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김갑수 작가 특별기고

40년 동안 조선 역사 연구한 일본인 미야지마 히로시 집필
신뢰도 높은 1차 사료 근거하여 철저한 검증 거쳐 작성
'근대 한국 알려면 조선시대 (바른) 이해 필수' 주장
'유럽 제국주의사관과 일본 식민사관은 동질' 확인
중국 사대부와 조선 양반이 ‘토지귀족’ 아니었음 논증
"한국의 미래, ‘선진적인 보수’가 짊어져야 한다"
"진보연하는 민중당-정의당 사람들에게 권한다"

김갑수 선생
김갑수 선생

대단히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나의 한국사 공부》(2013년 간)의 저자 미야지마 히로시는 40년 동안 일관되게 조선시대 역사를 연구해온 일본인 학자로서 한국 사학자들보다 분명히 앞서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근대의 한국을 알기 위해서는 조선시대의 (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너무도 지당한 주장을 하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한국에서 진보연하는 사람들, 특정해서 말하면 민중당과 정의당 사람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의 진보정치세력이야말로 역사 문제에서 당의 구분 없이 미래 지향적인 진보가 아니라 과거 퇴행적인 ‘입진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유럽인의 제국주의사관과 일본인의 식민사관이 동질의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더 나아가 식민사관을 극복한답시고 새로운 근대주의사관을 만들어낸 한국 진보운동권의 사관 역시 유럽중심주의에 함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의 최대 강점은 신뢰도 높은 1차 사료에 근거하여 철저한 검증을 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먼저 ‘조선=봉건제론’에 이의를 제기한다. 사실 조선 정치제도가 봉건제가 아니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고 이제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운동권 학습을 받은 장년층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 책은 정치를 넘어 경제적인 면에서도 조선이 봉건제가 아니었다는 것을 ‘소농사회론’으로써 매우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다음으로 저자는 중국의 사대부와 조선의 양반은 이른바 ‘토지귀족’이 아니었음을 논증한다. 또한 조선은 유럽‧일본과 같은 세습 신분제였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의 역사 연구가 크게 잘못된 것은 유럽은 봉건제, 신분제였으니까 으레 조선도 그럴 것이라고 전제하고서 조선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이다.

이런 착오는 우리의 역사를 유럽의 잣대에 꿰어 맞춘 이른바 모양주의(慕洋主義) 사관에 기인한다는 평소 나의 주장과 거의 일치한다. 조선시대는 직업군에 의해서 가문 또는 집단이 한 신분으로 규정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조선 신분제론은 부정될 수도 있다. 물론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것도 당연히 신분 개념이 아니었다는 것은 이제 정설로 굳어져 있다.

한국 진보운동권의 조선사관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론과 김용섭의 내재적 발전론/자본주의 맹아론으로 대표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역사관은 19세기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21세기 동아시아의 역사 패러다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의 한국사 공부'(사진=김갑수)
'나의 한국사 공부'(사진=김갑수)

이런 유의 발언은 이 책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인식, 특히 동아시아 역사에 있어서 지금까지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었던 서구 중심적 인식을 비판함과 동시에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동아시아 및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P. 5,6)

“서구 중심의 역사인식이야말로 한국과 일본의 대립을 낳게 한 요인이며, 한국과 일본은 어쩌면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인지도 모른다.(p.6)

“이들(양반)에게는 서유럽의 귀족 계층과 달리 토지에 대한 영유권이 없었다... 양반은 토지 소유자로서 일반 서민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을 뿐 토지에 대해 아무런 특권도 갖고 있지 않았다... 양반 신분은 유럽의 귀족이나 일본의 무사 같은 신분과는 본질적인 면에서 성격이 다르다.”(p. 33, 142)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적 입장인 내재적 발전론이나 자본주의 맹아론은 그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서 찾으려고 한 것이어서, 조선 사회의 독자적인 성격이나 그에 규정된 근대 이행 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데 문제가 많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내재적 발전론도 전전(戰前) 일본 봉건제와 같이 유럽 모델을 한국사에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p. 41,43)

“조선시대 직역(職役, 양인이 지는 관직이나 군역)의 특색으로서 제일 먼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직역이 여타의 신분제 국가에서 보듯이 그것을 부담하는 사람의 소속 집단에 대해서는 부과되지 않았다는 점이다.”(p. 130)

“마르크스가 고전 고대적, 중세 봉건적 그리고 근대 부르주아적 생산양식을 세계사의 전진적 시대로 파악했을 때 특정 나라를 대상으로 하여 그러한 시대 구분을 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스탈린이 소련의 일국 사회주의의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할 뿐이고 역사적인 근거는 전혀 결여되어 있다.”(p. 385)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앞에서 지적했듯이 민중당과 정의당은 한국에서 스스로 진보세력임을 자처한다. 개중에서 기성층의 운동권 출신은 19세기 유럽 패러다임을 묵수하고 있다. 반면에 젊은 층 진보는 유럽 사민주의와 꼴페미들의 행태를 모방하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세력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묻는다. 오랜 동안의 관찰 결과 나는 이제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진보주의자'들이 해야 할 미래 지향적 역할은 기대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들은 남성 ‘꼰대’ 진보건 여성 철부지 진보건 하나 같이 모양주의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한국의 미래는 ‘선진적인 보수’가 담당해야 하는 것이 새 시대의 추세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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