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대한항공의 경영 승계에 빨간 불이 켜졌다 한다. 아시아나항공도 경영 부실로 위기를 맞고 있다. 나는 함부르크에서 2016년 가을부터 시작된 한진해운의 파산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 국적 해운사나 항공사의 국제 물류 경쟁력 보전은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진해운의 상실은 그저 1개 기업의 상실이 아니었다. 그것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유해한지는 "세계 6대 해운 강국이었던 한국의 위상은 이제 백 년이 지나도 회복하기 어렵게 되었다"라는 한 물류 전문가의 말이 그것을 말해 준다. 파산한 이유는 분명하지만 해운시장의 특성상 떠나고 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민간 항공력은 세계적이다. 2017년 세계은행의 통계를 보니 승객 운송 면에서 세계 12위, 화물 항공은 세계 5위다. 2017년에 세계의 총 39억 8천만 명의 승객 중 우리 항공사는 8천4백만 명을 운송해 승객 운송 분담률이 2.1%였고, 화물 운송은 총 2136억 톤의 세계 항공 물동량 중 110억 톤을 수송해서 5.1%의 화물 수송 분담률을 보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경제력 GDP과 항공 운송력을 근거로 산출하는 세계민간항공기구 ICAO의 기여금 납부 순위가 우리 경제력보다 훨씬 큰 10위안에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대한항공이 당장 경영 승계 문제에 직면해 있고 여기에 아시아나항공까지 경영 부실로 위기에 처해있다. 크게 보면 수년 전 파산했던 한진해운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함부르크는 중세 한자동맹 시절부터 해상무역을 통해 상업적 번영을 구가해온 도시 국가다. 그래서 함부르크는 지금도 독일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부자 도시다. 인구가 180만 명으로 베를린의 반밖에 되지 않지만 베를린과 총 국민소득은 비슷하다. 함부르크 시민들이 베를린 시민들보다 평균적으로 2배는 잘 산다는 말이다. 백만장자가 5만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 부자들은 대부분 무역/해운업자들이다.

그런데 지난 수년간 함부르크의 해운업자들은 세계 해운업의 불황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선박을 구입해올 때 돈을 빌려주었던 은행들도 덩달아 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당시 해운업 불황은 아직 사용 연한이 많이 남아 있는 멀쩡한 선박들까지 해체하여 고물로 팔아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알스터Alster 호수에서 바라본 함부르크
알스터Alster 호수에서 바라본 함부르크

함부르크에는 2016년 10월 철수 전까지 한진해운 유럽 본부가 소재해 있었다. 해운업계의 불황으로 위기가 닥쳐오자 이곳 함부르크의 하팍‑로이드 Hapag-Lioyd 사에도 비상이 걸렸다. 하팍‑로이드는 2014년 내가 함부르크에 막 부임하자마자 남미 해운업체인 CSAV 사와의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렸다. 해운업이야말로 규모의 경제가 매우 중요한 업종이라 한다. 하팍‑로이드는 해운업이 한창 호황일 때 비싸게 계약했던 용선료 인하 협상에도 공격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은 위기관리에 실패했고 불운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른 아침 힘찬 뱃고동을 울리며 엘베 강을 거슬러 올라오던 한진 컨테이너선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현대상선도 다른 이유이기는 하지만 2017년 말 내가 함부르크를 떠날 때까지 함부르크 항 출입을 멈추었다. 당시 느꼈던 진한 아쉬움은 지금도 남아 있다.

나의 오랜 해외 근무에서 느낀 것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 경쟁력과 관련하여 지역학적 측면에서 기초체력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다. 지역 사정에도 어둡고 현지 언어를 구사하는 인력 풀이 빈약하다. 결국 이런 것도 분기별 성과에 집착하는 우리 기업 문화와 관계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독일은 영자 신문 하나 없는 나라다. 독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니 사람을 만나서는 영어를 한다 하더라도 신문, 방송과 같은 미디어는 물론 거의 모든 행사나 세미나, 계약 문서 같은 것도 현지어인 독일어로 이루어진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영어만 믿고 사업을 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현지어 구사는 독일 당국이 노동비자를 주는 조건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만난 금융학자인 브레멘 대학의 히켈 Rudolf Hickel 교수는 자신이 정책 결정자라면 한진해운을 구제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여기에는 당사자들이 먼저 돈을 내놓는 자구책인 '베일-인 bail-in'이 은행의 '베일- 아웃 bail-out'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이 따른다고 했다. 세계적인 해운업 불황은 함부르크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국립은행인 HSH 북부은행Nordbank과 브레멘의 국립은행인 Nord LB도 어려움에 빠뜨렸다. 부실 선박대출과 해운업에 과도하게 편중된 포트폴리오 때문이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제 금융 문제는 유럽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고민거리다. 함부르크 정부와 의회는 경쟁력을 잃은 기업에 대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오랜 기간 동안 거부해왔다 한다. 한때 부를 가져왔던 양조, 의류, 제당 산업에 대해서도 그렇게 했고 그래서 이들 산업은 시대의 조류에 따라 스러져 갔다. 함부르크는 오랜 상업 전통으로 민간 기업에 대한 국가 지원이 기본적으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실천해왔던 것이다. 지금은 더욱이 유럽연합 EU의 경쟁법으로 정부 차원의 직접 개입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함부르크는 정부 소유의 공기업의 부실기업 지분 인수 등의 방법으로 자신들의 경제에 필수적인 기업들을 간접 지원한다. 하팍-로이드사에 대한 지원이 그것이다. 내가 만난 첸쳐 Peter Tschentscher 함부르크 재무장관의 말이다.

함부르크의 부실기업에 대한 지원은 공기업을 통해 조달한다. 이 공기업들은 부채를 만들어도 되는데, 단 이 부채를 스스로 상환할 능력이 있을 때만 외부 기업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 다른 유럽 나라들에는 이런 것이 없다. 함부르크는 하팍‑로이드 사가 외국에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하팍‑로이드 사의 TUI 지분을 인수했다. 당시 지원의 근거는 "산업입지 Standort"의 강화였다. 함부르크 공기업인 함부르크 자산관리공사 HGV를 포함한 컨소시엄을 설립해서 하팍‑로이드에 투자하는, 개인 소유주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16.12.19].

이제 우리는 국적 항공사들은 그 사령탑을 모두 교체하게 된다.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이 타계했고, 아시아나항공은 경영 부실로 박삼구 회장의 퇴진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물론 한진해운처럼 공중분해되거나 외국에 팔려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수익성 낮은 노선의 정리, 인력, 조직의 슬림화 등으로 자구 노력을 인정받아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한다. 전환기에 처한 국적 항공사들이 지속적인 경쟁력 보전으로 한국의 국제 민간 항공력의 위상이 견지되기 바란다. 그래서 국제민간항공기구에 계속 우리의 경제력을 넘어서는 기여금을 내더라도 말이다. 나의 36년 외교관 생활에도 날개를 달아준 우리 국적 항공사들이여, 영원하라~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에서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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