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홍영일 교수(서울대 행복연구센터 교육팀장)
'초등학교 4학년 생(만 9세)의 '낙하실험' 보도를 보고'

홍영일 교수
홍영일 교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의 '낙하실험' 보도(2015년 10월 16일 / 기사 링크 참조)를 보고. 마음이 불편하고 무언가 답답한 마음이 들었디. 그 이유는 내 어릴 적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며, 우리 아이들이 초2, 초4이기 때문이다. 늘 교실 안에서 영웅이었던 나는 교실 밖에서는 꼴찌들을 따라다녔다. 꼴찌는 교실 밖에서 나의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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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때 반에서 늘 1등 2등을 하던 착하고 착실하고 얌전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관계가 폭넓은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자존감이 높았던 것 같고, 배운 것에 대하여 써먹는 생각도 많이 했던 것 같다. 나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내 융통성은 멍청한 짓인 경우가 많았다. 학교 공부를 못하던 친구들이 볼 때, ‘넌 공부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나봐’라는 눈총을 받을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있었던 것은, 공부를 잘했고, 공부 잘해서 국민학교 졸업할 때 학교 명성을 높이고 기여도가 높다고 해서 전교에서 2명에게 주는 공로상도 받았다.

나보다 두살 터울 위였던 외사촌형을 늘 따라다녔다. 공부는 반에서 거의 꼴찌, 그러나 국민학생이던 외사촌형은 대나무 깎아서 낚시줄로 묶어 활대를 만들고 못 머리를 떼어내어 화살촉을 끼운 매서운 화살을 쏘아올리면 거의 100미터를 날아갔다. 국민학생 외사촌형의 그런 모습이 신기해서 어디든 졸졸 쫓아다녔다.

더 어릴 적 국민학교 2학년 때는 또 우리반 꼴찌였던 친구 두 명을 쫓아서 집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정말 멀고 먼 곳까지 가서 무서리했던 기억도 난다. 그때 고사리손으로 땅을 파서 먹었던 무가 그렇게 단 맛이 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그 맛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늘 꼴찌하던 친구와 외사촌 형을 쫓아다닐 땐 실패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주도했던 일은 벌이는 일마다 거의 낭패였다. 예를 들 수도 없다. 다 그랬으니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나만 보고 둘을 못보는 그런 실수가 많았다.

다시 오늘 보도된 뉴스 이야기로 가 보자. 발달심리학을 가르치시는 어느 페친께서 포스팅하신 글을 보니, 벽돌을 떨어뜨리면 밑에서 지나가다 누군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어렸을 적 나였다면 나 역시 그 생각에까지 미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착잡했다.

우리 윤찬이는 공부도 제법 하고, 또 학교에서 배운 건 꼭 해봐야 하는 직성인데, ‘윤찬이도 헤아림이 그렇게 부족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더욱 착잡했다.

홍영일 교수와 자녀(막내).
홍영일 교수와 자녀(막내).

우리 윤형이는 헤아림의 폭이 넓다. 윤형이는 수학도 빵점 받은 적이 있다. 집에서는 만들기를 잘하고, 그림도 보면 참으로 창의적이다. 무엇에 얽매이거나 하지 않는 모습이 꼭 아내의 모습이다.

아내도 공부를 못했다. 안 한 건지 못한 건지는 확인은 불가능하다. 딸도 공부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래서 아내와 딸은 걱정이 안 된다. 공부 좀 하는 아들이 걱정이다. 그리고 내가 걱정이다.

나 어릴 적 우리반 꼴찌 녀석들처럼,

나 어릴 적 늘 꼴찌하던 외사촌 형처럼,

상황을 헤아릴 줄 알고 진짜 필요한 삶의 맥락을 꾀어낼 줄 아는 학생들로 키워내려면 지금의 학교 교육과정은 커다란 장애요인이 아닌가 싶다. 산속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 나올 줄 아는 아이들로 키워내야 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아내를 만나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서서히 갖게 된 생각이고 지금도 발전시켜가고 있다.

그래서 솔직히 내가 시도하는 것이 있다. 우리 아이들과 쇼핑을 하거나 산책할 때 아빠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다. 느닷없이 내가 발걸어 넘어뜨린다. 아이들은 두 번 속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이면서, 신경을 곤두세운다. 아빠 자세가 약간 의심스럽다 싶으면 딱 멈춘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는 난이도가 더 높다. "뛸까?" 해 놓고 막 뛰려고 하는 순간에 발을 걸어챈다. 아이들은 세 번 속지 않으려도 더더욱 촉각을 곤두세운다. 이런 식으로 끊임없는 변칙적 자극을 주는 것이 수년 전부터 내가 시도한 방법이다. 아이들이 본능적 직관을 자극하여 활성화시키려는 목적이다.

또 있다. 본능적 수준의 직관뿐만 아니라 영적 수준의 직관을 자극하기 위한 시도도 한다. 잠자리에 들 때, 서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아맞추기하는 것이다. 아무 힌트도 없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잘 맞추려면 그냥 마음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재미있다. 이 훈련의 목적은, 무언가를 해결하고자 할 때 항상 주어진 단서만 가지고 계산해서 맞추려는 합리적 생각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기 위해서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효과를 따지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계산이고 합리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효과적이라 하는 것은 다 소용없다. 아이들 스스로 그때 그때 판단할 뿐 아닐까 싶다. 내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건 아빠의 사랑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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