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글쓰기 학생글 예문]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아빠의 젊음과 노력에서 나온 선물
부모를 부끄러워 했다는 게 마음에 걸려"

우리 아빠는 무뚝뚝하면서도 그 속에서 은근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보통의 아빠와 같은 분이시다. 나는 우리 아빠를 정말 많이 사랑하면서도, 아빠를 볼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아린 느낌이 때때로 든다.

우리 아빠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오빠와 나를 낳자마자 기술을 배워 모터 가게를 차리셨다. 처음에는 단순한 모터 설비로 시작했던 사업이 점점 커지면서 지금은 관내 대부분의 학교를 도맡아 수리하실 만큼 성장하셨다. 아빠가 맡으셨던 학교 중에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도 포함이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우리 아빠는 내가 다니고 있던 고등학교에 일을 하러 오셨다. 화장실 수리를 하기 위해 오셨던 건지, 수도배관 수리를 위해 오셨던 건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빠는 우리 학교에 일을 오실 때마다 문자로 “아빠 학교 왔어. 이따 보러와”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비슷한 몇 번의 문자와 전화를 가끔, 아주 가끔은 못 본 척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그냥 부끄러워서였다. 추레한 차림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 아빠를 나의 친구들에게 당당하게 소개할 자신이 없었다. 또, 내가 아빠와 얘기하는 걸 누군가 보고 아빠의 직업과 차림에 대해 함부로 얘기할까 겁이 났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난 반대로 억지로 내 친구를 데려가서 아빠에게 소개를 시켜드리고,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가져다 드렸다. 이 모든 행동은 그저 아빠를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한 거였다. 하지만 그 행동은 순수한 동기로 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아빠를 부끄러워했다는 걸 인정하는 셈이 되어 괴로웠다. 당시의 나는 설비 일을 하는 아빠에 대한 원망, 친구들이 혹여나 나를 무시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그리고 옳지 못한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으로 뒤엎여 있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난 여전하다. 사춘기 시절이라면 누구나 가끔은 자신의 부모를 부끄러워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고, 때때로 밀려드는 죄송함과 죄책감을 외면해 왔다. 하지만 내겐 그 어떤 감정들보다도 죄책감은 결코 지울 수 없었다. 당시의 기억이 족쇄가 되어 나는 아직까지도 당시에 아빠를 모른 척했던 내가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밉고, 아빠에게 죄송하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누리는 모든 것은 아빠의 젊음과 노력에서 나온 선물임을 실감한다. 그래서 더더욱 자식으로서 부모를 부끄러워 했다는 게 용서되지 않았다.

오랫동안 이 감정들을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빠를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평생 이 죄책감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당시엔 너무 무겁고 아파서 들추지도 못했던 당시의 기억이 지금은 용기내어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내게 비록 느리지만 언젠가는 완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빠가 가장 바라는 건 나의 건강과 행복일 것이다. 내 마음의 건강, 행복이 아빠에 대한 죄송함으로 망가지는 건 결코 아빠가 바라는 게 아닐 것이다. 때때로 이 기억으로 괴로울 때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아빠에게 편지를 쓰거나 맛있는 요리를 해드리면서 이 고통을 동력삼아 효도하고 싶다. 어쩌면 내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이기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먼 미래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죄책감에 숨어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한 더 큰 후회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어리고 이기적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데 서툰 딸이다. 동시에 아빠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중 한명이므로 아빠를 위해서라도 행복할 자격이 있고, 행복해야만 한다. 그래서 더더욱 숨지 않고 나만의 방법으로 이 아픈 기억을 천천히 극복할 것이다.

저작권자 © 자연치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