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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 이름 개척자요 선구자 '주시경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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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 이름 개척자요 선구자 '주시경 선생'
  • 리대로 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 승인 2020.03.03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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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대로(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서울,한말,한글,한힌샘”은 한글이름 새싹

우리는 통일 신라 때부터 1500여 년 동안 중국식으로 한자이름을 지었다. “김춘추, 김유신” 같은 세 글자로 된 이름이 그 중국식 한자이름 표본이다. 한자가 삼국시대에 들어와 썼지만 처음에는 한자로 이름을 짓고 쓰더라도 ‘주몽’처럼 성씨가 없이 이름만 썼으며 “을지문덕, 박혁거세, 연개소문”처럼 네 글자로 우리식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신라 22대 임금인 ‘지증마립간’이 국호를 ‘서라벌’이란 우리말이 아닌 ‘신라’라고 한자말로 확정하고 임금 칭호도 ‘마립간’이란 우리말을 버리고 중국식으로 지증왕(서기 503년)이라고 ‘왕’이라는 중국식 칭호로 바꾸었다.

그리고 신라 경덕왕(서기 750년) 때에는 사람이름은 말할 것이 없고 관직 이름과 제도, 땅이름까지도 중국식으로 모두 바꾸고 중국 문화를 섬기면서 우리 문화는 중국 문화 곁가지가 되었다. 이렇게 우리말보다 힘센 나라인 중국 한문을 섬기는 버릇이 조선시대까지 1000년이 넘게 내려오면서 언어사대자의가 빼 속 깊게 박혔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적기 가장 좋은 우리 글자를 만들어주었어도 400년이 지났어도 제 말글로 이름도 짓지 않고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선 끝 무렵 고종 때부터 우리 글자를 쓰면 좋다는 것을 깨닫고 한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1896년에 나온 독립신문에 ‘한성’이란 땅이름을 ‘서울’이라고 쓴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 주시경은 ‘조선어’란 우리말 이름을 ‘한말’이라고 짓고, 우리 글자 이름을 ‘한글’이라고 짓고, ‘주상호’라는 제 한자 이름 대신 ‘한힌샘’이라는 우리말 호를 지어 부른다. 그리고 제 큰 딸 ‘송산’은 ‘솔메’로, 큰아들 ‘삼산’은 ‘세메’, 둘째 아들 ‘춘산’은 ‘봄메’, 셋째 아들 ‘왕산’은 ‘임메’라고 한자말로 된 아들 딸 이름을 토박이말로 바꾸어 한글로 적는다. 가장 처음 한말글로 지은 이름들이다.

주시경이 1911년 조송중학교 안에 있는 ‘한말익힘곳’을 다닌 오봉빈에게 준 수료증.
주시경이 1911년 보성중학교 안에 있는 ‘한말익힘곳’을 다닌 오봉빈에게 준 수료증.

주시경이 그 때에 우리말 이름을 ‘한말’이라 새로 짓고, 우리 글자이름을 ‘한글’이라고 지은 것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니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고 우리 글자를 ‘국문’이라고 할 수 없게 되어서 새 이름을 우리말로 지은 것인데 그 뜻은 “한겨레 말, 한겨레 글자”란 뜻도 담고 “첫째, 으뜸가는 글자와 말”이란 뜻도 담아서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1910년에 보성중학 친목회보에 ‘한나라 말’이라는 글을 쓴 일이 있는데 그 말에 그의 생각과 뜻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런데 “한나라 말”을 줄여서 ‘한말’이라는 뜻도 담았을 것이다. 그는 그의 “주시경, 주상호”란 한자이름대신 ‘한힌샘’이라고 호를 지어 부른 것도 한겨레, 한나라의 ‘한’과 통한다.

그는 사람이름만 그렇게 우리말로 지은 것이 아니다. 말본 용어도 “소리갈, 기난갈, 짬듬갈,익힘갈”처럼 우리말로 지었다. 그가 가르친 한글을 다 배운 이에게 주는 수료증도 “마친 보람, 익힘에 주는 글”처럼 우리말로 지어서 썼다. 주시경은 한글을 살리고 빛내어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겠다고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오늘날 한글학회)를 만들고 우리 말글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을 열심히 했는데 1910년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니 일본말이 ‘국어’가 되어 우리말을 국어라고 할 수 없어서 ‘국어연구학회’를 ‘배달말글몯음’이라고 바꾸었다가 ‘한글모’로 이름을 바꾼다. 그 때 ‘조선어강습소’란 이름도 ‘한글배곧’이라고 우리말로 바꾼다.

우리글자는 처음 만들 때에 ‘훈민정음’이라고 했기에 ‘정음’이나 ‘언문’이라고 한자말로 불렀지만 ‘한글’이라고 새 이름을 지은 것이고, 우리말은 조선어라고 한자말로 하던 것은 ‘한말’이라고 우리 말글로 지어 부른 것이다. 참으로 잘한 일이다. 그런데 ‘한글’이라는 우리 글자이름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가 ‘한글날’도 만들고, ‘한글’이라는 회지도 냈으며, 대한민국 때에 ‘조선어학회’를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꿔 부르면서 널리 알려지고 뿌리를 내렸으나 ‘한말’이란 이름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1986년에 한말연구모임이 생기고 국어운동학생회가 ‘한말글 사랑 모임’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10년 6월 10일 '보성친목회보' 제 1호에 실린 주시경 선생님의 글(외솔 기념관 자료)
1910년 6월 10일 '보성친목회보' 제 1호에 실린 주시경 선생님의 글(외솔 기념관 자료)

여기서 ‘한말글’이란 말은 ‘한말’이란 우리말 이름과 ‘한글’이란 우리 글자 이름을 합해서 부를 때에 ‘한말글’이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1990년에 ‘한말글사랑겨레모임(대표 이대로)이란 우리말 사람운동을 하는 시민모임도 생겼고 2005년에 한글학회 안에 있는 한글문화협회란 한글사랑운동모임 이름이 ’한말글문화협회‘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이 모두 주시경이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고 쓴 일과 정신을 이어서 살리는 것이었다. 5000년 역사를 가진 겨레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제 글자가 있는데도 제 말글로 이름도 짓지 못하고 않는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이 일은 우리 말글로 이름을 짓는 일을 한 한말글 이름 개척자요 선구자인 주시경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다. 주시경은 학자로서 한글을 잘 쓸 수 있는 길을 찾고 실천한 국어독립운동가다. 5000년 긴 역사를 가진 겨레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를 가진 겨레가 아직도 제 말글로 이름을 짓지도 않고 쓰지 않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못난 일이다. 이제 신라가 중국 당나라 문화와 한문을 섬기면서부터 뿌리내린 언어사대주의를 씻어버리고 우리 말글로 이름도 짓고 글을 쓰는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 그래야 앞서가는 나라가 되고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글꽃, 말꽃이 핀다. 이 일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온 누리를 빛내는 일이기도 하다.

1910년 6월 10일 <보성친목회보> 제 1호에 실린 주시경 선생님의 글(외솔 기념관 자료)

한나라 말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과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줌으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되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 함으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 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글은 말을 담는 그릇이니, 이지러짐이 없고 자리를 반듯하게 잡아 굳게 선 뒤에야 그 말을 잘 지키나니라. 글은 또한 말을 닦는 기계니, 기계를 먼저 닦은 뒤에야 말이 잘 닦아지나니라.

그 말과 그 글은 그 나라에 요긴함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으나, 다스리지 아니하고 묵히면 덧거칠어지어 나라도 점점 내리어 가나니라.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를 나아가게 하고자 하면 나라 사람을 열어야 되고, 나라 사람을 열고자 하면 먼저 그 말과 글을 다스린 뒤에야 되나니라.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서는 일도 어두어 가나니라.

- 1910년 6월 10일 <보성친목회보> 제 1호에 실린 주시경 선생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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