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연구와 심층 인터뷰 통한 질적 연구 방법으로 작성…한국체육대학교서 박사학위 수여
"모바일 시대 스포츠신문의 방향성에 초점 맞추는 다양한 논의와 후속 연구 필요성" 제안

김경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김경호 경향신문 선임기자.

국내 스포츠신문의 역사를 총정리한 박사논문이 발표됐다. 경향신문 김경호 선임기자는 지난 2월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며 학위논문으로 ‘국내 스포츠신문의 변천과 사회이론적 해석(Historical Process and Theoretical Analysis of Sports Newspapers in Korea)’을 제출했다.

국내 스포츠신문을 주제로 작성한 논문들은 있지만 그 역사를 기록한 논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기자는 이 논문에서 1963년 창간한 일간스포츠신문에서부터 16년간 독주한 일간스포츠, 스포츠 신문 경쟁시대를 연 스포츠서울, ‘스포츠신문 삼국지’를 이룬 스포츠조선을 비롯해 스포츠투데이와 굿데이가 가세해 과포화 상태로 경쟁하던 시기의 역사를 담았다. 또, 그 이후부터 현재 진행형 이야기를 해당 신문과 관련 문헌, 저서, 그리고 종사자 인터뷰 등을 통해 정리했다.

이 논문은 문헌연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실을 확인하면서 스포츠신문 역사를 정리한 뒤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결정론 등 사회이론을 적용해 깊이 있는 해석을 시도한 질적 연구로 작성했다.

▲연구목적=1963년 일요신문사에서 스포츠전문 일간지를 창간한 것이 국내 스포츠전문 일간지의 효시다. 활자매체인 신문은 기록성과 시사성이 크고 그만큼 사료로서 뛰어난 가치를 갖는다. 이 연구는 탄생 이후 60년에 가까운 긴 시간을 보내온 한국 스포츠신문의 역사를 탐구하는데 첫째 목적을 두었다. 또한 스포츠신문이 한국사회 및 스포츠계 발전과 보조를 같이 하면서 각 시기별로 보도에 담은 이데올로기는 무엇이었으며, 사회와 체육계에 기여한 바는 무엇이고 언론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탐구하고자 했다.

▲연구문제=한국스포츠신문의 변천 과정을 스포츠신문의 여명과 태동기, 일간스포츠 독주기, 스포츠신문의 삼국지·황금기, 무한경쟁기로 구분하고 각 시기별 연구문제를 설정했다. ①일요신문이 1963년 발행한 ‘일간스포츠신문’의 창간 및 정간 배경은 무엇이고, 1969년 한국일보사에서 창간한 ‘일간스포츠’의 탄생 과정은 어떠했나. ②‘일간스포츠신문’이 창간 후 단기간에 소멸한데 비해 ‘일간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과 체육·문화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③스포츠신문 경쟁시대를 연 ‘스포츠서울’의 탄생 배경과 빠른 성장 동력은. 또한 만화부록 경쟁으로 심화된 스포츠신문의 선정성, 음란성, 정체성 논란이 빚은 결말은 무엇인가. ④무료신문의 등장과 스포츠신문의 쇠퇴가 갖는 연관성 및 ‘굿데이’와 ‘스포츠 투데이’의 폐간 이후 이뤄진 스포츠신문 질서의 재편성이 한국 언론계에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⑤이상의 연구를 통해 스포츠신문이 각 시기별로 근현대 한국 사회에 전파하고 공유한 이데올로기와 대중신문으로서 국내 스포츠계와 언론계에 기여한 바는 무엇인가.

스포츠신문들 화면 캡처(스포츠신문 삼국지 시대를 연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스포츠신문들 화면 캡처(스포츠신문 삼국지 시대를 연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연구방법=문헌연구와 심층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사실을 확인해 스포츠신문의 역사를 정리했으며 사회이론을 적용해 해석을 시도했다. 문헌연구의 1차 자료는 스포츠신문이다. 1963년 등장한 국내 첫 스포츠신문인 ‘일간스포츠신문’은 한국경제신문 조사자료실과 국립중앙도서관을 통해 자료를 구했고 이후 일간스포츠, 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 스포츠투데이, 굿데이 등은 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을 활용했다. 또한 각 신문사의 사사, 언론진흥재단의 월간지 ‘신문과 방송’, 한국기자협회의 ‘기자협회보’도 중요한 자료가 됐다.

심층인터뷰는 각 신문에 종사했던 경영진과 편집국 간부, 기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각 시기별 상황과 에피소드 등을 전하고자 했다. 최초의 스포츠지 일간스포츠신문과 현재 일간스포츠의 초창기 상황을 전해준 원로 스포츠기자들의 증언은 특히 큰 도움이 됐다.

스포츠신문 역사를 해석하면서 사회학 분야인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이론, 미디어 분야인 마샬 맥루한의 미디어 결정론을 적용했다.

▲결론=①1963년 창간된 일간스포츠신문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겨냥해 나온 한국 최초의 스포츠신문이다. 경영진이 박정희 정권 핵심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신문은 창간 직후부터 경영난으로 고전하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도쿄 올림픽 직전 경제신문으로 전환하며 정간됐다. 이후 본격적인 스포츠신문 시대를 연 일간스포츠는 1961년 12월 1일부터 시도한 서울경제신문 스포츠면에서부터 비롯됐다. 한국일보 창업자 장기영은 스포츠신문 창간을 목표로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서울경제신문 스포츠면을 활용해 기반을 다졌다.

김경호 선임기자의 박사논문 ‘국내 스포츠신문의 변천과 사회이론적 해석(Historical Process and Theoretical Analysis of Sports Newspapers in Korea).’
김경호 선임기자의 박사논문 ‘국내 스포츠신문의 변천과 사회이론적 해석(Historical Process and Theoretical Analysis of Sports Newspapers in Korea).’

②한국일보사에서 1969년 창간한 일간스포츠는 일간스포츠신문의 전철을 밟지 않고 성공적으로 연착해 16년 동안 독점 스포츠신문의 지위를 누렸다. 앞선 일간스포츠신문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반면 한국일보사 일간스포츠가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기업 한국일보의 든든한 지원, 성인용 만화와 청춘소설 연재 등 독자의 요구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 제공, 우수한 스포츠전문 취재기자 재원 확보, 체육계 발전으로 인한 스포츠기사의 다양화 및 양적·질적 성장, 1970년대 비약적인 사회·경제적 발전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유일한 스포츠신문으로서 일간스포츠는 체육계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며 더불어 발전했다. 또한 파격적으로 시도한 고우영 만화 연재는 이후 스포츠신문 만화라는 한 장르를 개척할 정도로 발전했다. 일간스포츠의 만화연재는 궁극적으로 한국의 만화계 발전의 촉매제가 됐다.

③스포츠서울은 정권의 정통성이 취약한 제5공화국 정부가 ‘3S 정책’의 핵심요소인 스포츠에 초점을 맞춰 전략적으로 탄생시킨 대중신문이다. 스포츠서울은 국내 최초의 가로쓰기 편집, 한글 전용, 선명한 컬러인쇄 등으로 신문 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일간스포츠와 스포츠서울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면서 종전의 주간지 시장을 흡수해 대중지로서 영역을 넓혔다. 스포츠신문 3사의 수익이 안정적이고, 발행부수와 영향력 등 전체 신문시장에서 절정을 이뤘던 1990년대 시기를 ‘황금기’라고도 한다. 스포츠조선이 후발지로서 가판 열세를 뒤집고자 시도한 만화부록은 선정성, 음란물 논쟁을 불렀고 시민단체와의 법정다툼으로 이어졌다. 10년에 가까운 시민단체와의 공방은 결국 스포츠신문의 이미지를 ‘황색신문’으로 추락시키는 악영향을 미쳤다.

④1999년 스포츠투데이와 2001년 굿데이 창간으로 5개 신문이 혼전을 벌이다가 자본금과 기업 구조가 취약한 굿데이, 스포츠투데이가 잇따라 도산하며 스포츠신문 시장에 새로운 질서가 수립됐다. 신문은 절대 망하지 않을 것이란 언론계 종사자들의 믿음은 신기루였다. 지하철 가판대를 휩쓴 무료신문 열풍, 인터넷의 등장 등에 의해 과거 당당한 기세를 떨치던 스포츠신문은 서서히 사양길로 접어들었고 온라인과 모바일, 그리고 SNS 등이 종이신문을 대체하는 새로운 뉴스 유통경로가 되고 있다.

⑤스포츠신문들이 각 시대별로 사회와 공유한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 애국주의, 국가주의, 영웅주의, 상업주의, 승리지상주의, 배금주의 등 다양하지만 스포츠 뉴스 보도에 일관되게 계속된 핵심줄기는 민족주의였다. 일제강점기에 집중 유입된 서구문화인 스포츠에는 자연스럽게 항일정신과 민족주의 정서가 배어들었다. 건국초기의 혼란과 6·25 전쟁, 군사 독재기를 거치면서 국민정서에는 항일과 반공, 민족주의가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군사정부의 통치자들은 스포츠에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해 국민통합의 기제로 삼았다. 제3공화국에 형성된 스포츠민족주의는 또 다른 쿠데타로 집권한 제5공화국 전두환 정권 시대에 이르러 더욱 증폭됐고 이후 19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 글로벌 스포츠 시대에도 더욱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면서 스포츠민족주의는 경제민족주의와 만나 상업적 민족주의로 변모했다. 스포츠민족주의는 영웅주의와도 맥을 같이 하며 두 이데올로기는 스포츠미디어에 의해 더욱 확산, 증폭되고 재생산돼 왔다.

⑥이상의 연구로 얻은 분석에 사회 이론적 해석을 더해 한국 사회만의 특색 있는 대중지로 발전해온 국내 스포츠신문의 사회적 위상과 정체성을 탐구했다. 신문사 내에서의 스포츠 취재부에 대한 홀대, 정치권의 이용도구로 출발한 스포츠 신문의 부정적 이미지는 비판적 견해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스포츠와 스포츠신문을 경시하는 고정관념, 구별짓기로 이어졌다.

그러나 스포츠신문이 대한민국 사회 발전에 기여한 바는 결코 작지 않다. 1969년에 창간된 일간스포츠는 한국 사회에 산업화와 고도성장이 진행되며 피어나기 시작한 젊은이의 청춘문화를 대변했고 스포츠와 연예, 레저, 만화 산업의 발전을 주도했다. 1985년 창간된 스포츠서울은 한글 전용에 전면 가로쓰기, 컬러화 등을 통해 신문을 대중과 가깝게 연결시켰다.

이후 경쟁지인 스포츠신문은 물론이고, 이전까지 세로쓰기 편집에 국한문을 혼용하며 ‘신문은 지식인의 것’이라는 필요 이상의 권위를 지키려 했던 일반 종합지들도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편집의 대세를 따랐다. 신문을 시민 모두의 손에 들려준 결정적 전기를 스포츠서울은 제공했고, 이후 가세한 스포츠조선과 더불어 대중신문의 영역을 굳혀나갔다. 3개 스포츠신문은 프로야구를 중심으로 한 프로스포츠와 아마추어 스포츠, 각종 레저 스포츠를 소개하고 대중적인 트렌드를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정치세력의 의도에 이용됐던 스포츠는 민주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과거의 이미지를 걷어냈고, 스포츠신문 역시 정치권의 이용도구가 됐던 불명예를 덜고 새로운 언론환경 속에서 한국 스포츠발전에 일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스포츠신문이 탄생하고, 성장하고, 최절정기에 이르렀다가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있는 현재까지의 변천사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전, 그리고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일간스포츠신문, 일간스포츠 등 1960년~1990년대의 스포츠신문은 스포츠계와 대중문화계의 변화를 자극하고 발전을 선도했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의 발달로 온라인 전문 매체들이 생겨나 스포츠신문을 위협했고, 2010년대 들어 모바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종이 스포츠신문의 입지는 더더욱 초라하게 위축됐으며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스포츠신문도 이제는 그에 걸맞은 혁명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활로를 찾지 않으면 냉정한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이르렀다.

▲제언=한국 스포츠신문의 역사를 돌이켜보며 얻은 교훈은 스포츠신문이 스포츠와 대중문화를 중점으로, 심도 깊게 다루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급격한 환경변화 속에서 스포츠신문이 찾아야 할 정체성은 초심을 잃지 않는 정론의 기능이다. 기본과 원칙을 충실히 지키면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 호흡하는 것이야 말로 현재의 스포츠신문들이 독자들로부터 인정받는 길이라고 하겠다.

스포츠신문의 역사에 한정해 초점을 맞춘 이 연구는 우리나라 스포츠 미디어의 역사에 대한 연구로 논의를 넓히거나 특정 분야, 종목, 신문, 사건, 주제 등으로 세분하는 새로운 연구의 필요성을 제시한다. 또한 현재의 모바일 시대에서 스포츠신문이 가야 할 방향성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다양한 논의와 연구가 필요함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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