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대로(한국어인공지능학회 회장)

1896년 4월 7일 서재필은 우리 글자인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었다. 그리고 1896년 7월 2일에 독립협회를 만들고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 자라에 독립문을 세우고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이름을 바꾸고 독립공원을 만들었다. 그 때 독립문 앞쪽에 ‘독립문’이라고 한글로 이름을 쓰고 뒤쪽에는 獨立門이라고 한자로 썼다. 지배층과 똑똑하다는 이들이 한자만 좋아하고 우리 글자를 언문이라며 업신여기던 때에 우리 글자로 신문을 내고 독립문 이름표를 우리 글자로 쓴 까닭이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왜 뒤 북쪽에는 한자로 이름표를 썼을까? 그 까닭이 있었을 것이다.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왼쪽) 한글 이름표, 오른쪽은 2007년 한글로 단 독립관현판.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왼쪽) 한글 이름표, 오른쪽은 2007년 한글로 단 독립관현판.

그 때 독립협회를 만든 분들은 자주 민주 독립국가가 되려면 민중 계몽을 통해 국민 지식수준을 높이고, 또 자주 정신을 드높여서 겨레 얼이 찬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데 제 말글로 말글살이를 하는 것이 좋고 옳다고 봤을 것이고, 천 년이 넘게 중국 한문과 중국문화 곁가지로 살아온 부끄러운 역사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신문은 서재필, 주시경, 헐버트 같은 한글을 아는 이들이 주도했지만 독립협회는 개혁과 보수, 관료 들들 여러 계층 사람들이 모였기에 그 사람들 가운데는 한자를 좋아하는 이들이 한자를 고집해서 뒤 북쪽에는 한자를 썼을 것이다. 오늘날도 한자가 아니면 말글살이를 할 수 없다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때 독립협회는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이완용, 들들 개혁과 보수, 정부 관리들까지 기성세대가 중심이 되어 창립했지만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참여해 행동대로 활동했다. 그들 가운데 배재학당 학생모임인 협성회가 이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이 협성회가 낸 협성회보와 ‘매일신문(첫 발행인 이승만)’이 한글로 만들었다. 그것도 독립신문은 이틀에 한 번 냈는데 매일신문은 날마다 냈으며 그에 자극을 받아서 독립신문도 날마다 냈다. 그 때에 배재학당 학생인 주시경이 독립신문 조필로 일을 했고 또 그 친구인 이승만이 한글로 ‘독립정신’이란 책을 쓴 것은 협성회에서 한글로 일간신문을 낸 일과 함께 한글을 빛낸 큰 발자취였다.

오늘날에도 제 글자인 한글보다 한자를 더 좋아해서 한자도 우리 글자라고 하는 이들은 독립신문을 한글로 낸 일, 독립문에 그 이름을 한글로 쓴 일, 배재학당 학생들이 한글로 일간신문을 낸 일들은 하찮게 보겠지만 공문서와 교과서들까지 모두 한문인 그 시대에 한글 쓰기를 실천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칭찬받을 일이다. 한글세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일본처럼 한자로 쓰는 말글살이를 해야 한다는 자들이 정치인, 공무원, 학자, 언론인으로 한글을 못살게 하는 판이니 그 때 그 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독립신문이 그 때 의회정치를 주장하다가 서재필이 다시 미국으로 쫓겨 갔고 독립신문도 사라지지만 그 때 한글을 사랑한 일은 참 잘한 일이다.

배재학당 학생들 모임인 협성회가 낸 회보와 매일신문(왼쪽), 오른쪽은 배재학당 학생 이승만이 독립협회 일로 옥살이할 때에 한글로 쓴 ‘독립정신’ 이라는 책(한국방송 찍은 것)
배재학당 학생들 모임인 협성회가 낸 회보와 매일신문(왼쪽), 오른쪽은 배재학당 학생 이승만이 독립협회 일로 옥살이할 때에 한글로 쓴 ‘독립정신’ 이라는 책(한국방송 찍은 것)

우리는 오늘날 1910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것을 분통해 한다. 그러나 나라가 기울어져가는 그 때에 우리 말글로 민중을 깨우쳐서 나라를 일으키려고 애쓴 분들이 있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비록 그 때엔 제 말글보다 남의 말글을 더 섬기는 이들이 많았기에 우리 말글을 살려서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키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오늘날엔 꼭 우리가 그 꿈을 이루어 튼튼한 나라를 만들어야겠다. 그래서 외세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후손에게 물어주자. 이 일은 얼과 말글이 독립하고 우리나라와 겨레가 독립하는 첫 걸음으로서 오늘날 우리가 꼭 해내야 할 시대사명이고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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