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선거 부정 의혹 고발장을 접수시키는 의원들
6.13. 선거 부정 의혹 고발장을 접수시키는 의원들

지난 12월 우리 국회는 여당과 군소 야당들 간에 4 + 1이라는 의정 사상 생소한 연대를 발동하여 신속처리법안를 동원한 가운데, 공직선거법을 개정하여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였다. 그 과정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고 의원들이 무더기로 기소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선거법 개정 후 첫 선거라는 이번 4.15 총선에 정당 등록 현황을 보니 연동형 도입의 취지가 무색해졌음이 드러났다. 한마디로 연동형 도입이 도루묵이 되었다. 국회가 자신들이 만든 법을 불과 3개월 만에 스스로 폐기한 셈이다.

​선거법 개정 발의 취지를 보면 사표방지를 통한 국민 의사 왜곡을 방지하고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그런데 거대 양당인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각각 사실상의 위성 정당을 만들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별개 정당으로 입후보함으로써 이러한 입법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 시켰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원래 의도라면 동일한 정당이 지역구와 비례제에 동시에 입후보하여 비례대표 투표로 전체 의석 규모를 정하고 여기서 지역구 당선 규모만큼을 차감하여 비례대표 당선 규모를 정해져야 하는데, 거대 양당이 독립 위성 정당을 만들어 이 연동형의 핵심적 설계를 피해 나갔다.

특히 이번 선거법 개정을 발의했던 정당들은 이제 국민들을 향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더블당은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 관련 법을 챙겼으니 이게 더 국민들에게 중요하다고 할까. 4개 군소 정당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만을 바라보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생겼으니 동정표라도 달라 할까. 대표 발의자였던 심상정 의원이 선거법을 다시 고쳐야 한다고 했다는데, 이건 국민을 기만했다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해당 정당들은 책임지겠다는 목소리가 없고 언론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총선에 임박하여 모두 표의 향배에만 관심을 두는 모양새다. 결국 우리 정치판의 수준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수준으로 서구에서 하는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는 의원들이 있으니, 이상은 클지 모르나 자신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 3.6. 국회에서 발의되고 국무회의 의결까지 거쳐 공고 중인 원 포인트 국민발안 개헌안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당초 3.27. 국회 의결을 시도할 것이라 했지만 이것도 결국 식언이 되고 말았다. 개헌을 하겠다고 무려 148명의 의원들이 제안한 개헌안을 별다른 설명이나 이해도 구하지도 않고 취하해 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국민의 대표자라는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국민을 우롱한 것이다.

국민 우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울산 하명 선거 부정' 사건 등 대한민국 최악의 선거 부정 혐의로 정부의 사법기관인 검찰에 의하여 기소된 자들이 기소장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이번 총선에 대거 입후보하였다. 일반 공직자들은 징계 절차만 시작해도 그 진위나 경중의 여부에 관계없이 보통은 직위해제부터 된다. 그런데 이건 징계는커녕, 헌법상의 주요 공직인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 공천을 받아 출마를 한다니,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이들은 공직자의 모범이 되어야 할 청와대의 정권 핵심 인사들이다. 이러고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한다고 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 하에서 과도한 관용은 결국 관용을 사라지게 한다고 했다.

플라톤은 정치 지배자의 도덕적 자질에 따라 군주정, 참주정,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의 도식을 제시하고, 역설적이지만 "항상 많은 나쁜 사람들이 있기에 나쁜 정치 형태는 단 하나, 민주정"이라 했다. 여기서 플라톤의 전제는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느냐?"란 물음이다. 이 질문에 플라톤은 '가장 뛰어난 사람The best'라 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라고 했고 히틀러는 '나 I'라고 했다. 그래서 칼 포퍼Karl Popper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결론으로 귀결될 수 있는 플라톤의 전제 대신, "어떤 정부 형태를 가져야 하느냐?", 좀 더 구체적으로는 "무능하고 파괴적인 정부로 부터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정부 형태가 있느냐?"라는 질문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대표자를 뽑는 '긍정적 권력positive power'이 아니라 유혈 사태 없이 무능하고 파괴적인 대표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부정적 권력negative power'이라 했다. "The question is not how to get good people to rule ; THE QUESTION IS : HOW TO STOP THE POWERFUL from doing as much damage as they can to us"

파시즘이나 군부 통치와 같은 노골적인 독재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추고,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나 그 정권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주장이 상당히 무게 있게 다가온다.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다는 말이다. 남미의 우고 차베스, 알베르토 후지모리, 라파엘 코레아, 이들은 모두 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국가 지도자로 선출되었지만 또한 이들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허물어 뜨렸던 장본인들이다. 이들은 헌법을 부정하거나 반헌법적인 의지를 드러냈고 정적에 대한 폭력을 부추겼다. 작금 우리의 정치는 과연 어떤 민주주의를 하고 있는가. 우리의 민주주의 제도는 무능하고 파괴적인 대표자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가.

[2018.10. 어크로스 출간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공저 박세연 옮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1997년 Routledge 출간 Karl Popper와의 2회 인터뷰 내용을 게재한 "The lesson of this century"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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