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이경묵 교수
이경묵 교수

어느 개인도 편견에서 자유롭기는 어렵습니다. 필자도 그렇습니다. 반일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일본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영훈 교수님이 친일파라는 소문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구역질이 난다거나 친일 매국노의 글이라는 비판이 많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필자에게 편견을 갖게 했을 것입니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읽고자 했지만 이런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독후감과 책에 대한 비판 및 제언을 남기고자 합니다.

​이 책의 핵심 주장: 왜곡된 역사에 근거한 반일 종족주의가 나라를 망칩니다

​필자들의 핵심 주장은 왜곡된 역사에 의해 형성된 반일 종족주의가 우리의 정신문화를 점점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우리를 망국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주의는 서구 민족주의 원형인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와는 거리가 멀고, 반일 종족주의에 근거한 독재주의와 전체주의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정신문화 수준을 높이고 진정한 자유 민주체제, 자유시장경제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문화혁명을 추진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승만이 독립정신에 피력한 자유론에 근거해서 국가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고, 재산권이 보호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 선조들이 필자가 생각해왔던 만큼 큰 고통을 겪지 않았다니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제가 농민들의 토지를 강탈당한 것도 아니고, 농사지은 것을 무력으로 탈취당한 것도 아니라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가기 싫다고 하는 젊은이들을 징용으로 끌고 가서 임금도 주지 않고 노예처럼 부려먹지 않았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조선의 젊은 여성들이 강제로 위안부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상호 간의 합의에 의한 계약 관계였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본군 위안부가 20만 명이 아니라 3600명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저자들의 주장이 사실이고 그것을 우리 정부에서 받아들인다면 징용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은 한일 협정으로 우리 정부가 대신 받은 것이니 우리 정부 예산으로 지급하면 됩니다. 이영훈 교수팀이 사실 관계 자료를 바탕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니 정부에서는 이영훈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사실인지를 검증하는 연구팀을 발족시키면 좋겠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소녀상

떠도는 섬 독도: 국제법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필자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부분은 독도에 대한 것입니다. 필자가 대학원에 다닐 때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서울대학교로 석사과정을 온 재일교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법적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고 국제 재판으로 가면 우리나라가 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시는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고 보니 그 친구가 왜 그런 주장을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조선이 독도를 자국의 영토로 인식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일본이 1904년에 우리보다 먼저 자기 영토로 편입했답니다. 대한제국이 그 사실을 알고도 분쟁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로 가져가자는 일본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답니다. 그동안 언론에서 독도가 우리의 영토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도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많이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회상해 보니 우리의 영토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니라, 1904년 이전에는 일본이 자신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지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영훈 교수가 친일 매국노라면 독도를 일본에 줘야 한다고 주장해야 했습니다.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친일 매국노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영훈 교수는 이승만 정부 때부터 김대중 정부 때까지 취한 "일본을 자극하는 공격적인 자세를 자제하고 실효 지배하는 정책"이 좋다고 주장합니다. 노무현 정권 이후의 공세적인 정책은 좋지 않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나 매국노의 입장에서 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영훈 교수는 서문에서 "국익을 위해서 잘못된 주장을 고집하거나 옹호하는 일은 학문의 세계에선 용납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자세는 결국 국익마저 크게 해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반일 종족주의가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고 국익을 해치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국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점에서 애국자가 아니라고 욕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저자들이 우리나라의 이익을 해치고 일본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 책을 쓴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유 선진국가로 가기 위해 반일 종족주의를 극복하자는 주장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반일 감정이 강하거나 그것을 강화하려는 분들에게는 친일파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반일 감정이 아주 강했던 분들, 역사를 왜곡했던 분들, 왜곡된 역사를 바탕으로 징용 피해자 위로금을 요구하고, 위안부를 국제적인 문제로 만들어 일본을 괴롭혔던 분들에게는 저자들이 원수 같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반일 감정이 아주 강한 분들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자료를 믿지 않고 조작했다고 볼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했던 분들은 자신들이 왜곡한 것을 들켰으니 미울 것입니다. 징용이나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을 조장한 분들도 이 책에서 밝힌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 저자들이 왜곡한 것이라고 볼 것입니다. 자료를 왜곡해서 일본 편을 든다는 생각을 하니 친일파로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일 갈등을 정치적으로 활용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이익을 해쳤으니 원수처럼 볼 것입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해서 누가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인지가 밝혀졌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를 기초로 국가를 운영해야 우리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결론에는 동의합니다

종족주의는 사회문화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집합주의의 변형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문화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차원이 개인주의(Individualism) - 집합주의(Collectivism) 차원입니다. 개인의 이익과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이 상충될 때 무엇을 우선시하느냐는 것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면 개인주의적 문화라고 하고,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고 하면 집합주의 문화입니다.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주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자유주의 정치철학이 개인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전체의 이익을 위해 국가가 개인에게 부여한 역할을 하도록 강제하자는 공산주의 정치철학은 집합주의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사회문화를 비교한 Geert Hofstede의 연구에서는 우리나라를 집합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한 나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집합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별로 존중하지 않습니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집단 전체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왕따를 시킵니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개성이 존중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봅니다. 획일화가 일어납니다. 평준화 교육, 직무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52시간제 적용, 생활비나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는 전국 공통의 최저임금 등 그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재산권 침해를 아주 쉽게 생각합니다. 집합주의가 강한, 즉 획일적 사고를 강요하고 창의성과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발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유에 기초한 국가 운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사진=독도
사진=독도

그래도 우리를 지배한 과거의 일본을 좋아하기는 어렵습니다

저자들이 일본이 조선을 근대국가로 만들었으니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은 전 세계 역사에서 국가 간 계약에 통해 통치권을 넘겨 준 아주 예외적인 나라입니다. 전쟁에서 져서 빼앗긴 것도 아니었고, 독립 전쟁을 통해 나라를 되찾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당사자로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조선 지배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돈을 빼앗은 것과 같이 강박에 의해 계약을 맺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제법으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강탈이고 불법 지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아직도 불법이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1944년 8월에 징용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 일손이 달려 외국인을 산업 연수생으로 데려오듯이 우리 젊은이들을 데려 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임금이 3배 정도 높아 서로 가려고 했고, 공식적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밀항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까지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징용령 자체의 적법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인에게도 징용령을 내렸으니 문제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국은 "대표 없이는 조세 없다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라고 하면서 독립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조세 정책을 결정하는 영국 의회에 자신들의 대표를 보내지 않았으니 세금을 내라는 의회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에게는 참정권이 있었으나 우리에게는 참정권이 없었습니다. 투표할 권리조차 주지 않은 조선인에게 일본인과 동일한 징용령을 내린 것을 적법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 책에서는 징용으로 끌려간 분들이 무료 기숙사에 살았고, 조선인 사감들이 징용 피해자와 전범 기업 사이에서 농간을 부린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저자들이 지급하는 임금이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본 정부에게 관리 책임을 물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안부 문제도 그렇습니다. 위안부 제도 그 자체가 그 당시에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시점에서 재단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군부에서 위안부 모집과 운영에 관여했다면 위안부 모집책에게 계약 조건을 명확하게 설명하라고 해야 했습니다. 당사자의 부모나 보호자가 아닌 당사자의 자유의지인지를 학인하고 당사자와 직접 계약을 하도록 해야 했습니다. 모집책들에게 속아서 간 분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간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억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분들께서 이런 것을 하지 않은 일본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제 지배 시에 조선 경제가 성장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를 달기가 어렵습니다. 조선을 장기적으로 지배하면서 더 많은 것을 가져가겠다는 정주형 도적 정책을 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고마워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이 자주 국가로 남아있었다면 더 빠르게 발전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일본이 정주형 도적 정책을 취한 이유가 조선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민족을 없애고, 말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해서 영구히 지배하겠다는 의도로 한 것이기 때문에 더 밉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와 일본인들,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구분하면 어떨까요?

더구나 고려 말 조선 초기 왜구들의 침탈,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우리 선조들에게 입힌 너무나 큰 피해까지 고려하면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 교육을 통해 반일 감정을 세대 간에 전수했습니다. 딸 아이가 고등학교 때 한국사를 배우면서 일본 놈들 아주 나쁜 놈들이라고 공부하면서도 화가 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를 살고 있는 보통의 일본인까지 미워해야 할까요? 연좌제로 너희 조상들이 잘못한 것이 있으니 너도 나쁜 놈이야 해야 할까요?

얼마 전에 딸아이 친구가 동경에 갔다가 전철 안에 지갑이 든 가방을 두고 내렸답니다. 일본 가서 세 번째 잃어버린 것이랍니다. 이전에 두 번 잃어버렸을 때도 모두 찾았답니다. 그 친구 왈 "이번에 가방과 지갑을 모두 찾으면 이번 세대 일본인들은 내 마음속에서 용서할 거야"라고 했답니다. 그것도 찾고 나서 "일본 사람들 시민의식 쩐다"라고 했답니다. 쩐다가 아주 높다는 뜻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필자가 만난 일본 교수들도 그렇게 친절할 수 없었습니다. 폐 끼치지 않기 노력하고 약속을 하면 믿을 만했습니다. 이들도 미워하는 게 정상일까요?

악행을 저질렀던 과거의 일본과 현재의 일본을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요? 과거사를 생각하면 주변국 중에서 미워하지 않을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를 수차례나 침략한 중국, 가쓰라-테프트 조약으로 일본의 조선 반도 지배를 인정한 미국, 영일동맹으로 일본의 조선반도 지배를 인정한 영국, 병인양요 때 우리나라를 공격한 프랑스를 다 미워해야 합니다. 과거의 일로 적대감을 가지고 그런 나라와 교류하지 않는다면 교류할 나라가 없을 것입니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 일제 지배를 했던 일본이 현재의 일본과 동일한 나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실사구시를 통해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론: 정부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팀을 발족시키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좋지는 않습니다. 개인들은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위정자들께서는 감정이 아닌 철저한 실리 추구의 관점에서 한일 문제를 접근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한일 간의 가장 큰 문제는 징용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입니다. 가설이나 상상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에서는 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실 자료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팀을 발족시켜야 할 것입니다.

사진=군함도(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1940년대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
사진=군함도(나가사키현 나가사키항 근처에 위치한 섬으로, 1940년대 조선인 강제 징용이 대규모로 이뤄진 곳)

연구자의 관점에서 본 이 책에 대한 비판과 제언

반일 종족주의가 경제와 정치를 망친다는 핵심 가설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관련해서는 필자가 진위 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 책의 핵심 가설인 반일 종족주의가 우리나라의 경제가 정치를 망치게 한다는 인과관계 주장에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첫째, 반일 종족주의가 무엇인지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는 반일 종족주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 정의를 일관되게 활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개인이 매몰된 집단을 기초 단위로 하는 정치를 '종족주의'라고 했고, 종족주의가 일본과의 관계에서 나타난 것이 '반일 종족주의'라고 했습니다. 다른 부분에서는 극단적인 반일 감정을 반일 종족주의의 의미로 썼습니다. 핵심 개념의 정의가 정확하지 않으면 가설이 맞는지를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둘째, 저자들은 반일 종족주의가 1960년대부터 서서히 성숙하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폭발했다고 주장합니다. 반일 종족주의가 역사왜곡을 조장하고, 역사왜곡이 다시 반일 종족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반일 감정을 활용한 것이 1960년대부터 서서히 많아져 1980년대에 폭발했는지가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자들은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보여주지는 않았습니다. 토지수탈, 징용, 위안부에 대한 왜곡이 그런 시대 순으로 변했다는 것은 보여주었습니다. 왜곡이 많아졌다는 것이지 반일 종족주의가 강화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셋째, 반일 종족주의가 망국의 길로 가는 원인이라면 1960년대 이전에는 경제와 정치가 크게 발전하고, 1960년대부터 서서히 나빠졌다가 1980년대에는 크게 악화되어 지금쯤이면 벌써 망해 있어야 할 나라일 것입니다. 저자들의 핵심 가설과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역사가 잘 맞지 않습니다.

넷째, 이 책에서는 반일 종족주의가 경제와 정치를 망치는 논거로, 반일 종족주의가 거짓말에 관대한 타락한 정신문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위증, 무고, 보험 사기, 정부 지원금 관련 사기, 민사소송 건수를 증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에서는 공정한 게임 규칙과 약속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나라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가 나라를 어렵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거래비용이 높아져 경제 발전이 어려워지고, 서로를 믿지 못해 정신적으로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에 관대한 문화가 반일 종족주의 때문이라는 주장, 물질주의가 반일 종족주의의 원천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논리적으로 관계를 설명하지도 않았고, 자료를 가지고 검증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반일 종족주의를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으로 해석한다면 반일 종족주의가 국가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갈등 관계에 있는 집단, 조직, 국가 간의 관계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키우는 것은 일상적으로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해당 주체 내부의 응집성이 높아집니다. 그런 응집성이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국가 대표가 축구할 때 다른 나라에는 져도 되지만 일본에는 절대로 지지 말라고 합니다. 한일 국가대표전에서는 우리 선수들이 더 합심해서 경기를 합니다. 그래서 진 적이 별로 없습니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기업에게는 지지 말자고 하면서 경쟁력을 높여온 우리 기업과 기업가들이 우리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도 기여했을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해서 반일 감정을 강화하는 것 그 자체는 연구자들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 바로 옆에 있고 경제적으로 분업을 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일본과 상호 협력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교역을 해야 우리 경제가 잘 발전할 수 있습니다. 자기 나라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입니다. 글로벌화된 이런 세상에서 역사를 왜곡해 반일 감정을 키우고, 그를 통해 우리나라의 이익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겠다는 학자, 사회운동가, 정치인들이 매국을 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징용과 위안부 사건과 관련된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더 노력했어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1944년 8월 이전 모집이나 정부의 알선으로 일본에 일하러 가게 된 분들이 자의에 의해 갔고, 위안부의 경우에는 본인의 자유의지 혹은 부모나 보호자의 허락을 받고 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강제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강제로 끌려갔다는 분들의 증언은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사회과학에서는 데이터의 신뢰성(Reliability)을 중시합니다. 자료가 정확하게 측정되었느냐입니다.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을 하면 분석 결과도 믿을 수 없습니다. 사회과학에서 과거 기억에 근거한 자료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은 맞습니다. 아주 최근의 일에 대한 기억이라면 그래도 인정해 주지만 먼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에 기초해 모은 자료는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기억이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수가 동일한 기억을 하고 있고, 기록에 쓰인 자료가 그 기억과 다르다면 기록이 신뢰할만한 것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록을 하는 과정에서 왜곡될 수도 있고,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기록만 수집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회과학에서는 기록된 자료(Archival Data)를 사용하는 경우에도 그것을 믿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자료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과 인터뷰를 해서 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이 책에서 일본 탄광 등에서 일한 분들이나 위안부로 가신 분들이 강제로 끌려간 것이냐 아니냐는 핵심 변수입니다. 핵심 변수의 측정에서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책 전체 내용의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1944년 9월부터 약 8개월 동안 10만 명 이하가 징용을 갔다고 합니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동원하는 징용을 거부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백 엔 이하의 벌금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징용을 실시할 당시에 많은 조선 청년들이 일본에 가서 돈을 버는 것을 로망으로 여겼기 때문에 징용 대상으로 선정된 사람들이 별 불만 없이 갔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징용을 다녀온 분들 중에서 동네에 혹은 집안에 TO가 할당되어서 자신이 할 수 없이 갔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증언이 많다면 그런 증언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습니다. 당시에 일본 가는 것이 로망이었기 때문에 징용 대상자로 선정된 모든 사람들이 흔쾌히 일본으로 갔다는 추정하는 것은 과도한 확대해석처럼 보입니다.

일본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에서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다고 증언하는 분들이 많고, 국내에서도 여러 분이 강제로 끌려갔다고 증언하면 그것이 아니라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 책에서는 강제로 끌려갔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가 팔아서 갔거나 자유의지로 갔다는 분들의 기록을 활용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끌려간 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합니다. 위안부로 가신 분들 중에는 이전에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다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해서 자유의지로 간 분도 있을 것이고, 그런 일인지 모르고 속아서 간 분도 있을 것이고, 부모나 보호자가 계약금을 받고 보내서 간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강제로 끌려간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유사한 업무에 종사했던 분이 자유의지로 갔다거나 부모가 계약금을 받고 보냈다는 기록만으로 모든 분들이 자유의지 혹은 정상적인 계약 절차를 밟아서 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제 시대 때의 조선총독부 예산과 결산 자료를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조선총독부의 연간 예산과 결산 자료는 일제가 조선을 수탈했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총독부가 세금으로 거두어 간 것 중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것이 많다면 수탈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남대학교 김재호 교수님의 연구에 따르면 일제 지배 시기에 흑자를 기록한 해는 1917-1918년뿐이고, 보충금이라는 일본 정부로부터의 보조금을 빼면 흑자를 기록한 해가 한 해도 없었답니다. 국내에서 거둔 세금으로 모자라 일본 정부가 교부금을 줘서 그 자금으로 조선반도를 통치했다는 것입니다. 조선 반도에 주둔한 일본군에 대한 예산을 일본 정부 예산으로 직접 지불했기 때문에 그것까지 조선의 세출로 잡으면 일본 정부의 조선총독부에 대한 교부금을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총독부가 재정 자립을 도모했지만 3.1 운동 이후 문화정치로 전환하면서 재정 자립을 포기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런 자료를 추가하면 저자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18년 8월에 경제사학이라는 학술지에 게재된 김재호 교수님의 논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쇠붙이 징발 등 다른 종류의 수탈이 없었는지도 확인해 주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동족촌에서 자랐습니다. 일제 시대 때 어떻게 살았는지가 공유되는 동네였습니다. 1919년 생인 필자의 모친에게 일제의 토지나 곡물 수탈, 위안부에 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일제 말기에 쇠붙이 징발로 인해 고생하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송진을 따다가 바쳤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유의 주제를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자료가 있다면 쇠붙이를 돈을 주고 사 갔는지, 아니면 돈도 주지 않고 빼앗아갔는지, 송진 같은 것을 따다가 바쳤다면 무상으로 노력 동원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적절한 보상을 한 것인지도 연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 이외에도 비정상적인 수단을 통해 수탈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밝혀 주시면 좋겠습니다.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썼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한국경제사에 평생을 천착하시고 자료를 찾아보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무지를 깨우쳐 주신 이영훈 교수님께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친일 매국노라고 비판받을 것이라는 알면서도 학자적 양심으로 진실을 밝히려 하신 강직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역사 자료들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반일 종족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한 것은 없는지도 언급해 주셨으면 독자들은 저자들이 편향된 시각에서 책을 썼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항일 운동을 했고 일본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던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반일 종족주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책임이 없는지 궁금합니다. 독도를 방문해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킨 이명박 대통령과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한 바가 별로 없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판했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저자들의 의도를 다르게 해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참고문헌>

Hofstede, Geert. Culture's consequences: International differences in work-related values. Vol. 5. sage, 1984.

김재호. 2018. 한국 재정의 장기적 추이와 특성, 1896-2015. 경제사학. 42권 2호. 153-195

조선총독부의 재정에 관한 논문을 소개해 주신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김재호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초고에 대해 코멘트를 해 주신 한양대학교 곽도성 특임교수님, 명지춘혜병원 장성구 원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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