2시 서울 정동제일교회 본당에서 열렸다” 등의 예문에서 보이는 ‘탄신’은 ‘탄생’을 잘못 쓴 것입니다.

그리고요. ‘탄신’을 ‘탄신일’로 쓰는 사람도 참 많은데요. 아마 ‘탄신’을 ‘탄생’의 동의어로 생각하고 그리 쓰는 듯합니다. 그러나 ‘탄신’의 동의어는 ‘생일’(정확히 말하면 ‘탄신’이 ‘생일’의 높임말임)이므로, ‘탄신일’이라고 쓰는 것은 ‘생일’을 ‘생일일’로 쓰는 것과 같은 꼴입니다. ‘탄신일’은 ‘탄일’이나 ‘탄생일’로 써야 합니다.

그러면 ‘석가탄신일’이라는 말은 쓸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쓸 수 있다’입니다. ‘탄신일’은 옳지 않은데, ‘석가탄신일’을 쓸 수 있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1970년대 들어 ‘예수님이 태어난 12월 25일은 공휴일로 삼으면서, 왜 우리가 예부터 믿어온 부처님이 태어난 날은 공휴일로 삼지 않느냐’는 불교계의 비난이 거셌습니다. 한 불교신자가 행정소송까지 제기했지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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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시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유 없다’며 각하해 버렸지만, 대법원에 계류 중인 사안을 1975년 정부가 받아들여 국무회의에서 법정공휴일로 지정·공포했습니다. 그러면서 붙인 이름이 ‘석가탄신일’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우리말에 대한 지식은 ‘까마귀’급인 국무위원들이 모여서 정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아무튼 이 때문에 ‘탄신일’은 바른말이 아니지만, ‘석가탄신일’은 고유명사가 됐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석가탄신일’ ‘부처님오신날’과 ‘충무공탄신일’이 고유명사로 올라 있습니다.

그러나 ‘탄신일’은 어느 사전에도 올라 있지 않은 말입니다. 특히 ‘성탄절’을 ‘성탄일’로는 써도 ‘성탄신일’로 쓰지 않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탄신일’은 분명 바른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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