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장시정 독일모델연구소 대표

요즘 재계의 화두는 단연 상속세인 것 같다. 내가 작년 가을 여의도에서 "한국 기업의 성장전략, 독일에서 배운다"란 제목으로 상장회사협의회 조찬 강연을 할 때도 독일의 상속세 제도를 꼭 다루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금 대한항공은 조양호 회장의 타계로 당장 2000억 원에 달하는 상속세 납부가 발등의 불로 떨어졌다 한다. 이런 사정은 상속에 직면한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인지 기업을 상속하기보다는 매각하거나 해외로 이전한다는 뉴스를 적잖이 접하곤 한다.

일례로 조선일보 4.23. 자 사설 중 일부를 소개해 본다.

"지난해 한 M&A 거래소에 매물로 나온 기업 730곳 중 118곳이 '상속세 때문'이라고 했다 한다. 상속세를 내고 회사가 망하거나 쪼그라들 바에야 차라리 기업을 처분해 현금이라도 챙기겠다는 것이다. 재계에선 상속세 부담 때문에 매물로 나온 기업이 지난해 300~400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한때 세계 1위, 국내 1위를 자랑하던 중소·중견기업들마저 상속세 부담을 못 이겨 사모펀드 등에 내다 파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분명 우리 기업 발전, 더 나아가 우리 경제에 역행하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국제적인 추세를 보자면 많은 나라들이 상속세율을 낮추거나 아예 폐지하는 쪽으로 가고 있고, '리쇼어링reshoring' 정책이나, '산업입지 Standort' 정책(독일)으로 해외로 나간 자국 기업들을 다시 불러들이는데 적극적이다. 우리만 '부의 대물림'이라는 편견에 갇혀 거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상속세 국제비교 [출처: theedgemarkets.com]   
상속세 국제비교 [출처: theedgemarkets.com]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상속세가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한다.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이 적용되면 세율은 최고 65%로까지 올라간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일제 시대 때 일본의 상속세 제도를 그대로 받은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일본보다도 실제 최고 세율이 높다. 상속세가 아니라 아예 사망세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실제로 상속세를 inheritance tax 대신 death tax로 쓰기도 한다.

전술한 대로 국제적으로는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인하하는 추세다. 사실 기업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인세를 보면, "바닥으로의 질주 race to the bottom"란 말이 있을 정도로 세계 각국이 외국 기업 유치와 투자 활성화를 위하여 법인세 인하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조차도 법인세를 인하하고 있고 상속세는 아예 폐지하고 있다. OECD 15개국을 포함, 인도, 러시아, 중국은 상속세를 폐지했거나 없는 나라들이다. 호주에 부자 이민이 많은 것도 상속세가 없기 때문이라 한다. 요컨대 많은 나라들이 자국 기업은 국내에 붙들어 놓고 외국기업은 불러들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아무리 돈이 많은 기업이라도 상속이 일어날 때 그 상속 재산의 반 이상을 떼어낸다면 과연 정상적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겠는가?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 세금을 내는데, 죽게 되어 상속할 때 또 세금을 내야 한다면 이중과세이고 징벌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명분상의 이론 제기는 65%라는 최고 세율에 맞닥뜨리게 되면 오히려 사치스럽기조차 하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웬만한 덩치를 가진 기업들이 상속 문제에 사활을 거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하겠다.

과연 정상적으로 상속세를 내는 기업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대기업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다수 기업들이 창업 2-3세대 기업들이다. 적어도 재벌기업 중 창업 1세대 기업은 내가 아는한 없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무지막지한 상속세를 내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하는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재벌 기업들이 몸집을 불렸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경제 발전을 한 탓도 있겠고 또 경영의 귀재들이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들이 상속 과정에서 이 고율의 세금을 그대로 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주장은 제대로 상속세를 내지 않고 우회한 기업들이 나쁘다기보다는 비현실적인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상속 재산은 기본적으로 사유 재산이다. 법인세를 낮추고 공제 제도를 신축적으로 운영하여 기업들이 상속 후에도 지속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수 확보 면에서도 유리할 것이고 국가 경제의 백년대계를 위해서도 바람직할 것이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자본이득세로 대체하자는 성균관대학교 최준선교수의 주장에 한 표를 던진다.

독일연방상원 Bundesrat 앞에서 상속세 개혁을 주장하는 사민당 SPD 과 녹색당 Gruene [사진출처, hiveminer.com]
독일연방상원 Bundesrat 앞에서 상속세 개혁을 주장하는 사민당 SPD 과 녹색당 Gruene [사진출처, hiveminer.com]

우리도 상속세 공제 제도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활용도를 보면 유명무실하다. 상속세 문제가 연방헌법재판소에 3번이나 제소된 독일과 비교해 보자.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연 매출 3천억원 이하의 기업에만 해당되지만 독일은 기업의 크기에 따른 아무런 제한이 없다. 즉 우리나라는 대기업은 물론 약 500개에 달하는 연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중견기업도 이 공제 제도를 활용할 수 없다. 그리고 최대 공제 한도가 500억 원이다. 여기에 7년간 업종 변경 금지나 고용유지 등 사후 조건이 독일보다 훨씬 엄격하다.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공제 제도 활용도를 보면, 2015년에는 독일이 2만 4천 건인데 비하여 우리나라는 67건에 그쳤고 2017년에는 독일의 9260건 대비, 우리나라는 91건에 그쳤다. 그러니 우리가 상속세 공제 제도를 운용한다고 하기에는 낮 간지러울 정도다.

내가 만난 지몬 Hermann Simon 회장은 상속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그는 히든챔피언의 개념을 만든 사람이다.

"높은 상속세는 중소기업의 창달에 유해하다. 자본이 제대로 형성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대표적 사례다. 높은 상속세를 물리는 프랑스에서 미텔슈탄트나 히든챔피언은 제대로 클 수 없었다. 차라리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처럼 아예 상속세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본다. 상속세는 부의 분배를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독일에서 상속세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정도다." [2015.12.8.]

상속세에 관한 상반된 입장은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마찬가지다. 상속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일반 국민과의 형평성을 강조하고, 이것을 반대하는 쪽은 높은 상속세가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상속 세제는 임금의 총합이나 실제 생산활동에 사용되는 영업자산이 일정 한도를 넘는 경우 상속재산의 85%까지 면세가 되고 심지어는 특별한 경우 100% 면세를 부여한다. 독일 경제의 중추인 가족기업, 미텔슈탄트 Mittelstand의 대를 이은 경쟁력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2016.6월 독일가족기업협회장과 메르켈 총리, "상속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사진출처, DPA]
2016.6월 독일가족기업협회장과 메르켈 총리, "상속세 문제는 우리 사회의 리트머스시험지다" [사진출처, DPA]

2014년 12월 연방헌법재판소는 가족기업에 대한 상속세의 감면 범위나 정도가 해당 기업에 지나치게 혜택을 주어 형평에 어긋난다는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16. 6월 '상속 및 증여세법'이 개정되었는데, 이 개정안은 더 복잡해졌을 뿐 가족기업의 특권적 상속제의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당초 개정 필요성을 제기한 헌법소원의 취지를 충분히 반영치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고, 후일 추가적인 헌법 소원의 여지가 있다고도 하지만 독일 미텔슈탄트의 대를 이은 기업 경쟁력 유지는 그만큼 독일 국가 경제에 사활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나는 2015년 5월 함부르크 경제이사회에서 주관한 상속세 공제 개선에 관한 공청회에 가보았는데, 연사로 나온 KPMG의 그루베 Frank Grube 세무사는 헌재 판결에서 상속세가 독일 기본법상 사회국가 원칙이나 사회적 정의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소수의견이었다는 점과 상속세가 전체 국가 세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안 된다는 점을 들어 가족기업에 허용되고 있는 기존의 면세 규정이 최대한 존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어나면서부터 금수저가 되는 부의 대물림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별로 유쾌하지는 않겠지만, 인과응보 사상이나 불교철학에서의 카르마 Karma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인류의 역사는 물론, 한 가문이나 개인의 역사도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금수저가 되는 사람들, 그들 나름대로 선대의 카르마가 있지 않았겠나.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에서 일부 인용

저작권자 © 자연치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