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수 선생 / 특별기고] 8.15 이래 못 이룬 친일청산, 지금이 적기

김갑수 선생
김갑수 선생

구보다라는 일본인이 있었다. 1953년, 이승만 정권 때의 일이다. 그는 한일협상 일본 측 대표였다. 그는 말했다. “일본은 36년 동안 조선에 이로운 일을 많이 해 주었다. 조선에 남아 있는 일본인의 재산을 청구할 권리가 일본에 있다.” 이른바 ‘구보다 망언’이란 것이었다.

지금 구보다와 이름이 비슷한 구로다가 있다. 그는 일본의 <조선일보> 격인 <산케이 신문>의 논설위원이다. 그는 말한다. “한국은 1965년 한일협정 때 일본이 준 3억 달러로 경제발전을 이루었다.”

66년 전의 구보다와 지금의 구로다는 이름도 비슷하지만 의식구조도 닮았다. 그리고 최소로 잡아 과반 이상의 일본 국민이 이 두 사람과 비슷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여론의 56%가 이번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에 찬성한다고 한다.

일본 정부뿐 아니라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말들이 무성하다. 자한당은 입에 올리기도 싫다. 그런데 자한당이 아니더라도 특히 무언가 조금 아는 체를 하는 사람일수록 한국 청와대의 불찰을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참모 복이 없다”고 말한 박지원 의원이나, 조국 수석이 <죽창가>를 페북에 공유한 것을 두고 ‘전략 부재’라고 성토한 김종대 의원 그리고 김근식 교수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일시적으로 한국 기업의 어려움이 예상된다. 그러나 한 가지 명백한 사실은 경제 논리로 역사의 오류를 덮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나치 청산에 집요함을 보이는 프랑스와 독일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우리의 제국주의 청산에는 소극적인 것일까? 사실 프랑스와 독일도 정작 자기들의 제국주의 청산에는 일언반구 말이 없는 것은 일본과 다르지 않다.

책임은 문재인 정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1차 원인은 1965년의 박정희에게 있다. 그는 3억 달러를 챙기고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을 면책해 주었다. 그리고 근래에는 박정희의 자식 박근혜와 박근혜의 심복 양승태가 합작하여 대법원 판결을 대책 없이 지체시켰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은 강제 징용된 한인들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 작년 12월의 일이다.

이 판결은 내가 보기에 천하의 명판결에 속한다. 한국 법원은 1965년의 한일협정 때의 배상에 “식민 청산의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국가끼리의 배상과 개인에 대한 배상은 다르다”는 논리로 일본 기업 측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2차 원인은 역시 제국주의 국가인 영국과 미국에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일본과 동맹을 맺은 바 있는 영국, 일본을 추동하여 조선을 침탈케 한 미국은 대한민국의 2차대전 연합국 지위 인정에 반대했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1965년 고작 3억 달러의 ‘독립 축하금’에 만족해야 했다.

파시트트 박정희는 배상은 국가가 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개인 피해자를 철저히 무시해 버렸다. 반면 전승국 지위를 인정 받은 필리핀은 1942년부터 불과 3년 동안 일본에 점령당했지만 5억 5천만 달러를 배상받을 수 있었다.

이번 조치로 한국 경제가 잠시 어려워질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은 극복해야 할 일이다. 국가 전략에는 장기적 안목도 반드시 필요하다. 친일 청산은 말로만 되는 게 아니다. 일정한 희생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뒤에는 조선과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있다. 일본에 일절 양보나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국내 일본 기업에 압류를 걸어 개인 배상을 기어이 관철시켜야 한다. 이렇게 될 경우 동남아시아와 중국이 뒤따를 것이다. 일본이 조선과 수교할 때에도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치러야 할 것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주변국으로 밀려나고 있는 일본에는 후쿠시마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될 것이다. 일본을 한 번은 굴복시킬 수 있어야 진정으로 친일 청산을 이룰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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