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총알받이로 내보낸다고 개거품 물었던 집단입니다” “가끔씩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목에서 자꾸 개거품이 나와요” “비평을 빙자해서 개거품 물지 마세요” 따위 예문에서 보듯이 ‘개거품’은 꽤 널리 쓰이는 말입니다.

‘개판’ ‘개떡’ ‘개살구’ 등처럼 상스럽거나 나쁜 것을 뜻하는 말 중에 ‘개’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보니, ‘개거품’을 바른말로 아는 사람이 많은 듯합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일컫는 말은 ‘게거품’이 바른말입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우리가 즐겨 먹는 게는 위험에 처하거나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입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뿜습니다. 사람도 흥분하면 입가에 침이 잔뜩 고이지요. 그래서 생겨난 말이 ‘게거품(을) 물다’입니다.

여기서 문득 ‘개가 입가에 잔뜩 침을 물고 으르렁거릴 때는 개거품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개거품’은 쓸 수 없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게거품’으로 명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만약 ‘개거품’을 인정하면 ‘사자거품’ ‘말거품’ ‘소거품’이라는 말도 가능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입에 문 것은 ‘사람거품’이 되겠지요.

다만 “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는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개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 써서는 안 됩니다. 이때도 개가 문 것은 ‘게거품’입니다.

참, ‘게’와 관련해 잘못 쓰기 쉬운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뭐냐고요? 바로 ‘게껍질’입니다.

“껍질까지 먹는 소프트 크랩(게)에 커리를 끼얹은 것이다”(한국경제) “게껍질과 쌀겨 등을 이용한 미생물 제제를 사용해 고추를 재배한 결과다”(조선일보) 등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말을 꽤 안다는 기자들도 ‘게껍질’을 쓰는 일이 참 많습니다.

또 게장을 좋아하는 분들은 “게껍질에 비벼 먹는 밥은 정말 꿀맛이다”라는 표현을 자주 씁니다.

그러나 게의 등짝을 이르는 말에는 절대 ‘껍질’을 갖다 붙일 수 없습니다.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를 뜻하는 말로, 사과껍질이나 귤껍질 등으로나 쓸 수 있거든요. 조개의 겉, 달걀의 겉 등처럼 딱딱한 것에는 ‘껍질’이 아니라 ‘껍데기’를 써야 합니다.

그러면 ‘게의 등짝’은 ‘게껍질’이 아니라 ‘게껍데기’가 맞을까요? 물론 의미상으로는 그렇게 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의 등짝”을 가리키는 말로는 ‘게딱지’를 쓰는 것이 백 번 옳습니다.

여기서 ‘딱지’는 “게나 거북 따위의 몸을 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게딱지’가 “게의 등딱지”로 풀이돼 있지요.

이 ‘게딱지’는 “집이 작고 허술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도 쓰입니다. 따라서 “내가 이 개딱지만한 땅덩이에서 너 하나 못 찾아낼 것 같았냐!” 따위 표현에서 보이는 ‘개딱지만한’은 ‘게딱지만한’을 잘못 쓴 것입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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