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균형재정'을 위한 독일식 헌법 규정 신설을 제안한다

나는 작년 3월 "균형재정은 신성한 암소다"라는 글에서 독일과 우리나라의 재정 운영을 비교하고 급속히 늘어나는 국가채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1차 대전 후 물건을 사려고 줄을 서있는 동안에도 물건값이 오르는 초인플레이션을 겪었지만 지금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모범적인 재정 운영을 하고 있다. 기본법에 GDP의 0.35% 적자를 한도로 균형재정을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두고 있고, 실제로 2014년부터 적자가 한 푼도 나지 않는 균형재정을 시현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경제에 관한 별도 조항을 두고 있으나 정작 재정에 관한 조항은 없다.

즉, 우리는 독일과 달리 재정 운용에 관한 헌법적 제약이 없는데, 저성장으로 인한 세수 기반 축소와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 능력의 약화 등으로 재정 건전성이 가파르게 악화되고 있어 더 이상 조를 허리띠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지금 문재인 정부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어 균형재정의 자율적 달성은 도무지 어려워 보인다. 그렇기에 독일인의 지혜를 빌려 균형 재정을 목표로 하는 헌법 조항의 신설을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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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한국경제연구원]

​"코로나19" 사태(우한폐렴 사태)로 긴급 재정 지원이 필요한 지금 나라 곳간이 비었다 한다. 20조 원에 가까운 코로나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한다는데 여력이 없다 보니 국채 발행으로 그 재원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미세먼지 대책 등 용도로 약 6조 원에 달하는 추경을 편성했고, 올해는 512.3조 원에 달하는 슈퍼예산에 이미 60조 원을 국채로 조달하였는데 이제 다시 20조 원의 추경을 부채로 충당해야 한다. 결국 작년과 올해 상반기에 걸쳐 1년도 안되는 기간 중에 무려 80조 원 가까운 신규 부채가 발생하는 셈인데,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총정부채무D2가 60조 원 정도였음을 볼 때 이 신규 부채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겠다.

​물론 이번 코로나 사태를 지원하기 위한 추경은 필요하다. 특히 대구, 경북지역의 주민들의 고통이 극심하다. 추경 지원으로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상인들이나 기업들의 지역 경제 활성화를 도와주어야 한다. 사실 예비비나 추경은 이럴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중국 유학생 임시주거 시설비나 마스크 지급 등을 위하여 42억 원의 예비비가 지출되었는데, 예비비 목적상 적절한 지출이었는지 의문시 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무서울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 확진자 수가 지난 2. 20.에 1백 명을 넘었는데 열흘도 안 된 오늘 2.29.에는 3천 명을 상회하고 있다. 인구와 경제 규모 면에서 우리보다 작은 홍콩도 이번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하여 1,200억 홍콩 달러(우리 돈 약 19조 원)을 푼다. 각 개인에게도 1만 홍콩 달러(약 156만 원)가 현금 지원된다.

​우리나라의 정부채무는 올해 800조 원을 넘어선다. GDP와 대비한 정부채무율(D2 /GDP)이 40% 남짓하여 100%가 넘는 미국이나 200%를 훌쩍 넘는 세계 1위의 채무국 일본에 비해 작은 건 사실이지만 기축통화나 태환화폐를 가진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나라들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더욱이 이들 나라는 최근 정부채무를 지속적으로 줄여 오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정부채무는 오히려 그 증가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

2000-2016년간 우리나라의 GDP 대비 정부채무의 연평균 증가율은 11.6%로서 32개 OECD 국가 중 4번째로 높았는데, 1-3위 국가인 라트비아, 룩셈부르크, 에스토니아의 경제 규모 고려시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사실상 최고의 정부채무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여기에 사실상 정부채무나 마찬가지인 공기업 부채가 급증하고 있어 공공채무D3 도 함께 빠르게 늘고 있다. 급작스러운 원자력 정책의 변경으로 한전은 2018년 한 해에만 1조 3,566억 원의 영업 손실을 보았다 한다. 이제 전기값의 인상은 시간문제다. 2018년 말 현재 공공채무D3 규모는 1,078조 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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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국가채무(정부채무) 변화 추이- 2012년을 기점으로 감소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IMF 자료에 따르면 1970-2000년간 국가 부도국의 절반 이상이 정부채무 비율 60% 이하인 나라였고 그중 절반가량이 40% 이하였다는 사실을 볼 때 우리나라의 정부채무율이 40%대라고 해서 방심할 수 없다는 건 자명해 보인다. 정부채무의 증가 속도가 가파르고 공기업의 부실로 공공채무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작년 4월 "연금충당부채란 덤터기를 쓴 대한민국 공직자"란 글에서 장래의 공무원 연금과 군인연금 부담까지 포함하여 산출되는 '국가부채'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2018년 말 기준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는 939.9조 원의 연금충당부채를 포함하여 총 1,682.7조 원이었다. 그리고 정부채무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사실상 정부의 지출로 약정된 미래 부채인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상의 "암묵적 부채implicit liabilities" ("잠재적 부채"라고도 한다) 규모가 큰 것도 주목해야 한다. 2015-2050년간 암묵적 부채율은 159.74%로서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 대상 42개국 평균인 77.4%의 2배를 상회하여 사실상 브라질에 이어 세계 2번째 큰 나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나 암묵적 부채의 이러한 현실은 장차 재정 운용이 어려워지고 미래 세대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가계나 민간기업 부채도 각각 1,600조 원대를 넘어섰다. 이제 정부(공기업, 연금충당부채 포함), 민간기업(금융기업 제외), 가계의 부채를 모두 합한 '국가총부채'는 5,000조 원을 넘는 것으로 보이며- '국가총부채'에 관한 공식 통계는 없다- GDP의 약 250% 내외에 이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기업, 가계할 것 없이 모두 부채의 늪에 빠져 경제 활력을 상실하고 빚더미에 신음하고 있다. 중국의 국가총부채비율이 245.4%인데 재정이 불건전하다 해서 향후 중국 경제의 주요 악화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의 부채 현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실감할 수 있겠다. 기재부는 국가 총부채Total Debt 개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16년 4월에 문화일보가 당시 국가총부채가 5,171조 원에 이르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는데 기재부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채무의 부담 주체나 국민경제적 부담 경로가 상이하므로 국가, 기업, 가계의 부채는 합산 대상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5-8년간의 단기적 국가총부채 사이클을 경기의 축소나 확장과 연결되는 선행 지표로 활용하고 있으며, 가계나 민간기업의 부채도 상황에 따라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공공부채로 전이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지표라 하겠다.

​독일납세자연맹이 제작한 "정부채무 시계"- 정부채무 1.972조 유로, 초당 증가액 58 유로, 국민 1인당 채무액 23,827유로임을 전광판으로 알리고 있다.
​독일납세자연맹이 제작한 "정부채무 시계"- 정부채무 1.972조 유로, 초당 증가액 58 유로, 국민 1인당 채무액 23,827유로임을 전광판으로 알리고 있다.

​독일의 고속도로나 운하, 역사 등 사회기반시설은 평균적으로 매우 노후되었다. 함부르크 철도 역사만 보더라도 건물과 시설이 낡고 협소하여 승객들이 많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북해와 발트해를 잇는 운하도 수시로 갑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노후되었다. 그래서 적자 예산을 편성하더라도 기반시설에 투자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지만 신규 차입이 없는 범위 내에서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들은 신규 부채로 무엇을 하든 장래에 남는 것은 결국 부채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케인스식 처방과는 거리가 멀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신규 차입 예산으로 투자하는 용처가 사회기반시설의 확충이 아닌 주로 현금 복지 지원용이고 보면 재정 운용 기조가 독일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금의 코로나 사태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중국 경제를 정지시키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둔화시킬 것이다. 코로나가 몰아친 2월 상반기 중 중국 시장에서의 독일의 자동차 판매는 무려 92%나 급감했다. 10대를 팔았던 자동차를 1대도 못 팔았다. 중국 주재 독일기업협의회 회장은 이제 곧 독일 제조업도 중국의 자재 공급 단절에 따른 심각한 생산 차질을 빚을 것이라 했다. 우리 경제라고 뾰족한 수는 없다. 소득주도 성장정책, 주 52시간 근로제,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 등으로 이미 부진한 경제가 코로나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0%로까지 예상하였다. 이런 비관적인 상황이라면 세수 축소에 따른 재정 적자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실제로 올해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재정 적자율은 13%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재정준칙상 적자 비율이 최대 3%이므로 우리나라의 적자율은 그 4배 이상이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국가채무가 증가하게 되고 이자율 상승으로 민간기업의 투자가 위축되는 '구축crowding out' 현상과 함께 장래 예산 재정 확보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부채 감축을 위한 필사적인 디레버리징deleveraging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작년 11월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곳간에 작물을 쌓아두면 썩어 버린다"라며, 재정관리에 지극히 몰이해함을 드러내었다. 이것은 500조 원대 슈퍼 예산을 날치기로 통과시키고 일과성 일자리 만들기에 50조 원 이상의 예산을 쏟아붓는 포퓰리스트 정권이 뱉어낸 역대급 망언이다. 이런 자세다 보니 정작 지금 코로나 사태 같은 비상시에 곳간이 비어버려 또다시 빚을 내어야 하는 악순환에 내몰리고 있다. 그래서 제안해 본다. 자율적으로 못할 것이라면 독일처럼 헌법에다 균형재정 의무를 신설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담보할 가장 중요한 "세대 간 계약"이 될 것이다.

나의 존경하는 페친이 오늘 페북에 올린 다음 글은 나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금은 흡혈귀가 다 빨아먹고,

일자리는 다 망가졌고,

마스크도 없는 세상에 우한폐렴은 기하급수적으로 도져나간다.

의사들조차 방호복 없이 가운을 입고

역병 검사와 죽어가는 우한폐렴 환자를 돌봐야 한다.

전쟁에 무기 없이 육탄으로 군사를 투입하는 꼴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나도 분노한다. 눈물이 흐른다.

우한폐렴 확진자가 매일같이 수백 명씩 나오는 이 국가적 위급 상황에서

시민들이 써야 하는 마스크도 없고 의료진을 위한 방호복도 없다니

산처럼 쌓인 나라 빚은 대체 어디다 썼는가?

​[출처] "나라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균형재정'을 위한 독일식 헌법 규정 신설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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