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로그인하면 장바구니에서 ‘날 잡아 잡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큰일이네요.”

어느 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글에서 보듯이 ‘날 잡아 잡수’라는 말은 꽤 널리 쓰이는 표현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블로그나 카페는 물론 신문과 방송에서도 곧잘 등장합니다.

그러나 ‘잡아 잡수’는 글을 쓰다 만 꼴의 말입니다. ‘잡수’가 ‘잡수다’의 어간이기 때문이지요. ‘(분위기를) 돋우다’를 ‘(분위기를) 돋우’로만 쓰지 못하고 ‘(분위기를) 돋워’로 써야 하듯이 ‘(나를 잡아) 잡수다’ 역시 ‘(나를 잡아) 잡숴’로 써야 합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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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수다’를 활용하면서 ‘잡수’처럼 어간만 써서 틀리는 말이 꽤 있습니다.

“내일 뵈요”의 ‘뵈요’도 그중 하나이지요. ‘뵈다’가 기본형이므로, 어간 ‘뵈’에 모음 ‘어’를 붙여 활용한 뒤 존경을 나타내는 조사 ‘요’를 덧대 ‘봬요’로 써야 합니다. 참고로 한글맞춤법 제16항은 “어간의 끝 음절 모음이 ‘ㅏ, ㅗ’일 때에는 어미를 ‘-아’로 적고, 그 밖의 모음일 때에는 ‘-어’로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뵈다’뿐 아니라 쐬다, 쬐다, 괴다 따위도 쐐(요), 쫴(요), 괘(요) 등으로 써야 합니다. ‘안 되다’ 역시 ‘안 되’가 아니라 ‘안 돼(요)’를 종결형으로 써야 하고요.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모음 어미가 올 때이고, 자음 어미가 올 때는 ‘쐬고’ ‘죄며’ ‘괴자니’ 따위로 써야 합니다.

“겉모양만 번지르하다”라고 할 때의 ‘번지르하다’도 글자 하나를 빼먹고 쓴 말입니다. “말 따위를 실속 없이 겉만 그럴듯하게 하는 모양” 또는 “미끄럽고 윤이 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은 ‘번지르르’이고, 이 말의 형용사는 ‘번지르르하다’이거든요.

우리말의 여러 부사들 가운데 ‘르’를 취하는 것은 까르르, 도르르, 부르르, 사르르, 우르르, 주르르, 후르르 등처럼 ‘르’를 겹쳐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예외도 있습니다. “미끄러지듯 한 바퀴 도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인 ‘빙그르’가 그 예입니다.

“빙그르 돌다”라고 할 때 쓰는 ‘빙그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른말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국어사전들에도 바른말로 올라 있지 않습니다. 국어사전들은 모두 ‘빙그르르’를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지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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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립국어원이 최근 누리집의 ‘표준국어대사전’에 “몸이나 물건 따위가 넓게 한 바퀴만 도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라며 ‘빙그르’를 올려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너 나 없이 ‘빙그르’를 쓰는 점을 살펴 새로이 표준어로 삼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빙그르르’를 버린 것은 아닙니다. 즉 ‘빙그르’와 ‘빙그르르’는 같은 뜻의 복수 표준어입니다.

이런 사실에 비춰볼 때 ‘번지르하다’도 표준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이 ‘번지르르하다’보다 ‘번지르하다’를 더 많이 쓰는 게 지금의 언어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번지르르’를 ‘번지르’로 쓰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하기 쉬운 말로는 ‘찌뿌드하다’도 있습니다.

“과로한 탓에 몸이 찌뿌드하다”거나 “하늘이 찌뿌드한 걸 보니 곧 비가 오겠다” 따위로 쓰는 ‘찌뿌드하다’도 ‘드’를 겹쳐 ‘찌뿌드드하다’로 써야 바른말이 됩니다. 흔히들 쓰는 ‘찌뿌둥하다’도 ‘찌뿌드드하다’로 써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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