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독일모델연구소 대표)

영국은 2016. 6월 유럽연합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은 1973년 이래 EU 회원국이지만 단일 통화(유로EURO) 유로존 국가는 아니다. EU의 핵심은 경제, 화폐통합인데 유로존이 아니다 보니, EU 내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서 핵심적인 역할을 못하고 겉돌게 되었다. 로스토W. W. Rostow의 경제발전 5단계론에서 볼 때 독일은 ‘이륙단계’가 1850년 이후에야 시작되어 영국에 비해 70~80년 정도 뒤떨어져 있었던 나라다.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도 결국 영국이 승리했다. 그런 영국이 이제 독일에 한참 밀리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유럽연합은 1951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로 출발하여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EEC를 거쳐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으로 오늘날의 유럽연합EU으로 발전해 왔다. 유럽연합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분야(공동외교안보 및 내무사법정책) 협력을 시도하였고 "유럽시민"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런 EU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이 마침내 파국을 불렀는데 EU 내 인구 이동, 특히 노동력의 자유이동이 허용되면서 영국에는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EU국가들로부터 매년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몰려들었고 영국인들의 불만은 고조되었다. 급기야는 캐머런 총리가 정치 모험을 했다. 그 자신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았지만 국민투표 실시를 앞세워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모험을 감행했지만, 결국 모험은 모험으로 끝났다.

사진=장시정 대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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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럽연합은 원 회원국 6개국에서 2013년 크로아티아 가입을 끝으로 28개국으로 확대되었다. 나는 2014. 9. 함부르크에서 헬무트 슈미트 전 독일총리를 만나서 EU에 관한 그의 회고를 들을 수 있었다.

"6개의 국가로 시작되었던 EU가 지금처럼 28개 국가가 되고 이 중 반 이상의 국가가 통화연맹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큰 규모로는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렇게까지 오게 한 것은 큰 실수였다. 지금 EU의 전망은 매우 나쁘다. 내 관점은 비관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이다. 더 이상 통제가 가능하지 않다."

​2016년 영국의 국민투표 이후 3년 반 이상의 혼란 끝에 지난 1. 31. 영국은 EU를 탈퇴하였다. 영국은 EU 내 공무 담임권이나 투표권 정지등 회원국으로서의 지위가 즉시 상실되면서 공식적으로 탈퇴하였고 EU는 사상 처음 회원국이 줄었다. 다만, 과도 기간인 올 연말까지 구체적인 탈퇴 조건, 즉 향후 영국과 EU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관하여 협상하게 되며 이 과도 기간 중에는 EU 규정 준수, 분담금 납부, 주민 이동 등은 종전처럼 유지된다. 이것은 탈퇴부터 마무리한 후 새로운 관계 설정에 관한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는 메르켈 총리의 초기 입장이 관철된 결과로 보인다.

​향후 협상의 초점은 무역으로서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거래를 포함한다. 영국은 대부분 무관세가 허용되는 캐나다. EU 간 FTA 모델을 적용받기를 원하고 있지만 EU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영국 기업은 이미 EU 경제에 통합되어 있어 영국에 무관세를 허용할 경우 캐나다와는 달리 EU 기업이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FTA가 아닌 WTO 조건만으로 교역하는 소위 'WTO 브렉시트'가 거론되는데, 이것은 무역 분야에 있어서는 'no deal 브렉시트'와 마찬가지인 '경착륙'에 해당된다. 영국은 자결권을 강조하며 EU의 노동, 환경, 안전에 관한 EU표준으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지만, 영국이 EU의 규칙에서 멀어지려고 할수록 영국 상품/서비스의 EU시장에 대한 접근은 제한될 것이다.

​올 상반기까지 아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새로운 관계 설정도 없이 그냥 탈퇴가 이루어지는 'no deal 브렉시트'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존슨 총리가 연말까지의 협상 시한 불가변성을 공언한 가운데 11개월은 새로운 무역협정을 타결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캐나다.EU간 FTA의 협상에는 7년이 걸렸다. 'no deal 브렉시트' 경우에는 관세와 보건, 환경, 쿼터 등 비관세 무역장벽NTM의 부담이 그대로 영국 기업을 덮칠 판이다. EU는 영국의 최대 무역, 투자 파트너로서 영국 정부는 협상 결과에 따라 탈퇴 후 15년간 GDP의 최소 4%에서 최대 9%의 손실 발생을 예상하고 있다.

사진=장시정 대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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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협상의 결과가 어떠하든 이제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다. 브렉시트에 따라 영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만만찮아 보이지만, 결국 영국은 과거와 같이 “명예로운 고립”을 선택했다. 2017. 3월 영국의 EU 탈퇴 공식 서한에서 메이 총리는 영국의 자결권 회복을 강조했고, 존슨 총리는 연말까지의 협상에서 영국의 주권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헨리 8세가 자신의 재혼을 허락지 않는 교황청에 대항하여 1534년 수장령을 발포하여 유럽을 떠난 지 5세기 만에 영국이 또다시 유럽을 떠났다. 사실 영국은 유럽 국가가 아니다. 유럽 대륙 국가들과는 기질이 다르다. 2016. 10월 함부르크 항구 축제에 왔던 영국인 사학자이자 독일 현대사 전문가인 커쇼Ian Kershaw로부터 유럽에 관한 영국인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영국은 지리적으로 유럽의 주변부에 위치해 있고 역사적으로도 대륙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대륙보다는 해외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기껏해야 대륙에서 지배적 세력의 출현을 저지하기 위해 개입했을 뿐이다. 1973년 영국이 유럽경제공동체에 가입한 것은 무역 이익이라는 순수한 경제적 동기에 기인한 것이었다. 영국은 유럽과 이념이 다르다. 스페인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영국인들을 생각해보라. 그들은 유럽에 대한 애정이 없다! 그들은 이웃인 프랑스보다 호주를 더 가깝게 생각한다."

나는 1992년 마스트리히트조약이 타결되었을 때 터져 나왔던 환희euphoria를 기억한다. 메가EU가 금방이라도 미국을 앞지를듯한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다. 그 후 통화동맹EMU과 리스본조약을 거치면서 유럽의 장래는 더욱 견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등 다수의 국가들을 타격한 유로존 위기가 나타나자 EU는 균형적인 통합 기조를 포기하고 차별화된 협력으로 나가는 새로운 발전 방향을 설정했다. 하지만 영국의 탈퇴를 막지는 못했다.

영국의 EU 탈퇴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자. FTA 1등 국가인 한국이지만 FTA를 넘어서 메가FTA에 들어가도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한반도가 통일되어 남북한 간 경제통합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노동시장의 통합은 어느 정도로 가능할 것인가? 꼭 통일 문제가 아니더라도 외국인 노동자, 외국인 유학생이 넘쳐나는 한국의 현실에서 브렉시트의 교훈은 유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장시정 대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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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메가 FTA 통합이 내포하는 불확실성이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무역, 투자는 물론 사회, 노동 등 보다 광범위하고 심층적인 경제통합을 요구하는 경제블록이나 다름없는 메가 FTA의 접근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무역블록과 경제블록은 다르다. EU는 단순한 무역블록이 아니라 투자, 금융, 서비스는 물론 인구 이동의 자유화까지 보장하는 메가 경제블록이다. "WTO옥스포드핸드북"의 저자인 WTO 전문가인 나얼리카Amrita Narlikar 함부르크 세계지역문제연구소장GIGA도 다자 간 무역 체제를 지지하지만 금융이나 이주는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나는 2016. 9월 함부르크의 다이히토어Deichtor 로터리클럽에서 강연하면서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경제블록에 들어가는 문제와 관련하여 브렉시트를 생각해볼 만한 사례로 예시했다. 즉, 영국이 EU에서 나와서 한국과 같은 자유로운 FTA 국가로 돌아가려는데, 한국이 굳이 FTA 대신 TPP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중국과 일본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에 참여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숙고해야 한다. WTO 도하라운드의 좌초나 2013년부터 시작된 미국. EU 간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협상이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에서도 우리는 브렉시트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다.

두 번째는 남북한 통일 시 예상되는 제반 문제다. 특히 경제/노동시장 통합 문제인데, 영국의 EU 탈퇴를 결정적으로 부추긴 것이 이민 노동자들의 대거 유입이었음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회주의에 적응된 노동력은 "싼 게 비지떡"이란 말 그대로이다. 나는 독일통일에서 그런 실례를 보아왔다. 물론 북한 노동력의 경제적 가치도 문제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노동력이 상당 기간의 유예조치나 광범위한 제한 없이 그대로 남한에 쏟아져 들어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노동력만이 아니라 주민의 자유이동 자체도 문제다. EU는 유럽시민 개념을 도입하고 역내 인적 이동을 자유화했다. 예를 들어 독일 사람이 거소 신고만으로 프랑스든 영국이든 주거를 옮길 수 있지만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하면서 심각한 사회, 노동문제가 되고 말았다. 독일도 이민자들의 사회보장제 남용을 막기 위하여 사회부조 최초 수령 자격을 입국 후 6개월에서 5년으로 연장하자 거리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브렉시트가 일어난 영국의 외국인 인구는 1천만 명에 육박하면서 전체 인구 비율의 14%를 넘었다. 대영제국 당시부터 이주해온 인도 등 주민과 겹쳐 EU 내 이민자들이 쏟아져 온 결과다. 우리나라도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나 유학생들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고민해야 한다. 최근 불거진 차이나 게이트에서 보듯이 이들은 한 국가의 정치적 리스크까지 요구하고 있다. 먼발치에 있던 브렉시트가 우리들의 반면교사로 성큼 다가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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