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기정(서울 창동고 교사)

민주화운동 세력에 실망한 분들이
민주화운동 세력에 실망한 진짜 이유

교사 이기정 씨
교사 이기정 씨

민주화운동에 대해 존경심과 경외심을 가졌었으나 그 마음이 퇴색하신 분들, 심지어는 혐오적 감정까지 갖게 되신 분들. 요약해서 말하자면 민주화운동에 실망한 분들이 계시다.

그들은 단지 조국 장관 같은 단 몇 사람의 행실에 실망하여 그런 마음을 갖게 된 게 아니다. 조국 장관 같은 사람들이 보인 행실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행하는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상상초월의 위선적 행위지만 그래도 그건 극히 소수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일 뿐이다.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다수의 시람들이 일상적-세속적 삶을 살아간다고 실망하게 된 것 또한 아니다. 한때 민주화운동에 투신했으나 시대의 변화에 맞춰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랑스러울 것까지는 없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세속적 욕망을 갖고 세속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자랑스럽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끄럽지는 않다.

조국 사건 이후 민주화운동 세력에 실망한 분들이 민주화운동 세력에 실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화운동 세력의 다수가 조국 장관 같은 사람들이 보인 상상초월의 위선적 행위와 그들이 행한 다수의 범죄적 행위를, 단지 한두 개로 그치지 않는 다수의 범죄적 행위를, 노골적으로, 심지어는 적반하장 격으로 비호하고 옹호한 데에 있다. 그런 비호와 옹호의 행위에 민주화운동의 상징 자산을 이용하고 탕진한 데에 있다.

조국 사태 이후 나는 내가 오랫동안 친밀감을 느끼고 존경심을 품었던 그리고 동지적 감정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과 이별 아닌 이별을 했다. 드러내놓고 싸운 것도 아니고 표나게 작별을 고한 것도 아니니까 이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영혼이 느끼는 서먹한 거리감이 현저히 커졌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별한 것과 마찬가지다.

친밀감은 퇴색하고, 존경심은 엷어지고, 동지의식은 사라졌다. 조국 장관을 옹호하는 분들이 나에게 가졌던 마음도 또한 그럴 가능성이 클 것이니 내쪽에서 아니라 해도 그분들 쪽에서 먼저 이별을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마음 속에 이전에 없었던 부정적 감정, 경멸감 비슷한 부정적 감정이 생겼는데 그분들 또한 나에게 그 어떤 성격의 부정적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크니 이것까지 고려하면 이별이란 말을 쓰는 게 무리는 아닐 것 같다.

내가 맺었던 인간관계에선 내쪽이 소수이고 저쪽이 다수이다. 그래서 2019년 8월 이후 나는 외로웠다. 뼛속 깊이 외로웠다. 그래서 어떤 때는 조국 장관 옹호 편으로 투항하고 싶기도 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외롭지는 않다. 얼추 다 극복했다.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지만 말이다. 내가 실망하고 상처받은 분들에게 무릎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용서를 구하는 그분들은 대부분 내가 알지 못하는 불특정 다수이다.

그분들이 내 마음을 받아준다 해도 그를 통해 내가 느낄 충만감의 크기는 내가 오랫동안 영혼으로 교류했던 사람들과 마음이 멀어지면서 느낀 상실감의 크기보다 현저히 작을 것이다.

나로선 슬픈 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기회가 닿는 대로 아래 글을 쓰신 분과 같은 사람들을 향해 계속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 같다. 나에게 그럴 자격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나의 용서를 받아주신 어느 분의 글)

지난 대선 이후로 그리고 지난해 조국 이후로 자칭타칭 민주화(기득권) 세력에 대한 혐오에 가까운 감정이 자꾸 깊어져서 몹시 불편했다. 성탄절 밤에 페북에 들어와 읽게 된 이기정 선생님의 포스팅 덕분에 마음이 풀렸다. 감사합니다.

나는 이기정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전혀 알지 못한다. 그저 페북 통해서 읽은 입시에 대한 의견에 너무나 공감할 수 있어서 그동안 팔로우해 왔다. 오늘 연속으로 올려주신 포스팅을 보면서  (이기정 선생님께서) 1985년에 민주화운동으로 옥살이를 하시고, 선생님의 어머님이 그후에 옥고를 치르셨다는 걸 알았다.

조국사태 이후 일련의 일들에 대해 그들과 함께 민주화운동의 진영에 속해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하다고 하신다. 사실 그간 민주화 기득권 세력 때문에, 한국 현대사속의 모든 민주화운동에 대한 내 마음속의 존경과 경의를 부정하고 싶었는데 이기정 선생님과 그 어머니의 말씀을 읽고 너무나 죄송해졌다..

조국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조국 전 장관을 주연 배우에 비유하자면 주연 배우만 바뀐 채 비슷한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에서 조국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실망하고 상처받은 분들게 거듭거듭 용서를 구한다.

저작권자 © 자연치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