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민용 ‘우리 말글 산책’(22)]

[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미 지나갔습니다만,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고마움을, 부모는 자식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달이지요.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정이 깊고, 이웃 간의 예절도 무척 소중히 여기는 민족입니다. 그러다 보니 세계 어느 나라 말보다 호칭어와 존대어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요. 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호칭어와 존대어를 잘못 쓰는 것을 종종 듣게 됩니다. ‘아버님’도 그런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국어사전들은 ‘아버님’을 “아버지의 높임말”로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아무 때나 ‘아버지’와 ‘아버님’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습니다.

물론 내가 내 아버지께 쓸 때는 ‘아버지’를 쓰든 ‘아버님’을 쓰든 상관이 없습니다. 누구는 “남의 아버지나 돌아가신 자신의 아버지에게만 ‘아버님’을 쓴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내 아버지께 “아버님, 진지 드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나지 않고, 화법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그러나 ‘아버님’을 써서는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내 아버지를 남에게 얘기하면서 “우리 아버님은…”이라고 높이는 경우이지요.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남에게 자기 가족을 높여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 아들을 ‘가돈(家豚)’이나 ‘돈아(豚兒)’ 등 돼지에 비유했겠습니까.

그런 예법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는 누구보다 귀하고 높으신 분이지만, 남에게 ‘아버님’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남에게 내 부모를 얘기할 때는 ‘아버지’와 ‘어머니’라고 해야지, ‘아버님’과 ‘어머님’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와 관련해 흔히 잘못 쓰는 말에는 ‘선친’도 있습니다. TV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간혹 “선친께서는 참 훌륭하셨지. 자네도 아버님의 유지를 잘 받들어야 하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런 장면에서의 ‘선친’을 잘못 써도 한참 잘못 쓴 말입니다. 선친은 “자신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가리키는 말이거든요.

그렇다면 “남의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르는 말은 뭘까요? 그것은 바로 ‘선대인’입니다. 선대인은 다른 말로 ‘선고장’이나 ‘선장’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남의 살아 계신 아버지는 ‘춘부장’, 살아 계신 어머니는 ‘자당’이라고 하지요.

이 밖에 나의 살아 계신 아버지를 뜻하는 말에는 ‘가친’ ‘엄부’ ‘가대인’ 등이 있고, 살아 계신 어머니를 뜻하는 말로는 ‘자친’ ‘가모’ 등이 있습니다.

나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선비’ 또는 ‘망모’라 하고, 남의 돌아가신 어머니는 ‘선대부인’이라 부릅니다.

요즘 들어 거의 쓰지 않는 한자말이라 조금 고루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알아두면 살아가면서 도움이 될 때가 있을 겁니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고, 우리말의 70%를 차지하는 한자말은 높임을 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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