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독일모델을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다. 그런데 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이야기할 때 저지르는 흔한 오류는 이것이 매우 '사회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독일 전문가라는 사람들도 그런 관점에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평가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회적 시장경제"는 어디까지나 온전한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 경제일 뿐이다. 지구상에 현존하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이거나 사회주의(공산주의) 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다면 "사회적 시장경제"도 자본주의이거나 사회주의의 둘 중 하나일 턴데, 이 용어를 우선 문법적으로 풀어 보면 답이 나온다. '사회적'은 '시장경제'를 꾸미는 수식어다. 결국 '사회적'이란 건 시장경제를 수식하는 장식물에 불과하며 "사회적 시장경제"는 시장경제, 즉 자본주의다.('시장경제'란 말은 1920년대 말 경제 대공황 시 미국식 '자본주의'를 대체하여 독일에서 사용하기 시작함)

독일보다 더 사회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북구의 사회적 시장경제 시스템도 내가 아는 한 독일과 마찬가지다.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민주주의의 모범국가라는 스웨덴도 발렌베리Wallenberg라는 재벌기업이 나라를 좌지우지한다. 재벌에의 경제 집중도가 우리나라보다 못하지 않다. 국왕과 총리의 정기적인 회동에 재벌기업인 발렌베리가 참석하기도 한다. 대규모 토지를 소유한 귀족들도 있다. 유럽연합의 헌법이라는 리스본 조약도 "고도로 경쟁적인 사회적 시장경제에 기초하여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한다"라는 명문 규정에서 보듯이 결국 그 본질은 자유 경쟁 시장, 즉 자본주의 경제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카르텔 방지, 소득에 따른 차등 과세, 경기 대책이나 최저 임금제 같은 여러 특징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이런 제도적 장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영미권 시장경제에도 광범위하게 도입되어 있다. 독일등 유럽 국가들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특징적 요소 중 대표적인 것이 '공동결정제Mitbestimmung'이며 이것은 영미권에서는 볼 수 없는 제도이지만 그렇다고 이 제도가 시장경제의 본질을 훼손한다고 볼 수는 없다. 우리는 이것을 통상적으로 "노사가 조화로운 협조를 통해 기업을 공동 운영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철학이 녹아있는 제도"라고 평가하고 사회적 시장경제의 대표적 제도로 인용한다. 공동결정제가 과거 노동자 또는 피사용자의 입장이나 처지를 도외시한 채 사주나 사용자 일변도로 기업을 운영하는 것보다 진일보한 제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시장경제나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경제라고 할 수는 없다.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설명해 본다.

우선 사회적 시장경제의 사상적 기초가 "질서적 자유주의Ordo-Liberalismus"를 주장한 발터 오이켄Walter Eucken 교수인데, 그는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나 칼 뵘Karl Boehm 과 같은 자유시장경제의 신봉자다. 그는 전후 계획경제를 몰아내고 루트비히 에르하르트Ludwig Erhard 와 알프레드 뮐러-아르막Alfred Mueller-Armack에게 개혁의 단서를 제공했다. 1946년 쾰른대학교수였던 뮐러-아르막은 "경제지도와 시장경제Wirtschaftlenkung und Marktwirtschaft"란 기념비적 저서에서 사회적 시장경제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렸고, 에르하르트 경제 장관과 함께 경제차관으로서 전후 독일 경제에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사회적 시장경제의 핵심 개념은 시장의 자유경쟁 질서를 더욱 완벽하게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의 시장 개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서부터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자본주의 국가는 없다. 즉 순수한 자본주의 경제는 지금 현실 세계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지구상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는 지금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와 같은 수정 자본주의의 길을 걷고 있다. 정도의 차이나 양태가 다를지언정 어떤 형태로든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 그러니 사회적 시장경제에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이것을 자본주의 경제가 아니랄 수는 없다. 오히려 시장의 자유경쟁을 더욱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만큼 자유경쟁이라는 측면에서 그 어떤 형태의 시장경제보다 더욱 경쟁적이고 자본주의적이다.

​사회적 시장경제를 독일에서 처음 채택한 정치 세력이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아니라 우파 정당인 기민당이라는 것도 사회적 시장경제의 본질을 알고 보면 당연한 것이다. 전후 신생 정당이었던 기민당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선점함으로써 오랜 역사를 가진 기성 정당인 사민당을 누르고 1949년 첫 연방 총선에서 승리하였고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5명의 총리를 배출하여 3명의 총리를 배출한 사민당을 리드해 왔고 집권 기간도 기민당의 2배에 이를만큼 정치적 우위를 지켜왔다.

​둘째, 독일의 기업은 미국이나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단일 이사회가 아닌 이중 이사회dual board를 갖고 있는데, 노사가 함께 참여하여 공동결정권을 행사하는 감독이사회는 1차적 경영 기구는 아니다. 감독이사회에서 기업의 기본 정책이나 사장의 선임 같은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지만, 대부분의 직접적인 경영 어젠다는 감독이사회의 소관이 아니다. 그러니 결국 노 측이 직접적인 경영에 나선 다기보다는 경영에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감독이사회의 구성도 노사가 동수이지만 캐스팅보트를 사 측에서 보유함으로써 노사 간 의견 대립 시에는 사 측의 입장에 따라 의사 결정이 되는 체제이다.

​셋째, 독일에서 공동결정권을 갖는 감독이사회는 2천 명 이상의 고용 규모를 갖는 기업 중 주식회사 같은 "자본회사Kapitalgesellschaft"에만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그러니 숫자 상으로 99%에 해당하는 중소기업이나 규모가 크더라도 사주가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인적 회사Kommanditsgesellschaft"에는 설치되어 있지 않다. 세계적인 주방용품 생산 업체인 밀레Miele는 고용 규모가 2만 명이 넘지만 "인적 회사"이기에 감독이사회가 없으며 따라서 공동결정권도 도입되어 있지 않다. 이러다 보니 수십만 개의 독일 기업 중 감독이사회가 설치된 기업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고작 700개 미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공동결정제가 마치 독일 기업에 전반적으로 도입된 제도인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2조, 9조, 11조, 12조, 14조 및 15조는 영업권의 자유, 단체와 회사 설립의 자유(노조 결성권), 이전의 자유, 직업의 자유, 재산권, 상속권에 관해 규정함으로써 자유주의적 질서를 바탕으로 하는 경제를 상정하고 있어 사회주의 경제나 계획경제를 명확히 부정하고 있다. 이런 자유주의적 경제질서의 바탕 위에서 개별 입법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현하고 있는데, 노동법 분야의 단체협약법, 공동결정법, 노동자평의회법 같은 것들이나 소비자보호법, 임차인보호법 등이 대표적이다. 즉 사회적 시장경제를 구현하는 독일의 개별법들은 기본법 상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토대로 시장경제나 자본주의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규정되고 있다. 생각건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비록 '사회'란 말이 들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나 시장경제에 다름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우리나라 헌법으로 돌아와 보자. 우리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헌법에서 직접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상의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한다는 독일 기본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경제민주화"에 관한 규정이다. 독일적 개념으로 보더라도 "경제민주화"는 "사회적 시장경제"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진보적인 경제체제를 의미하는데, 좌파 정당인 사민당이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으로 사회적 시장경제를 수용하기 전 유지했던 경제정책이었다. 즉, 우리는 이미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넘어서는 진보적인 경제체제를 헌법상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2018. 3. 문재인 대통령의 헌법 개정안을 보면 현행 헌법상의 경제 민주화 규정에서 더 나아가 협동조합의 육성 등 "사회적 경제" 진흥과 "토지공개념"에 관한 조항을 신설하였다. "사회적 경제"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을 통해 이윤추구보다는 일자리와 복지 서비스 제공에 집중한다. 사실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시장경제"와도 판이한, 자본주의의 본질인 시장과 이윤 극대화보다는 사회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경제체제로서 자본주의보다는 사회주의에 가깝게 보인다. 자본주의의 본질인 '시장'이란 말이 빠져 있지 않은가. 폰 하이에크, 오이켄, 뵘, 뢰프케, 에르하르트는 물론 뮐러‑오르막 같은 자유주의 경제나 사회적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그 어떤 경제 학자도 "사회적 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사회적 경제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곳이 퀘벡이다. 2013년부터 「사회적 경제 기본법」을 시행하고 있고 7천 개가 넘는 사회적 기업, 단체로부터 나오는 연 매출이 150억 달러 정도로 전체 퀘벡 주의 국내총생산의 8% 정도를 차지한다. 내가 1990년대 중반 몬트리올에서 근무할 때 보면, 퀘벡 주의 세금이 너무 비싸서 일은 퀘벡에서 하더라도 온타리오 쪽으로 넘어가서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사들에 대한 보수가 너무 낮아 많은 의사들이 미국으로 가버려 동네 병원에 가려 해도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 돈 있는 유대인들이 모두 온타리오로 넘어 가서 터론토가 몬트리올을 제치고 캐나다 제 1의 도시가 되었다.

​‘사회’라는 말을 강조할수록 부담이 더 커진다. 우리 헌법 개정안에 "사회적 경제" 진흥 노력 의무를 추가하는 것은, 국토의 효율적 이용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 해소의 일환으로 토지공개념 조항을 신설하는 문제와 함께 시장 경제의 본질을 변경하는 심각한 문제다. 이것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한다는 독일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저하게 사회주의 쪽을 지향하는 것으로 시장 경제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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