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음 예문은 서술 내용 면에서 강조성이 모자란 단락들이다. 그 이유를 들고 개선 방법을 제시해 보자.

<예제 1>

(1) 무릇 글을 쓰는 동기(動機)는, 생각과 느낌을 표현(表現)하고 전달(傳達)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좋은 글이란, 생각과 느낌이 효과적으로 표현, 전달될 수 있는 글이다.

(2) 그러면 어떤 글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 전달할 수 있는가?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인가?

(3) 좋은 글의 요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음의 요건들을 갖추기만 하면 반드시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좋은 글에 이러한 요소(要素)들이 갖추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고등학교 국어(상)>(1991)

[길잡이] 위의 글은 겉보기에 세 단락으로 되어 있으나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강조되지 못하고 있다. 각 단락의 소주제에 대한 뒷받침이 충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에서는 소주제에 대한 뒷받침이 한 문장 밖에 없다. 소주제가 다소 비중이 있는 내용이므로 더욱 많은 뒷받침이 필요한 것인데도 한 문장을 덧붙이고 넘어 갔다. (2)에서는 단순히 물음만 반복해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도 의문을 제기한 이유 등의 내용을 덧붙여야 마땅하다. (3)에서는 뒷받침 문장이 하나밖에 없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조차도 소주제를 부각시키는 내용으로 보기는 어렵다. 소주제는 "좋은 글의 요건"에 대한 것인데, 뒷받침 문장은 "꼭 좋은 글이 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따위의 쓸데 없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3)이 제대로 형성되려면 뒷받침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윗글의 모자란 바를 깁고 보완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1) 무릇 글을 쓰는 동기(動機)는 생각과 느낌을 표현(表現)하고 전달(傳達)하려는 데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한마디 말을 할 때에도 항상 어떤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것도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정보나 내용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좋은 글이란 생각과 느낌이 효과적으로 표현, 전달될 수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생각이나 의도를 고스란히 담아 전달해 줄 수 있는 글이 가장 바람직한 글인 것이다.

(2) 그러면 어떤 글이 그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 전달할 수 있는가? 좋은 글이 될 수 있는 요건은 무엇인가? 위에서 말한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려면 이런 점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좋은 글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야만 그런 요건을 갖춘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3) 좋은 글의 요건으로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둘째,..., 셋째로는...을 들 수 있다. 좋은 글 들은 대체로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고친 글 [1]에서는 모자란 뒷받침을 덧보태고 있어서 위의 예문보다는 한결 이야기가 정리되고 있음을 쉽사리 느낄 수 있다. [2]에서는 "의문"만 제기한 것이 아니라 그런 의문을 제기한 이유를 설명했기 때문에 단락의 내용을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3]에서는 잘못된 뒷받침을 고치고 좋은 글의 구체적인 요건을 "첫째, 둘째, 셋째"로 갈래지어 차례로 설명하는 바람직하다. 요컨대, 각 단락의 소주제는 한 두마디 언급만 하고 지나갈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뒷받침을 해서 충분히 납득이 되도록 해야 한다.

2. 아래의 예제 중에서 소주제가 강조된 것은 어느 것인지를 고르고 그 이유를 살펴 보자.

<예제 2>

생각을 품고 살아야한다. 미국의 코네티컷 주에 그리니치라는 작은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서는 해마다 24시간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24시간동안 큰 운동장을 얼마나 많이 달리느냐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된다. 몇년전에 찰스라는 청년이 24시간동안 2백50km를 달려 우승했었다. 다른 선수들은 대개 중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기자가 찰스에게 우승비결을 묻자 대답하기를 "경기 한주간전부터 24시간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달릴것인가를 계획하였다"고 했다. 그는 24시간동안 생각하며 달렸다는 말이다. 인생은 달음질과 같다. 생각없이 달리는 사람보다 생각을 품고 달리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 김동익, "젊은이들이여 용기를 내라" <한국일보>

<예제 3>

미국의 코네티컷 주에 그리니치라는 작은도시가 있다. 이 도시에서는 해마다 24시간 마라톤대회를 개최한다. 24시간동안 큰 운동장을 얼마나 많이 달리느냐에 따라 우승자가 결정 된다. 몇년전에 찰스라는 청년이 24시간동안 2백50km를 달려 우승했었다. 다른 선수들은 대개 중도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이렇듯 인생은 달음질과 같다. 생각없이 달리는 사람보다 생각을 품고 달리는 사람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기자가 찰스에게 우승비결을 묻자 대답하기를 "경기 한주간전부터 24 시간동안 무엇을 생각하고 달릴것인가를 계획하였다"고 했다. 그는 24시간동안 생각하며 달렸다는 말이다.

-- 김동익, "젊은이들이여 용기를 내라" -- <한국일보-종교인 칼럼.1992.2.1>

[길잡이] <예제 2>의 소주제가 <예제 3>의 경우보다 더 잘 드러나고 있다. 이는 위치에 따른 강조법을 적절히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예제2>는 양괄식 구성인 반면에 <예제3>은 중괄식 구성이므로, 후자보다는 전자가 주제를 더 뚜렷이 드러내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3. 다음의 글에서 소주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방식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자. 또 단락 나누기가 제대로 안된 부분도 지적해 보자.

<예제 4>

어린이가 잠을 잔다. 내 무릎 앞에 편안히 누워서 낮잠을 달게 자고 있다. 볕좋은 첫여름 조용한 오후다.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을 모두 모아서, 그 중 고요한 것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평화라는 평화 중에 그 중 훌륭한 평화만을 골라 가진 것이 어린이의 자는 얼굴이다. 아니 그래도 나는 이 고요한, 자는 얼굴을 잘 말하지 못하였다. 이 세상에 고요하다는 고요한 것은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 것같고, 이 세상의 평화라는 평화는 모두 이 얼굴에서 우러나는듯 싶게 어린이의 잠자는 얼굴은 고요하고도 평화롭다.

고운 나비의 날개, 비단결 같은 꽃잎, 이 세상에 곱고 부드럽다는 아무 것으로도 형용할 수 없이 보드랍고 고운, 이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아라. 그 서늘한 두 눈을 가볍게 감고, 이렇게 귀를 기울여야 들릴 만큼, 가볍게 코를 골면서 편안히 잠자는 이 고운 얼굴을 들여다보아라. 우리가 종래에 생각해 오던 하느님의 얼굴을 여기서 발견하게 된다. 어느 구석에 먼지 만큼이나 더러운 티가 있느냐? 죄많은 세상에 나서 죄를 모르고, 부처보다도, 예수보다도 하늘 뜻 그대로의 산 하느님이 아니고 무엇이랴! 아무 꾀도 갖지 않는다. 아무 획책도 모른다. 배고프면 먹을 것을 찾고, 먹어서 부르면 웃고 즐긴다. 싫으면 찡그리고, 아프면 울고, 거기에 무슨 꾸밈이 있느냐? 시퍼런 칼을 들고 협박하여도, 맞아서 아프기까지는 방글방글 웃으며 대하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 오직 이 이가 있을 뿐이다.

-- 방정환, "어린이 예찬" 중에서

[길잡이] 위 글에서는 주로 과장법이 쓰여서 소주제가 강조되고 있다. 특히 둘째, 셋째 단락에서는 이런 과장법이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표현 기교에 따른 강조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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