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인용을 통한 글쓰기 : 창의력의 빈곤과 표절의 문제]
고려대 윤성학 교수 특별기고

고려대 윤성학 교수
고려대 윤성학 교수

최근 베스트셀러라고 분류되는 인문사회과학 책들 가운데 독창성은 별로 없고 주로 간접인용으로 범벅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글쓰기 내용들을 짜깁기한 책도 있고 심리학자나 경제학자들의 논문과 저서들을 쉽게 풀어서 자기 책인 양 출판하는 사례를 많이 봅니다. 이들 책의 장점은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져 있다는 겁니다. 독자가 고등학교 정도 나온 지적 수준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나름대로 의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상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교양 과정의 독서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간접인용으로 범벅된 책들이 한 나라의 독서계를 이끌어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교수들이나 지식인들이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독서 환경과 출판 풍토를 비판해야 하는데, 이러한 목소리는 찾기 힘듭니다. 우리나라는 논문의 창의력과 표절에 관해서는 유달리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간접인용으로 뒤덮인 출판 풍토에 대해서는 생각 외로 관대합니다. 아니 무신경합니다.

보통 인용법에는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겨 놓는 직접인용과 다른 사람의 말을 고쳐서 옮겨놓는 간접인용이 있습니다. 직접인용은 보통 원문의 표현만이 적당하다고 판단될 때 따옴표(“ ”)를 사용하고 각주와 참고문헌을 통해 출처를 정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논문에서 인용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으면 표절로 걸리게 됩니다.

간접인용은 다른 사람의 논문이나 저서를 자기 나름대로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간접인용으로 유명한 책들은 복잡한 원전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쉬운 문체, 적절한 비유, 단순한 논리구조로 풀어쓰고 있습니다. 간접인용의 전문가들은 정확한 출처를 밝히기보다 요약 발췌를 선호하며 자신들의 언어로 재해석합니다. 대학생들의 리포트가 간접인용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지금 우리 출판 수준이 바로 대학생 리포트 수준입니다. 창의력은 없고 원전과 논문을 짜깁기하여 간접인용으로 채워 넣은 책들이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간접인용은 잘 사용하면 세련되고 유려한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으면 표절입니다. 간접인용으로 문장을 한참 이끌어나가다보면 어디가 빌려온 주장인지 어디가 자기의 주장인지 구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논문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독창성이 부정되고 표절로 의심받습니다. 송유근 군의 최근 논문 논란이 바로 이러한 경우이지요. 지금 유행하는 많은 교양도서들이 출처도 달지 않고 책 전부를 간접인용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례가 많습니다. 대중적인 교양을 위해 이러한 글쓰기를 꼭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각광받는 것은 그 나라 지적 풍토의 수준을 보여줍니다.

우리 학계는 간접인용에 엄격합니다. 최근 학계는 비록 출처를 표시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글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한계는 1개 문장 정도, 그것도 출처 표시를 하는 경우까지로 보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을 논문을 통째 빌려 쓰면서도 출처 표시도 하지 않고 자신의 저서인 양 출판하고 그것이 또한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는 사회에서 독창적인 논문과 저서가 나오기는 힘듭니다. 출판이라는 자유시장 환경에서 이러한 책을 출판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엄격하게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제 나와야 할 때입니다. 논문만 중시하는 학계의 풍토도 바뀌어야 합니다.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논문, 논문을 엮어서 교양서적을 만드는 지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합니다.

[윤성학 교수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연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러시아 경제를 전공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러시아 석유산업의 구조조정 연구”다. 대우경제연구소, UzDaewoo Bank, 러시아 IMEMO 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소, 지금은 고려대학고 러시아CIS 연구소에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남북러 가스관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중앙아시아 진출 외국기업의 사회적공헌활동에 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비즈니스”, “러시아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현대 중앙아시아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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