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교수 글쓰기 특강(10)] 글 속의 글로서의 단락

(앞 연재에 이어서 계속)

2) 글 속의 글로서의 단락

위 글의 분석에서 우리는 몇 가지 주요점을 간추려 볼 수가 있다.

첫째로, 도입 단락과 같은 특수 단락 이외의 단락 곧 일반 단락은 소주제(문)를 하나씩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글 전체 주제의 일부가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소주제는 글의 전체 주제에서 갈라져 나온 하위 개념이지만 각 단락 안에서는 핵심의 구실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각 단락의 핵심 사상을 "소주제(topic)"라 하여 "주제(theme)"와 구분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주제는 전체 주제와의 관련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그것이 독립적으로 나타나는 토막글일 때에는 소주제라 하지 않고 주제라 부른다.

둘째로, 한 소주제는 한 단락의 형식 안에서 충분히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단락의 형식적 표지인 "들여쓰기"는 한 소주제문을 다루는 단락의 경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한 소주제문을 다루는 내용이 두 개나 세 개의 형식으로 분산되어 그 경계를 넘나들어서는 안 된다. 만일 단락 (3)을 다음과 같이 두 단락의 형식으로 나누어 놓고 보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보기 4.1]의 단락 (3)

(가) 그런데 이날 아침 10시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쉬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났다. 외판원인가 싶어 나가지 않았더니 조심스럽게 초인종이 또 울렸다.

(나) 뜻밖에 7,8세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가 빨개진 얼굴로 "우유예요"라고 말하며 서있지 않은가. "아빠가 병원에서 아줌마 댁에 가져다 드리랬어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 것이었다.

앞의 (가) 부분은 아무 소주제문이 없이 두 문장이 연결되어 있을 뿐이므로 제대로 된 단락이라 할 수가 없다. 그 뒤의 (나) 부분은 새로운 단락의 형식을 보이는데 아이가 나타난 사실만 드러내므로 소주제문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 단락에 속해야 할 문장들을 부실없이 두 개의 형식으로 갈라 놓음으로써 어느 쪽도 온전한 단락을 이루지 못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이 두 형식의 쪼각 글은 하나로 합쳐야 한 소주제 문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한 단락의 소주제문과 그 뒷받침문장들을 쓸데 없이 갈라 놓는 것은 금물이다. 이것은 마치 한 기관차에 연결되어 있는 차량들을 따로 갈라 놓아서 그중 일부 차양은 기관차가 없이 고립되는 현상을 빚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비유로 말하면 한 부대장의 통솔을 받아 작전을 하게 될 병사들을 부질없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만드는 것과 같이 힘을 집결시킬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단락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쓰는 글들이 많아서 필요 없는 들여쓰기가 무질서하게 나타나는 수가 허다하다. 소주제문과 뒷받침문장을 한 형식 안에 묶어 두지를 않고 분산시켜 놓아서 형식과 내용이 일치하지 많을 뿐 아니라 매우 허술한 단락이 되는 수가 너무나 많다.

더구나 한 문장만을 놓고 들여쓰기를 하여 문장마다 고립 시키는 일은 금물이다. 어떤 이는 일부 문장을 강조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문장들을 마음대로 따로 떼어서 새 단락을 만드는 일이 있다. 그것은 잘못된 강조법이다. 단락이라는 조직을 깨뜨리고 마는 것이며 소주제에 대한 충실한 뒷받침을 해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 한 극단적인 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보기 4.2]

내 아이, 네 아이가 아니다. 모두가 우리 아이다. 내일이면 몰라보게 달라질 묘목들이다. 이들의 여름 방학을 위해 비영리단체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다음주부터 방학이다. 그러나 부모가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여름방학 프로그램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그곳에서 하는 일이라면..."하고 말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문화일보>, "사설" (1970/7/10)

위의 보기처럼 아무 뜻도 없이 한 문장을 따로 떼 놓는 것은 단락이 못된다. 소주제도 없고 뒷받침도 없이 외로운 고립 문장의 나열은 글의 조직을 이루지 못한다. 문장들이 명확한 소주제를 중심으로 형식으로나 내용으로 똘똘 뭉쳐야 힘이 있는 단락을 이룰 수 있다. "흩어지면 망하고 뭉치면 산다" 는 말은 단락이라는 조직체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 소주제를 우두머리로 해서 관련된 문장들이 강력히 단합되는 모습을 보여야 단락은 강한 힘을 발휘한다.

어떤 한 문장을 시각적으로 잘 눈에 띄게 고립시키는 것은 얼핏 보기에는 강조 효과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시각적인 효과만 일삼고 충분한 뒷받침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시야를 벗어나자마자 뇌리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왜냐 하면 뒷받침이 없이 고립시킨 문장은 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볼 때 어떤 중요한 문장은 시각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충분히 설명 또는 논증하여 독자를 납득시키는 뒷받침과 함께 내세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따라서 어떤 문장을 강조하고자 할 때 뒷받침 서술이 미약하거나 그것과 유리시킨 채 시각적으로만 돋보이게 하는 것은 잘못된 강조법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위에서 살핀 바를 바탕으로 단락의 일반 개념을 정리하면, "단락은 주제의 일부를 펼치는 문장의 조직체로서 그 형식이 뚜렷이 구분되는 글 속의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단락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1) 단락은 글 전체 주제의 일부를 펼친다

(2) 단락은 내용적으로 관련을 가진 문장들로 엮어진 단위 조직체이다.

(3) 단락은 뚜렷한 형식적 경계를 지닌 글 속의 글이다.

[새김] 이 단락의 뜻매김은 Perring(1965)의 견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런 단락의 정의는 Brooks & Warren(1970), Sullivan(1980) 등을 비롯한 서구 문장론서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선 단락은 글 전체 주제의 일부를 펼친다. 단락은 전체 글의 내용 일부를 떠맡아 다루는 하나의 전개 단위체가 되는 것이다. 일반으로 전체 글의 주제는 몇 개의 작은 개념으로 나누어서 다루게 된다. 이를테면, "민수는 훌륭한 학생이다" 라는 단순한 주제의 글을 쓰는 데에도 "민수는 부지런하다, 민수는 봉사 정신이 빼어나다, 민수는 공부를 잘 한다" 따위의 작은 주제로 나누어서 서술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체 글의 주제가 다소 추상적이므로 이를 좀더 구체적인 하위 주제 들로 나눠 다루어서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구분된 하위 주제 고 소주제를 각기 떠맡아서 집중적으로 펼치는 것이 단락이다.

둘째로, 단락은 내용적으로 관련을 가진 문장들로 엮어진 조직체이다. 단락이 하위의 주제를 다룬다고는 하지만 이것 역시 한 두마디 언급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민수는 부지런하다"라는 소주제만 하더라도 조직적으로 부각시키는 뒷받침 서술이 필요하다. 이처럼 단락은 여러 개의 문장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조직체이다. 하나의 소주제 표시 문장 만을 제시하고 말거나 하나의 뒷받침 문장만을 제시하는 경우는 단락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여러 개의 문장을 이어 놓더라도 그것들이 유기적인 조직을 이루지 못하고 제각기 따로 노는 경우도 진정한 단락의 뜻과는 거리가 멀다. 여러 개의 문장들이 긴밀하게 배열되어 하나의 소주제를 집중적으로 펼칠 때 비로소 단락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지리산 구름바다 풍경.(사진=김일현 기자 / 전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사진부 근무)
지리산 구름바다 풍경.(사진=김일현 기자 / 전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사진부 근무)

[새김] 간혹 "강조 단락"이니 "분립"이니 하여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단락이 가능한 것처럼 표현한 작문 이론서들이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다. 본디 한 문장만으로는 우리의 생각을 충분히 나타낼 수 없기에 단락이라는 조직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한 문장만으로도 단락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단락의 존재 의미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감탄이나 극적인 표현에서 그 뒤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를 정상적인 단락으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그런 한 문장 단락 운운하는 뜻매김은 그렇지 않아도 한 문장만을 달랑 내걸고 설명도 뒷받칩도 없이 팽개치는 산만한 글들을 합리화하는 것밖에는 안 될 것이니 좀더 짜임새 있는 글쓰기를 장려해야 하는 이 마당에서는 백해무익이다.

단락은 뚜렷한 형식적 경계를 지닌 글 속의 글이다. 단락 이 글의 전개 단위체로서 글 속의 글이라 할 때 그것은 분명히 경계가 주어져 딴 단락들과 서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단락의 형식적 경계로는 들여쓰기(indention)가 가장 널리 쓰인다. [보기 3.1]의 각 단락에서처럼 단락의 시작 부분을 한 칸이나 두칸 정도 들여쓰는 것이다. 이 밖에 "내쓰기, 줄 바꾸기" 따위가 단락의 표지로 사용되기도 하나 들여쓰기가 가장 일반적인 단락 표시 방법이다. 이렇게 들여쓰기를 한 부분에서부터 다음 들여쓰기를 한 부분의 직전까지가 한 단락이 된다. 물론 이 때 내용은 안 바뀌고 들여쓰기만 한 것 이라든지, 내용은 바뀌었는데도 들여쓰기를 한 것 등은 바른 단락 나누기가 못 된다. 그런 경우는 들여쓰기가 바른 단락 표지로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곧 단락의 내용 바뀜과 관계가 없이 임의로 쓰이는 들여쓰기는 잘못된 것이기에 단락 표지로 인정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들여쓰기만 하면 단락으로 여기는 일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며 단락 표지로서의 들여쓰기를 제대로 쓰는 것이 못 된다. 요컨대, 한 소주제의 펼침을 끝내고 딴 소주제의 펼침으로 넘어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만이 단락 경계 표지로서의 들여쓰기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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