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엄민용 ‘우리 말글 산책’(3)] 흉노족의 침략이 만든 섬뜩한 말 ‘천고마비’
누구나 한 번쯤 들은 말에 ‘천고마비’라는 것이 있습니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흔히 가을의 풍요로움을 설명할 때 씁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좀 이상한 구석이 있습니다. 말이 살찌는 것과 사람이 풍요로운 게 무슨 상관이냐는 점입니다. ‘말도 살찌는 계절이니, 말을 기르는 사람은 두말해서 무엇하겠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이 살찌는 것이 곧 사람의 풍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이 말은 원래 그렇게 좋은 뜻으로 쓰인 말이 아닙니다. ‘한서(漢書)’에 나오는 이 말은 “북방의 흉노족이 봄부터 여름까지 초원에서 키운 말들이 잔뜩 살이 쪘으니, 이제 곧 남쪽으로 쳐들어와 식량과 가축을 노략질해 갈 것”이라는, 경계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가을의 한가로운 풍경과는 아주 동떨어진 뜻이죠.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의 종조부인 두심언(杜審言)이 북쪽 변방을 지키러 나간 친구 소미도(蘇味道)에게 보낸 편지에도 ‘秋高塞馬肥(추고새마비)’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는 “가을 하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