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애’에서 ‘황정자’가 되기까지…격변의 시대에서 시작된 도약
운명의 갈림길 끝 도착한 난민수용소 1945년 11월 어느 날 새벽 5시 경. 쓰러질 힘조차 없는 몸을 이끌며 황 씨 일가는 연길역에 당도했다. 땡전 한 푼 없는 처지에 인력거를 부를 엄두도 못 내고 기진맥진한 몸으로 거의 반은 기다시피 하며 시가지 쪽으로 향했다. 그 당시 연길역에서부터 하남다리까지는 지금의 신문청사 로타리 부근이 제정 때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운수공사 자리였는데 황 씨 일가는 그 곳 길 위에서 풀썩 쓰러졌다. 누구 하나 일어날 생각을 못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청년이 이게 무슨 짓거리들이냐며 호통을 치며 일어나라고 난리를 피웠다. 그 청년은 훗날 조선을 건저가 청진시 시장을 지낸 ‘리희일’이었다. 그는 황 씨 일가에게 자신은 청년동맹 동맹원이라고 소개하며 청년동맹은 공산당이 이끄는 조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필 의무가 있다고 소개했다. 일가 중 그래도 의지력이 강한 황화순이 정신을 차리고 사정 얘기를 하자 그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며 길을 안내했다. 그의 뒤를 따라가 도착한 곳이 바로 지금의 연변대학 정문 옆 접수실 부근에 위치한 일본인 난민수용소였다. 이미 그 곳엔 수백 명에 달하는 일본인 난민들이 모여 있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