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평] 이기쁨 연출의 '산책하는 침략자들'
정중헌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

정중헌 이사장
정중헌 이사장

2019 ARKO 파트너 연극 3편 중 이기쁨 연출의 <산책하는 침략자들>(9월 11일까지)을 아르코소극장에서 관람했다. 공연시간 110분을 재미있게 끌어간 연출의 힘이 느껴졌고, 젊은 배우 10명의 기량이 고루 발휘되어 상큼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영화로도 국내 개봉되었고, 낭독공연도 했다는 원작은 마에카와 토모히로로 지구에 침입한 외계인이 인간의 '개념'을 수집한다는 발상이 기발하다. 그렇지만 관객은 인간을 다시 보게 되고, 부부나 가족의 관계를 돌아보게 하는 연극이다.

아르코 파트너에 선정된 이기쁨 연출은 연극적 재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활동이 주목된다. 10명의 배우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스피드가 대단하다. 그럼에도 매끄러운 동선을 그리며 미장셴의 변화를 주는 솜씨가 녹녹치 않았다. 요즘 대학로 연극에 특징이 없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데 웃기려 하지 않으면서 재미있게 관객들을 몰입케 하는 연출이 이기쁨이다.

일본에서 드라마, 소설로도 출간된 이 희곡은 공상 같은 소재로 시공을 넘나들며 메말라 가는 감정을 파고드는 심리묘사가 돋보인다. 일본적 사고나 감각이 묻어나는 희곡을 이기쁨 연출은 우리 정서로 풀어내 보는 시각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았다.

필자는 겨자맛 같은 칼칼함은 덜해도 가족이나 배우들의 캐릭터 설정이 자연스러워 좋았다. 한국 사회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이한 사건 사고들이 발생한다. 때로는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의문이 가기도 하고, 눈앞의 일들도 믿지 못할 때가 있다. 지구정복의 야심을 품은 외계인들은 개념을 사냥하는데,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서 사랑의 개념을 빼앗은 남편 외계인이 오열하는 라스트가 이 연극의 압권이다.

사진=산책하는 침략자들
사진=산책하는 침략자들 포스터

 

연출 노트를 읽어보면 이기쁨 연출은 알파고처럼 인공지능이 발달하여 인간의 개념까지도 잠식하면 미래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인간다움'이 무엇일까를 추구했다고 밝히고 있다.

부부 역을 윤성원 한송희가 맡는 등 10명의 출연진은 2인 또는 3인의 조합을 이루며 연기를 속도감 있게 해내는데 기량이 고르고 대사가 물 흐르듯 유연해 연습량의 내공이 읽혔다.

경찰 출신 기자 역 권동호와 현직 경찰 역 김대웅, 실직 청년 역 고영민과 후배 역 임현규의 브로맨스도 볼거리였다.외계인 남편 역 윤성원이 아내 역 한송희와 앙상블을 이뤄 연극의 중심을 잡으면서 복잡한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학생 역 장세환. 의사 역 김연우, 언니 역 김희연, 여자 외계인 역 한수림 등도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극에 박진감을 불어넣었다. 서지영의.무대디자인이 특이했고, 장소를 자막으로 처리한 고동욱의 영상도 삼빡했다.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연극 그룹 LAS의 펄펄 뛰는 맥박을 들을 수 있어 좋았고, 역량있는 인재와 주목할만한 작품을 발굴해내는 기획도 괜찮았다.

사진=산책하는 침략자들
사진=산책하는 침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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