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나의 첫 '나홀로 독일기차 자유여행' 후기

지난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혼자서 독일을 여행했다. 베를린에서 바이마르Weimar를 거쳐 남부 독일의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헌Garmisch- Partenkirchen까지 갔다가 오스트리아로 넘어가서 인스브루크 인근의 슈투바이계곡Stubaital의 노이슈티프Neustift란 조그만 산골마을을 들러 뮌헨으로 나와서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이 일정 동안 기차나 버스를 이용했는데, 독일 기차여행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특히 지역 열차가 그랬다. 여행 중 틈틈이 써둔 쪽 글을 바탕으로 후기를 남겨본다. 독일에서 기차여행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사진=장시정 베를린 중앙역에서 연발하는 고속열차ICE. 전광판에서 "타지 마시오Nicht einsteigen"란 안내를 볼 수 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연발하는 고속열차ICE. 전광판에서 "타지 마시오Nicht einsteigen"란 안내를 볼 수 있다.(사진=장시정 대표)

문제는 베를린에서 바이마르로 갈 때부터 생겼다. 베를린에서 2:30발 고속열차ICE를 타고 에어푸르트Erfurt로 가서 지역열차로 갈아타고 목적지인 바이마르로 가는 노정인데 베를린발 고속열차가 통째로 취소되었다. 운행 취소 소식을 들은 것은 이미 기차에 올라 출발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차내 안내방송Durchsage이 나왔는데 이 기차가 통과할 역에서 비상사태가 발생하여 운행을 취소하니 승객들이 모두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모든 승객들이 내렸고 나도 역사 내 서비스센터Reisezentrum로 올라가 긴 줄을 기다린 끝에 최종 목적지를 말하고 노선이 변경된 4시경 출발하는 차표를 받을 수 있었다.

내가 탄 이 ICE는 에어푸르트 도착 직전의 직선 구간에서 시속 300km를 넘겨 달렸다. 연착으로 고생은 하지만 두 시간 넘게 연착하면 기차 삯의 25%를 돌려준다. 나도 서비스센터에서 연착 시 신고하는 서식을 받아서 내용을 기입한 후 우체통에 넣고 왔다. [기차가 통째로 운행 취소되는 경우는 역사 내 서비스센터를 찾아가 새 차표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때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게 되니까 가급적 서둘러 서비스센터를 찾도록 한다. 플랫폼에서 우왕좌왕 말고 바로 가야만 덜 기다린다.]

이번에는 바이마르Weimar 일정을 마치고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헌으로 갈 때였다. 차표는 하루 전날 역에 가서 샀는데 특별 할인권Super Sparpreis이 있다 해서 1등권을 87.90유로에 샀다. 다음날 바이마르에서 에어푸르트까지는 지역열차Regionalbahn를 탔다. 고속열차ICE가 지나가는 대도시로부터 인근의 소도시로는 대개 2~5량 정도의 소규모 지역열차들이 운행된다. 기차 안에서 검표원이 아침 인사를 하면서 표를 검사했고, 이 여자 검표원은 화장실 문까지 열어보는 치밀함을 보였다. 빈 좌석이 많은데도 내가 서있으니 앉아가라고 권한다. 내가 건강 증진을 위해서 서서 간다니 약간은 감탄하는 눈치다. 난 잔뜩 먹은 아침을 소화하기 위해 까치발까지 하고 서 있었다. [차표 구입은 철도카드Bahnkarte를 사서 해당 차표를 구입하면 싸게 살수 있지만 짧은 기간 중 철도 이용 시에는 철도카드 없이 그때그때 출시되는 할인권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차표는 보통 인터넷으로 독일연방철도DB/ 오스트리아연방철도OeBB 홈피에 들어가서 사지만 기입 사항이 번거롭고 외국 주소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도 있어 이런 경우는 조금 여유 있게 미리 역에 가서 서비스센터의 무인 판매기나 역무원을 통해 사면 된다. 무인 판매기는 독어와 영어로 사용 가능하다. 보통 20유로 이하 지폐만 가능하다. 인스브루크 역내 자동판매기에서 보니 50유로나 100유로 고액권은 사용할 수 없었다. 독일/오스트리아에서는 100유로 이하의 소액은 대부분 현찰로 통용되니 현찰 지참은 필수적이다. 또한 DB나 OeBB의 어플을 다운로드해 기차 여행 시 늘 보고 다니면 연발착 등의 변경된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사진 = 장시정 에어푸르트와 바이마르 구간을 운행하는 지역열차
에어푸르트와 바이마르 구간을 운행하는 지역열차.(사진=장시정 대표)

에어푸르트역에 도착해서 뮌헨행 고속열차를 타려고 플랫폼을 찾아가는데 30분 정도 연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아니 엊그제 베를린에서 올 때 아예 예정 열차가 취소되어 서비스센터에서 그 긴 줄을 기다려 다른 기차로 바꿔 타야 했는데 또 연착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기차가 통째로 취소되진 않고 30분 정도 연착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8:31 도착 예정이던 기차가 9:00가 되어 도착했다. 어쨌든 이제 잘못하면 뮌헨에서 가르미슈로 연결되는 기차도 놓칠 판이다. 정확함의 대명사이던 독일연방철도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대체 이유가 뭘까? 독일연방철도는 2015년 한 해 동안 1억 7463만 분을 연착해서 매일 평균 7974시간을 연착했다. 정확함의 대명사로 신뢰받던 철도가 이제는 믿을 수 없는 교통수단으로 전락했다. 사람들은 연방철도가 민영화된 이후로 부실해졌다 한다. [민영화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한다]​

서울 지하철에서 우리말 외에도 중국어, 일본어로 안내방송을 하는데, 내 생각에는 과공이고 피곤할 따름이다. 차라리 모든 외국인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추가 안내해 주면 좋겠다. 사실 지하철 차량 내에서 알파벳으로 정거장 이름이 표시되어 있어 알파벳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큰 어려움 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다. 안 그래도 소음 공해가 적지 않은데 중국 말과 일본 말의 판에 박힌 안내 방송까지 듣노라면 슬그머니 짜증이 난다. 혹시 베이징이나 도쿄와 자매결연이 되어 있고 상호주의로 그럴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베이징에서나 도쿄 지하철에서 한국말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뮌헨 슈넬반은 특별한 경우만 영어 안내를 추가한다. 뮌헨 중앙역에서 슈넬반S- Bahn을 탔는데 공항역에 도착하기 전 중간쯤에서 차량이 분리되어 뒤쪽 차량만이 공항으로 가니 유의하라는 안내 방송이었다. 역에서나 기차에서는 대개는 독일 말로 안내방송을 하고 선별적으로 영어 안내를 추가하는데 특히 급하게 플랫폼이 변경되거나 할 때는 독일어로만 안내하는 경우가 많다. 가방 들고뛰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안내방송을 못 들으면 기차를 놓치기 십상이다. 뮌헨에서 가르미슈로 갈 때 플랫폼은 29번이었는데 위치가 역의 제일 끝 쪽 일부에 치우쳐 있었다. 여기서 지역열차가 출발한다. 플랫폼 배열은 1,2.3~ 이렇게 순차적으로 나가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특히 숫자가 15 정도를 넘어가면 역사 내에서 플랫폼 안내 표시를 보고 잘 찾아가야 한다. 플랫폼은 선로란 의미의 Gleis 약자인 Gl.로 표시된다.

사진 = 장시정뮌헨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인스브루크까지 운행하는 Werdenfels 지역열차
뮌헨에서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인스브루크까지 운행하는 Werdenfels 지역열차(사진=장시정 대표)

독일의 지하철이나 슈넬반의 각 차량- '바공Wagon'이라 한다- 들은 운행 중 분리되어 최종 목적지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뮌헨이나 함부르크 시내에서 공항을 갈 때도 그렇다. 공항까지 가는 승객이 많지 않은데 굳이 전 차량을 공항까지 운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철도도 마찬가지다. 뮌헨에서 가르미슈로 가는 기차를 탔는데 출발 후 방송을 들어보니 각 바공에 따라 목적지가 3군데나 되었다. 내가 탄 바공은 가르미슈로 가는 게 아니어서 중간 정차한 역에서 잠시 내려서 가르미슈로 가는 바공으로 바꿔타야 했다. 이런 경우 시골역은 정차 시간이 짧아 신속히 움직여서 목적지로 가는 바공으로 가야 한다. 며칠 후 가르미슈에서 인스브루크로 가는데도 열차가 들어오기 직전 안내방송이 있었다. 1번 플랫폼  중에서 A와 B 구역(Abschnitt)에서 승차하라는 안내인데 기차가 들어와서 보니 C, D 구역에 서있는 바공에는 "타지 마시오Nicht einsteigen"란 전광판 안내가 붙어 있었다. 이 바공들은 가르미슈 역부터는 더 이상 운행치 않고 떨어져 나가는 바공들이다. [같은 기차라도 차량Wagon'을 구분해서 타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해야 한다]

독일연방철도는 철도버스도 운행한다. 가르미슈에 묵으면서 린더호프Linderhof 성과 노이슈반슈타인Neuschwanstein 성을 다녀왔는데, 가르미슈에서는 린더호프와 노이슈반슈타인 이 두 곳으로 철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철도 연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연방철도에서 철도버스를 운행한다. 이 운행 시간표도 연방철도 홈피나 자체 홈피인 rvo-bus. de에 들어가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차표는 버스에 타면서 기사에게 사면 된다. 보통은 '일일 차표Tagesticket'를 끊으면 경제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가르미슈에서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갔다 오는데 10.40유로를 주고 산 일일 차표를 사용했고 중간에 바로크 양식의 순례자 성당으로 유명한 비스성당Wieskirche도 둘러 볼 수 있었다.

차표는 항상 잘 소지하여 검표원에게 바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전자 차표는 주로 핸드폰에 있으니 못 찾는 경우는 없겠지만 종이 티켓은 가방 어디에 깊숙이 넣어두고 못 찾는 일이 생긴다. 내 친구가 부부로 독일 여행을 하면서 기차를 탔는데 검표원이 와서 차표를 보여달라는데 부인은 바로 찾아서 보여 주었지만 이 친구는 차표를 찾지 못했다 한다. 계속 차표를 찾으며 더 기다려달라 하자 검표원은 안된다며 경찰을 부르겠다 했고 결국 경찰이 와서야 온 가방을 다 뒤져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한다. 사실 차표를 산 것은 맞지만 검표원에게  보여 줄 수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독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진=장시정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헌 역 앞 버스 정차장- 여기서 린더호프 성과 노이슈반슈타인 성(퓌센 방향)으로 가는 철도버스를 탄다
가르미슈- 파르텐키르헌 역 앞 버스 정차장- 여기서 린더호프 성과 노이슈반슈타인 성(퓌센 방향)으로 가는 철도버스를 탄다.(사진=장시정 대표)

독일에서는 고속철의 2등석에 탄 승객이 1등석 승객용 신문을 가져가는 것이 차장에게 목격되어 결국 기차에서 강제 하차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신문은 1등석 손님에게만 제공된다. 한국에서라면 아마도 그 상황에서 승객을 하차시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독일 병정'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렇게 원칙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독일 병정’이라고 냉소적으로 여기는 것이 맞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국민 각자가 '독일 병정'이기에 나라가 잘 돌아간다. 고위 정책 입안자가 아니라면 쓸데없는 융통성은 필요 없을 거다. 기차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괜한 잔소리를 하게 된 것 같다.

후기를 쓰면서 차표를 보니 그 중 인스브루크에서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헌으로 가는 차표에 "Ihre CO2 - Ersparnis: 9.0kg"이란 글씨가 보였다. "당신의 탄소 배출 절약이 9.0kg"란 뜻인데, 해당 구간을 자가용을 타지 않고 공공교통편인 기차를 이용해서 9.0kg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었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번 독일 기차여행으로 절약된 탄소 배출량이 어림잡아 50kg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나의 첫 '나홀로 자유여행'의 추가적 의미를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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