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극단 76의 기국서 연출 '엔드게임'
정중헌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

정중헌 이사장
정중헌 이사장

클로브!!! 목청이 찢기는듯한 외마디 비명! 아니 절규!

뭔지 이해를 못했던 연극이지만 종반 극한에 몰린 햄 역 하성광 배우의 비명 한마디에 심장이 떨렸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연극이란 이런 것인가.

21일 대학로 알과핵소극장에서 관람한 극단 76의 기국서 연출 <엔드게임>은 몸이 꼬이고 졸릴 정도로 난해한 사무렐 베케트의 부조리 작품이었다.기국서의 연출노트를 보면 "우리 삶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주는게 아니고 인물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을 과격하게 상징화시켜" 전개되는 이야기라 난해하고 관념적이라고 쓰여있다.특히 아무 정보나 선입관 없이 관람한 필자 같은 관객은 시대도 배경도 상황도 이해되지 않는 음침한 지하창고에 갇힌 느낌이 들었다.

무대 왼편에 드럼통 두 개가 놓여있고 천정이 높은 벽에는 작은 창문이 나있다. 무대 중앙에 휠체어 대용의 높은 의자에 눈도 안 보이고 거동도 할 수 없는 햄이 있고 부관일 수도 아들일 수도 있는 클로브(김규도)가 그를 돌보며 쉼없이 말을 주고 받는다.

중반 쯤에 부모로 설정된 나그(정재진)와 넬(이재희) 이 드럼통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그 시간은 짧고 90분 무대를 <고도를 기다리며>의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햄과 클로브의 분절된 대화로 끌어간다.

'엔드게임' 공연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엔드게임' 공연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기국서 연출의 해석은 명료했다.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어렵지 않았다. 설명이나 군더더기 없이 인간의 절대 고독을 보여주려 했고 그 의도가 하성광이라는 배우에 의해 짜릿하고 뭉클하게 전달되었다. 햄역 하성광은 1시간 반 아니 그 이전부터 높다란 의자에 누워 입과 손과 몸으로 연기했다. 같은 톤으로 했다면 지루했을 대사를 그는 소리와 억양의 변주로 내면의 감정까지를 전달해냈다. <조씨 고아>에서 그의 끈적한 연기에 매료되었는데 이번 <엔드게임>에선  제한된 조건에서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엔드게임' 공연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엔드게임' 공연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하성광의 연기가 빛을 발한 것은 의외의 파트너 김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처음 접한 그는 정적인 햄을 대신하여 모든 움직임(사다리 타고 창문 열기, 망원경으로 세상보기, 개 인형과 지팡이로 햄과 소통하기...)으로 단조로운 극에 변화를 주었다. 햄과 클로브는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공생하다가 클로브가 떠나려하자 햄이 외치는 짐승같은 외마디 절규가 주는 절대고독은 그 여운이 오래 남을듯 하다. 하성광의 대사를 절묘한 타임에 받아내고 되쳐준 김규도의 발견은 이 연극의 수확이었다.

여기에 연기파로 정평이 나있는 중진 정재진 이재희의 캐스팅은 멋진 한수였다. 지원금을 받아야 공연하는 현실에서 한동안 침묵하던 기국서가 탄탄한 배우들의 앙상블로 베케트의 난해한 작품을 어렵지 않게 체험케 해준 것은 관객에겐 선물이었고 대학로 연극엔 귀감이 될만했다.

'엔드게임' 포스터(사진=정중헌 이사장).
'엔드게임' 포스터(사진=정중헌 이사장).

■연극 <엔드게임>에는 음악이 사용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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