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글 특별기고]

쓸데 없고 지저분한 생각들 씻기면서
나의 문제를 마주보고 고쳐나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라는 사실 깨달게 되어

회피하는 삶의 태도에서 비롯한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생활 반성

[편집자 주] '치유글쓰기' 신문사에서는 독자들에게 치유글쓰기를 지도해 드리고 완성본을 게재해 드립니다.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예명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일선 학교와 병원, 요양원, 수행단체에서 출장 강의도 해 드립니다. 온라인 비대면 강의(ZOOM)도 가능합니다.(문의=gjgjgj7777@hanmail.net)

 나는 대학교 4학년이지만 남들과는 다르게 그동안의 학교 생활을 되돌아보면 이렇다할 추억이나 경험이 없다. 그렇다고 성적이 매우 훌륭하지도 못하다. 누가 물어보면 대답을 꺼릴 정도로 좋지 않다.

친구들을 보면 학점, 대외활동, 취업 준비 등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고 또 그러면서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있다. 그들의 얘기를 들으면 겉으로는 공감하는 척, 나도 비슷한 상황인 척 하지만 솔직히 마음 속엔 ‘그래도 나보단 낫구만’ 이런 생각만 가득하다. ‘대학교 4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하지 않았냐’는 엄마의 촌철살인에 분해서 눈물 흘린 기억도 있다.

★ 이 지경까지 된 원인을 나는 ‘회피하는 삶의 태도’에서 찾았다. 그 자세가 내 몸에 스며든 시기는 2018년 2학년 1학기 때다. 당시 나는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수강신청을 완전히 실패했다. 수강신청의 중요성을 모르는 때여서 듣고 싶은 과목을 계속해서 조회해 보지 않고 그냥 다른 학과 전공들 중에서 정원이 차지 않고 발표나 토론이 없이 시험으로만 학점을 받는 과목을 마구잡이로 신청했다.

★ 그것은 큰 불행의 시작이었다. 수업내용은 교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따라가기 벅찼다. 복습조차 너무 고통스러워서 조금씩조금씩 미뤄졌다.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들 속에 나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과 학생들과 간단히 의견을 나누는 시간에 침묵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이 매일매일 공포스러웠다. 심지어는 학교 앞에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바로 집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학과 건물 앞에서 그대로 다시 집에 오기도 했다.

그렇게 학교를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다시 따라잡기에 너무나도 큰 공백이 생기자 나는 화끈하게 학사경고를 받고 다음 학기 때부터 미친듯이 공부하자는 합리화를 시도했고 그 결심대로 나는 학사경고를 받았고 엄마를 울게 만들었다.

★ 인생에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하나 넘어버린 나는 처음엔 내가 그 선 밖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무섭고 괴로웠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되겠노라는 결심을 했지만 학교에 다시 갈 용기는 없어서 재정비를 하기 위해 한 학기 휴학을 했다. 긴 방학이 생긴 나는 ‘결심하고 미루고 결심하고 미루는’ 생활을 반복했다. 집 안에서 은둔했고 결국 나아진 건 하나도 없이 다시 학교에 가야 했다.

역시 학교는 여전히 무서웠다. 초반에는 열심히 사는 척 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 힘들고 짜증나는 과목은 한두 번 나간 뒤 빠졌다. ‘그까짓 에프 한 개 더 받으면 어때’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내 머리를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 ‘이렇게 계속 싫다고 피해 버려도 되나?’ 하는 이성적인 생각은 잠시, 정말 잠시 스쳐지나갔다. 학사경고는 피했지만 다른 과목들에서도 노력은 없었다. 그저 어떻게든 넘어가기만 하자는 마음으로 에프 직전까지 수업을 빠지고 제출에 의의를 두는 수준의 과제물을 냈다. 그렇게 학사경고보단 아주 조금 더 나은 성적을 받고 그 다음 학기도 휴학한다.(사실 이때는 학점을 보기가 너무 무서워서 확인도 안했다. 성적은 2020년 2학기 마치고 처음으로 봤다.)

★ 어영부영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땐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긴 좀 찔리긴 했다. “강의실에 가지 않아도 되니 난 이제 과 수석이다.” 이런 식으로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잠시 잊었던 나의 못된 자아가 다시 찾아와 내 머리채를 잡았다. 나는 크고 작은 과제들을 내지 않았다. 나는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고 시험공부도 하나도 하지 않았다.

‘적당히 얼버무리자.’

‘이번 과목들은 너무 어려웠어. 다음에 잘하자.’

‘인생 망하면 그냥 죽지 뭐.’

‘죽고 싶은 와중에 내가 이걸 해야 될 이유가 있나?’

이런 끔찍한 생각들이 나 자체였다. 교수님의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과제들도 있었지만 그 피드백에 어떤 말들이 써 있을지 끔찍하게 두려워서 보지 않았고, 끝내 제출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어쩌다 현실적인 감각이 잠시 나에게 왔을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서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의 망상들이 유일한 숨 구멍이었다.

★ 망상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했다. 나는 계속 우울해졌다. 더 심하게 더 길게 우울해져서 죽음밖에는 원하지 않는 상태가 되자 나는 나에게 주어진 24시간이 영원 같았다. 시간의 공백이 두려웠다. 휴대폰만 보다 하루가 갔다는 죄책감이 매일 밤 나를 긁어댔다. 그렇게 최악의 상태일 때 학교에서 1,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검사를 받게 되었다. 우울 점수가 너무 높았던 나는 상담실의 전화를 받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은 올해로 1년 정도가 되었다. 상담 선생님의 권유로 정신과의원을 다니며 약도 처방받고 있다. 사실 상담을 받고 병원을 다니면서 내가 바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 들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게 달라지고 있는 걸까 하는 의심이 있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좋은 것은 내가 나의 정신 건강의 상태를 알고 개선시키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1학기도 얼렁뚱땅 보내고 방학 초반에도 자유시간이 너무 싫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세계 고전 문학 작품들을 하루에 한 권 이상씩 읽으며 독서에 몰두했다. 그랬더니 쓸데 없고 지저분한 생각들이 씻기면서 나의 문제를 마주보고 조금씩이라도 고쳐나가는 것이 인생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 학사경고를 받은 이후부터 자리잡은, ‘문제를 외면하는 태도’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무성한 풀밭에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면 평평한 길이 생기듯이 내 머릿속에 아주 빠르고 편한 길이 생겨버려서 나는 문제만 생기면 그 길로 달아났다. 또 그런 식으로 피하기만 하면서 머리와 마음이 자괴감과 우울로 가득 차버려서 짧지 않은 기간 정말로 죽음을 옆에 항상 데리고 다녔다. 그 친구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귓속말을 멈추지 않으며 내가 다른 길로 가려 하면 다시 나를 외면의 길로 끌고 왔다.

그렇게 외면은 나를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껍데기뿐인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나쁜 방향의 ‘새로운 나’는 쉽게 내 곁을 떠나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외면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반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제 나의 가장 큰 문제를 알았고 나를 도와주는 새로운 사람들이 있으니 새로운 불편한 길을 찾아 걸으며 조금씩 내 안을 채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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