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 대사는 대사관 주변 이야기와 한독 관계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외교관의 소소한 일상과 깊이 있는 사색,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의 모범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현장 사진을 곁들여 국민들에게 외교관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범구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1월 독일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 "민주주의는 용감한 민주주의자들 없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문제를 정치권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됩니다. 시민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동독 붕괴의 신호탄이 되었던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 촛불시위 3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독일이 당면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이렇게 설파했다. 장벽 붕괴 30주년, 통일 29주년을 맞는 독일에서 새삼 민주주의의 위기가 이야기되고 있다. 우리에게는 한글날인 오늘, 독일에서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던 라이프치히 촛불 혁명 30주년 기념식이 열렸는데, 대통령 기념사 제목이 아예 "민주주의에 대하여 Rede zur Demokratie"이다. 독일 민주주의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

민주주의에 대하여 설파하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독일방송 화면에 잡힌 모습. (사진 = 정범구 대사)
민주주의에 대하여 설파하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독일방송 화면에 잡힌 모습. (사진 = 정범구 대사)

* 이번 주 독일은 내내 "통일 주간"이었다. 지난 3일에는 독일 통일 29주년 기념식이 있었고, 오늘은 라이프치히에서 위 행사가 있었다. 통일 30년이 가까워 오고 있지만 양 지역 국민간의 통합 - Innere Einheit - 은 여전히 숙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독 주민중 42%만 통일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58%는 "아, 옛날이여~"를 노래 부르고 있다는 얘기. 그래서 지난 3일 기념식에서 메르켈 총리는 "통일은 머물러 있는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라고 했다. 그 자신 동독 출신으로, 동독 주민들이 느끼는 소외감, 이질감을 이해하고 있다.

동서독 주민간 경제적 격차는 많이 줄었지만 심리적, 문화적 거리는 여전하다. 이런 것들이 동독 지역에서 특히 극우정당(AfD)의 약진을 가져왔다.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고,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극우주의자들의 준동은 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는 그 시간에, 라이프치히로 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할레 (Halle)에서 극우주의자가 두 명의 시민을 쏘아 죽였다. 거리에서. 괴한은 이어 속죄일(욤 키푸르) 예배를 드리고 있던 유대교 교당(지나고그)에 난입하려다가 실패하고 도주하다 경찰에 잡혔다. 범인은 27세 독일 남성으로 알려졌는데 경찰은 일당이 있을 것으로 보고 추적하고 있다. 희생된 시민 중 한 명인 여성은 인근 유대인 묘지 근처에서 사살됐고, 남성 하나는 터키 식당인 케밥집에서 죽었다. 유대인과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증오범죄다.

* 나치의 반인륜적 죄악에 대해 끝없이 반성하고, 민주주의 독일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 온 독일 시민사회가 충격에 빠져있다. 2015년 100만 명의 난민을 받아 들여 세계를 놀라게 했던 독일의 인도주의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난민의 급증, 기후변화, 디지털화로 인한 산업구조,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정치권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무기력과 소외감에 빠진 이들 사이에 증오를 부추기는 세력이 독버섯 처럼 자라나고 있다.

* 오늘 라이프치히 기념식은 세대, 출신배경이 다른 시민들이 나와 "함께 가자 이 길을!" 외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과거 동독 정권에 저항했던 시민운동가와 시리아 난민 출신 소녀, 기후변화에 대한 해법을 요구하는(Fridays for future) 청소년 등이 그들이었다. 민주주의는 이제 정말 용감한 민주주의자(Mutige Demokraten)들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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