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이예나 학생기자(전주상산고)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획일화에 따른 단점도 분명히 있어"
"문명사회에 환상 기대한 기대와 꿈은 물거품...현대사회에서도 마찬가지"

이예나 학생기자
이예나 학생기자

예전에 ‘1984’라는 디스토피아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그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이 되면 나는 그 틀에서 이상함을 느끼고 저항할 수 있을까 자문해 보았다. 같은 장르의 ‘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유사한 경험을 다시 해 보고 싶었다. 각 책속에서 묘사하는 세계들을 대조해 보고 싶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마침 사회문화 시간에 ‘행복’을 주제로 배울 때 행복의 기준이 다양함을 확인한 적이 있다. 행복에는 일반적인 의미가 있지만 시대적, 지역적 요건에 따라 그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와 상대적인 면이 어떻게 행복이라는 한 개념에 공존하는지에도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풀기 위해서 겸사겸사 ‘'멋진 신세계'’를 읽게 되었다.

'멋진 신세계' 속 세계는 갈등이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구조였다. A.F.632년 런던, 하나로 통합된 세계국의 표어는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다. 표어에 걸맞게 인간은 부화-습성 훈련 본부에서 알처럼 수정이 이루어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계급으로 나뉜다. 난자 1개를 96개까지 분열시키는 보카노프스키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행복이라는 목적 하에 계급에 따라 산소의 공급량까지 결정된다. 유아 양육소에서는 하급계층에게 책과 꽃을 싫어하게 조건반사 훈련을 시켜 책과 꽃 때문에 공동체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한다. 지속적인 최면 학습으로 개인을 지배하는데 가족, 부모, 가정이나 역사는 모두 불안정한 것들로 치부해 버리고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해야 한다’고 암시한다.

‘멋진 신세계'에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이유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난자에서 탄생한 쌍둥이들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갈등은 사람들간 가치관이나 생각의 차이로 발생한다. 범죄나 성별, 세대 간 대립 등 모든 사회 문제는 갈등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는 그런 상황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처럼 사람들의 뇌 크기부터 모든 것이 동일하다면 그 어떤 갈등도 발생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실현될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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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만 획일화에 따른 단점도 분명히 있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있던 블레츨리 파크라는 비밀기구의 성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비밀기구는 암호를 해독하는 곳으로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과학자부터 우체국 직원까지 다양했고, 이들이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풀이가 정해져 있는 문제는 여러 명보다 천재 1명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사회 문제는 하나의 풀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을 통한 복합적 사고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은 사회를 통합적 관점이 아닌, 시간적 관점 등 단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며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보고 있다.

“오! 멋진 신세계여.”

야만인 존이 문명세계를 갈망하며 내뱉은 말이다. 철저히 혼자였던 그에게 문명세계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며 그만의 여자와 영원을 약속하며 가정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본 문명세계는 얼굴이 똑같은 쌍둥이들이 무수히 넘쳐나며, 국가가 선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시되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죄악시되며, 자연스러운 노화도 허용되지 않는 ‘'멋진 신세계'’였다. 야만인은 스스로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며 야만세계로도 버나드나 왓슨이 유배되는 섬으로도 가지 못하고 한적한 등대에서 지낸다. 모든 문명을 거부하며 수렵활동과 경작을 하며, 불순한 생각들이 들 때마다 신에게 기도하며 자신의 몸을 채찍질한다. 결국 야만인은 문명세계 사람들의 호기심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어쩌지 못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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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문명사회에 대한 환상을 기대했던 존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지적하는 이런 점은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즘 최첨단 기술이 발전하며 생활의 편리해지는 것 등 행복할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예기치 않았던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기술의 발전에 따른 사생활 침해가 심각하다. 한 예로는 미국 맨하튼의 감시카메라가 있다. 이 감시카메라는 인물 식별이 뛰어나고 온라인에서도 쉽게 영상을 볼 수 있어, 편리함과 사생활 침해라는 두 가지 면을 모두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감시카메라의 기사를 보며 느낀 점은 학교 양심우산제도에 이를 도입하는 것에 대한 생각이었다. 요즘 양심우산제도의 우산들의 반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아예 폐지를 고려하는 분위기도 나오는 것 같다. 감시카메라를 도입한다면 우산의 반환률은 높겠지만, 학생들의 인권이 보장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술의 양면성을 가짐에도 기술의 발전에 제약을 두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기술로 인한 범죄에 처벌 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기술에 따른 새로운 범죄유형을 고려해 법을 제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할까? 이 책에서는 문명세계와 야만세계라는 두 세계가 나오고, 각 세계들은 독특한 특징을 가진다. 문명세계는 질병, 노화, 물질의 부족함도 없는 안전하고 쾌적한 이데아이지만 수정부터 죽음까지 국가가 모두 통제하는 사회다. 개인의 인권이나 각자 원하는 방식대로 삶을 꾸려갈 자유가 없다는 것은 무척 불행한 일일 것이다. 반면에 야만세계에서는 악취와 불결한 생활, 수준 낮은 교육 환경, 집단 미신의식으로 아프리카 부족을 연상시킨다. 이곳에서도 인간의 행복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즉 '멋진 신세계' 속 두 세계의 모습 중 그 어느 것도 멋지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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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보다 흥미로웠던 점은 문명세계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들은 자유를 억압받는 상황에서 그 어떤 의문도 느끼지 않고 자신들이 행복하다고 믿는다. 여기서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부터 가졌던 의문이 해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의식주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 여건이 행복의 일반적 기준이며, 상대적인 면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멋진 신세계' 속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보면 그 세계 속 사람들은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만약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고 세계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당연하다고 배운다면 전혀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고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행복에 일반적, 상대적인 면이 공존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줄거리 외에도 1984와 이 책을 비교해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멋진 신세계'’와 ‘1984’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모두 가진다. ‘1984’는 주인공이 완벽히 세뇌되며 결국 그 세계의 질서가 주인공을 이기고, ‘'멋진 신세계'’에서도 존의 자살로 다시 한 번 사회의 질서가 사람을 이긴다. 차이점은 ‘1984’는 태어난 이후 어휘, 세뇌 등을 통해 그들의 사고를 지배했다면 세계국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그 사람의 인생과 삶의 모습이 설계되는 것이다.

‘멋진 신세계' 속 발전된 기술은 현대의 인공지능을 떠올리게 했다. 인공지능에게 밀리지 않으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분야를 더 발전시켜 그들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사고력은 따라 잡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사고력의 확장을 위해 독후감처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활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사고력을 바탕으로 인공지능 시대에서 살아남을 직업군을 알아보고 친구들에게 직업들을 소개하는 활동을 하고 싶다. 또, 이 과정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내 적성에 모두 맞는 직업을 찾고, 꿈을 이루기 위해 미리 준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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