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설명법

설명법(exposition)은 사물에 관해서 알기 쉽게 풀이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무엇이냐?," "어떤 뜻이냐?," "어떤 성질이냐?" 하는 따위의 물음에 대답하는 것이 설명법이다. 설명법은 한 마디로 독자의 의문이나 궁금증을 풀어 주고 독자의 이해를 돕는 서술법이다.

설명법은 대개 소주제나 그것과 관련된 사항을 풀이하게 된다. 다음 보기에서처럼 소주제문에 나오는 주요 낱말의 뜻 매김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설명법의 한 가지이다.

[보기 5.6]

산에는 "자연"이라는 큰 스승이 살고 있다. 거기엔 상록수도 있고 활엽수도 있다. 그늘에 못견디는 소나무 같은 양수가 있는가 하면 솔 그늘에서만 사는 송이같은 음식물도 있고, 아예 큰 나무숲 그늘이 아니면 맥도 못 추는 삿갓나물 같은 식물들도 부지기수다. 이렇게 다양한 온갖 것들이 우주의 질서를 따라 살면서 저들 나름으로 조화를 이룬다. 그것으로써 산을 찾는 이들에게 무언의 가르침을 꾸준히 베풀고 있다.

--이삼우, "자연이라는 스승" 중에서 <조선일보>--

위 글은 첫문장에 나온 소주제 "'자연'이라는 스승"을 필자나름으로 풀이하고 있다. 곧 이 필자는 산에 있는 자연의 식물들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고 보고 그 점을 독자에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설명법이란 이처럼 사물을 자기 나름 대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것이다. 그러한 풀이는 관점이나 견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가 있다. 같은 "산"이라도 필자의 관점이나 견해에 따라 각기 다른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특정한 "개념"에 대한 자기 나름의 풀이를 하고 있다. 이런 풀이가 일반성을 띠고 있을 때에는 설명의 영향력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보기 5.7]

우리 젊은이들 중에는 몇 가지 잘못 알고 있는 개념이 있다. 우리 국민은 언제부터인가 쫓기는 사람은 무조건 숨겨주는 것이 미덕인줄 아는 경향이 있다. 일제 시대에 독립 운동을 하다 쫓기던 애국지사, 군사정권 시대에 민주화 운동 인사들을 숨겨 주고 비호하는 것은 암암리에 장려되었다. 그런 경우와 요즈음 거금을 수뢰한 악덕 공무원이나, 살인 강도의 경우를 혼동하는 수가 많다. 또 한가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인정(人情)이란 말이다. 인정이나 우정은 긍정적인 개념으로서 악한 일에는 해당이 안되는 것이다. 정직하지 못하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에 동조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친구를 설득하여 옳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오히려 진정한 의미의 인정이고 우정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런 선악과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아는 사람은 무조건 감싸 주는 것이 인정인 줄 알고 있는 일이 많다. 이것은 필자가 최근에 설문 조사를 통해서 드러난 일인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개념들이다. -- 홍연숙, "법과 인정" 중에서 --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행동 개념을 필자 나름으로 바로 잡아 해석하고 있다. 이런 풀이는 뜻있는 이들이 공감할 만한 것이다.

다음 보기에서는 "운동"이라는 말이 가진 여러 뜻을 풀이하여 이해시키는 설명법을 볼 수가 있다.

[보기 5.8]

운동이란 말은 여러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물체가 자리를 바꾸어 움직이는 일을 뜻한다. 이는 물리학 등에서 주로 쓰이는 운동의 뜻이다. 둘째로는 물질의 존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온갖 변화를 가리킨다. 이 개념은 만물의 생성, 변화, 섭리 등을 말할 때 쓰이는 것으로 철학에서 주로 쓰인다. 셋째로, 체육이나 위생을 위해서 몸을 의식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가리킨다. 이 경우는 우리가 일상 쓰는 육체적 운동을 의미한다. 넷째로, 정치적, 사회적 목적을 위해 활동하는 것을 말할 때도 이 운동이라는 말을 쓴다. 이에는 선거 운동, 독립 운동, 모금 운동, 이웃돕기 운동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런 설명법은 여러 가지 설명문을 짓는데 주로 쓰인다. 각종 교육 목적의 글, 신문 잡지 등의 해설 기사, 사전 등의 뜻풀이, 일반 사람들에 대한 계몽적인 글, 물품의 용도나 기계 등을 다루는 법을 소개한 설명서들은 대부분 설명문의 테두리에 든다. 이런 설명문은 기본적으로 설명법으로 이루어 진다. 그밖의 다른 종류의 글에서도 해설이 필요한 부분에는 설명법이 쓰인다. [설명법의 글은 뒤에서 다시 자세히 다룰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4) 논술법

논술법(argument)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견해나 주장을 내세우고 합리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설명법이 문제를 풀이하여 독자를 이해시키는 것이라면, 논술법은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에 대하여 근거를 밝혀 독자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에 관해서 글을 쓴다고 하자. 설명법은 종교란 어떤 것이며, 어떤 종교들이 있으며, 종교는 어떻게 믿는 것인가를 풀이하여 독자를 이해시키는 데 주목적을 둔다. 이와는 달리, 논술법에서는 그러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사람은 왜 종교를 믿어야 하는가," "종교를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는 믿을만한 가치가 있다" 따위와 같이 자기 나름의 견해를 내세우고 그 근거를 조리있게 밝혀 줌으로써 독자를 납득시키거나 자기의 견해에 따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보기 5.9]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품속이 아니면 살 수가 없다. 자연은 모든 생명체가 사는 땅, 마시는 물, 숨쉬는 맑은 공기의 원천이다. 이것이 없다고 해 보라. 어떤 생명체가 어디서 어떻게 살겠는가? 우리 인간은 가장 민감한 생명체다. 어떤 생명체보다도 고귀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의 품 속이 아니면 한 시도 살 수가 없다. 우리는 자연이라는 터전이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 보기는 맨앞의 밑줄친 문장을 대전제로 하고 그 뒤의 밑줄친 문장을 소전제로 삼아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문장 곧 자기의 새로운 주장을 내세우는 논술법을 보인다. (그밖의 문장들은 각기 전제나 결론을 부연하는 설명문이다.) 이렇게 일반으로 인정되는 전제를 바탕으로 자기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이끌어 내서 독자를 조리있게 설득하는 것이 논술법의 단락이다. 이러한 논술법은 연역법이라 하는 것인데 이것은 뒤의 ///에서 다룬다.

다음 보기도 자기의 주장을 조리있게 내세우는 논술법의 한 가지이다.

[보기 5.10] 요즈음 걸핏하면 우리의 집터가 폭발물로 허물어지는 일이 있는가 하면 나날이 수많은 사람이 건너 다니는 다리가 갑자기 무너져 내리기도 하고 일상 다니는 길이 쓰레기와 매연으로 숨막히게 더렵혀지고 있는 사레도 많다. 마실물과 공기가 날로 오염되어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 삶의 보금자리인 자연환경이 날로 망가지고 허물어져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위 글은 앞의 구체적인 특수 사실들을 바탕으로 마지막의 다소 일반화된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것은 뒤에서 다루는 귀납법에 따른 논술법의 보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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