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글 특별기고] 이동호(서울시립대 경제학부)

할아버지는 항상 건강하셨다. 운동을 좋아하셔서 매일 테니스를 치셨다. 전국대회 수상을 하실 정도로 잘하셨다. 언제나 활기차고 씩씩하게 지내시던 할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입원을 하셨다. 병원에서는 폐렴이라면서 2주 정도 지나면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2주가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엄마가 할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러 가기로 했다. 검사결과가 나오는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할아버지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3기라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실감이 안 났다. 어쩌면 실감하기 싫었을 수도 있었다. 암 3기지만 내 할아버지는 건강하니까 금방 훌훌 털고 나아서 다시 건강해지실 거라고 생각했다.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방학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나름대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항암 치료로 입원해 계시는 동안 병상을 지키면서 간호해 드렸다. 퇴원하신 뒤에는 산책을 함께 해 드렸다. 통원 치료를 하실 때 병원으로 모시고 가기도 했다.

2학기가 시작된 뒤로는 한두 번 뵈러간 거 말고는 할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했다. 2학기가 끝난 뒤 군대를 갔다. 입대 전 할아버지를 뵈면서 말씀드렸다.

“휴가때 뵈요. 금방이니까 치료 잘 받으시고 밥도 잘 챙겨 드세요. 건강하셔야 합니다. 알았죠?”

그 날이 할아버지와 내가 함께한 마지막 날이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던 어느 날, 방송에서 나를 불렀다. 영문을 모른 채 중대장에게 갔다. 중대장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일 장례식 때문에 아빠가 날 데리러 올 거라는 이야기도 했다.

갑자기 멍해졌다. 어떻게 장례식장까지 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돌아가신 게 맞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할아버지의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났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울지는 않았다. 그저 좀 많이 슬플 뿐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이틀을 보내고 화장을 하는 날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시신을 봤고, 그 시신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갔다가 재가 되어 나오는 것을 지켜봤다. 재를 작은 상자에 옮겨 담고 묘가 있는 산으로 출발했다.

내가 할아버지 영정 사진을 들고 가장 앞자리에 위치했다. 가는 내내 울음이 나왔다. 이제 정말 돌아가셨구나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이 울었던 날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하루만큼의 눈물로 할아버지를 보냈다.

내 딴에는 그래도 '할아버지랑 같이 많이 있어 드렸지. 그 정도면 나름 좋은 손자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랑 놀았던 기억, 내가 방학 때 놀러가면 '동호 왔냐?'고 큰소리로 외치시던 모습, 불과 반년 전 병원에서 같이 있었던 나날 등등 수많은 추억들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남은 건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하루라도 더 할아버지랑 함께하지 못했다는 후회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 때문이었을까. 거짓말처럼 바로 할머니께서 이어서 편찮기 시작하셨다. 병원에서는 초기 치매라고 했다. 정말 요리를 잘하시고 매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장을 봐오시던 할머니의 모습은 사라지고 조금씩조금씩 아기같이 변했다. 누워계시는 날이 많아졌고 나랑 내 엄마(할머니 딸)를 많이 찾으셨다.

 

혼자 집에 두기엔 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엄마가 한 달에 2주씩 대전에 내려가 할머니를 돌봐 드려야 했다. 격달로 아빠도 함께 내려갔다. 재활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자주 가셔야 해서 할머니를 모셔다 드리고, 기다렸다가 다시 모셔왔다. 몸에 좋은 음식으로 만들어 드렸다. 꾸준히 산책도 모시고 나가야 했다.

처음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3~4일 정도가 지나면 조금씩 귀찮고 짜증나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 치매인 할머니를 이해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몇 번씩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할머니에게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간혹 짜증을 부릴 때도 있었다.

그렇게 한 나의 마음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그에 더해 간호 초창기 엄마와 아빠가  싸우기도 했다. 아빠는 엄마에게 왜 모든 짐을 혼자 감당하려 하냐면서 간호를 좀 줄이라고 했다. 엄마보다 간호를 덜 하는 삼촌(엄마의 동생)을 언급하면서 엄마가 너무 과하다고 했다. 엄마는 아빠가 공감해 주기를 바랬지만 그러지 않는 모습에 슬퍼했고, 본인 엄마가 아파서 또 슬퍼했다. 엄마는 가끔씩 내 앞에서 울곤 했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슬펐다.

하지만 힘들고, 귀찮고, 짜증나고, 슬플 때마다 할아버지를 생각한다. 물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잠깐 슬픔에 잠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느꼈던 후회를 떠올리면 할머니를 보는 나의 마음에 다시 애틋한 감정이 생긴다. 그 날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대한 할머니에게 살갑게 대해드리고, 시간을 내서 얼굴을 많이 뵈러 가자는 생각이 피어난다. 지금 내가 아무리 잘해 드렸다고 느껴도 나중에 할머니를 볼 수 없는 날이 돼서는 그 생각이 사라져버린다는 교훈을 새기고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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