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가 좋은 것인가, 부정적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참으로 쉽지 않다. 아마존으로 인해서 영세 책방이 거의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나 골목 가게들이 상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소식이 가끔씩 전해진다. 이렇듯 많은 영세 공급자들이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세계화의 영향이 아닐까. 옛날 아마존이 없었을 때 오랜만에 책방에 들러서 이 책 저 책을 집어 들어 보고, 또 한두 권의 책을 사는 그런 재미를 느꼈던 우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계화의 희생자일까.

물론 세계화에 비판적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최소한 지구상의 최빈곤층에게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다준다. OECD 통계로도 세계화의 긍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며, 따라서 나는 세계화에 찬성한다. 무역자유화는 세계화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무역자유화는 찬성하지만 자유화 움직임을 완전히 찬성하는 것은 아니며, 예를 들어 금융이나 주민 이주는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함부르크 G 20 정상회담시 반세계화를 주창하는 데모대.
함부르크 G 20 정상회담시 반세계화를 주창하는 데모대.

세계화란 세계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폐쇄적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전 세계의 사람, 기업, 정부 간의 상호 작용과 통합의 과정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시민이자 한국민이지만, 동시에 세계 시민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야말로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다. 전후 70여 년의 기간 중 한 세대 만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거의 유일한 국가다. 세계 경제사를 다시 쓴 우리의 금자탑은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없었다면 결코 성취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이 곧 세계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과거 13세기에 유럽대륙에서 나타났던 한자동맹은 무역을 바탕으로 국경이나 종교적 대립을 초월하였던 공동체로서 오늘날 유럽연합의 전신으로 볼 수 있다. 한자동맹이나 유럽연합 모두 세계화의 소산이다. 2차 세계대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던 1944년 출발한 브레턴우즈 체제로부터 GATT를 거쳐 WTO 체제에 이르기까지 국제통화체제나 다자무역주의의 발전 과정도 결국 세계화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도국도 참여하는 G-20에도 지구상의 국가들이 세계화란 용광로 속에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다. G-20회의가 열리는 곳에는 어김없이 격렬한 반세계화 시위가 수반되는 것을 보아도 G-20가 세계화의 추동력이란 걸 알 수 있다.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제프 베이조스.

이럭저럭 순탄해 보였던 세계화 추세는 2016. 6월 브렉시트와 2017. 1월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으로 반전을 가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을 중단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이미 그의 전임자부터 빈사 상태였던 도하라운드는 아예 명맥이 끊어졌다. 다보스 포럼에서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의 시진핑이 세계 자유무역의 수호자인 듯 새로운 조명 받았다. 시진핑은 세계화가 경제성장을 가져왔다며 세계화를 옹호한 반면, 트럼프는 “우리 제품을 만들고, 우리 기술을 훔치고, 우리 일자리를 파괴하는 나라들로부터 우리의 국경을 보호해야 한다”라며 세계화의 비전을 거부했다.

세계화 무대에 뒤늦게 진입한 중국이 세계화를 옹호하고 세계화의 거인 미국이 세계화를 거부하는 듯한 진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그 해 6월 초 미국은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했고, 7월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의 입장차는 다시 한 번 확연해졌다.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는 반세계화 세력의 과격한 집회로 큰 후유증을 남겼다.

물론 중국이 진정한 세계화의 주창자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시진핑이 세계화의 기수임을 자처하고 나섰으나 국제현안 해결에 대한 중국의 기여도, 중국 내부의 사회적, 경제적 통제, 제반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중국식 발전모델의 한계를 감안해야 한다. 중국은 경제 개방성을 평가하는 OECD 조사에서 59개 조사 대상국 중 59위로 가장 폐쇄적인 산업국가로 분류되고 있을 뿐 아니라 차이나 게이트에서 보듯이 외국 기술의 탈취, 대중 여론의 조작 등 세계화에 필수적인 신뢰를 결여한 국가로 낙인 찍혔다. 특히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사태시 초기 발발을 은폐함으로써 세계적인 판데믹으로 확산되는 단초를 제공한 중국의 기만적 행태는 중국이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로서의 자격을 더 이상 계속해서 누릴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화의 관점에서 과연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어떤 파장을 가져 올까? 우선 감염 확산에 대한 공포로 세계 각국이 거의 모두 자신의 국경을 닫았다는 것인데, 이로 인하여 무역이 정지되다 시피했다. 유럽연합도 단일시장으로 운영되고 있고 체약국간 자유로운 국경 통과를 보장하는 쉥엔협정도 있지만 바이러스 감염사태가 확산되자 모두 국경의 빗장을 닫아 걸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재기 현상도 국제무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생필품 공급도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 시진핑.
트럼프와 시진핑.

지난 3.27.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과 전화 통화를 한 직후 중국에 “큰 존경심Much Respect”을 표했다는 뉴스를 일제히 보도했다.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강력한 이해력을 평가하면서 중국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고 높은 존경심을 표한다 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과 무역전쟁을 촉발한 것이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발발 이후에도 ‘중국 바이러스‘라 할 만큼 중국과 대립각을 세워온 터이라, 이 날 그의 중국에 대한 온화한 입장은 놀랄 만 하다. 미국이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불과 며칠 전 뉴욕의 한 병원에서는 쓰레기 비닐봉지로 방호복을 만들어 입고 일하던 간호사가 확진, 사망했다. 그러니 인공호흡기ventilator도 항생제 약재도 중국에서 가져와야 하니 잠시 꼬리를 내린 모양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그 중 세계화의 반전 현상은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트럼프대통령이 중국에 대하여 존경심을 표한 해프닝에서 보듯이 특히 중국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이제 오히려 탈중국이란 긴급한 과제를 세계인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지난 20~30년간 좀 더 싼 노동력과 생산비만을 찾아서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지만 이제 이러한 비대칭적인 글로벌 공급망의 부정적 단면이 확연히 드러난 이상, 치명적일 만큼 부풀려진 중국에의 의존도를 줄이거나 벗어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우리 앞에는 세계화로 향하는 공동의 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전 지구적 차원에서 무조건적으로 세계화가 부정되진 않겠지만 말이다. 다같이 몰려갈 수 있는 공통적인 세계화의 길은 더 이상 없을 것이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역동성을 가진 서로 다른 지역들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질적 변화를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 다자주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양자주의라 하겠다. 즉, 좀 더 권역화된 국가 그룹들 간에 서로 다른 형태의 세계화가 지속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경제보다는 이데올로기를, 이데올로기보다는 개별적인 신뢰를 앞세운 국가 간 재편이 일어나면서 그 각 그룹별로 세계화가 계속 진전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과거 “역사로의 회귀”일 것이다.

여객기 취소를 알리는 전광판.
여객기 취소를 알리는 전광판.

자유무역의 이점보다는 자유로운 국가 주권을 택한 영국의 브렉시트로 던져진 반세계화의 물결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제일주의를 거쳐 이번 중국 바이러스 사태로 변곡점을 맞게 되었다. 더욱이 이러한 반세계화가 디지털화로 인해 세계 무역의 역동성이 감소하는 구조적인 전환기에 우리를 덮쳐오고 있다는 사실은 예사롭지 않다. 역사상 대표적인 세계화의 실패 사례였던 대원군과 고종 치하의 조선과 구한말을 딛고 일어서서, 자유무역과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로 거듭 나 세계 경제사를 새로 썼던 대한민국이 이 반세계화의 파고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 2017. 9월 출간 한울 엠플러스(주)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에서 일부 인용][출처]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세계화의 반전|작성자 히든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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