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 이사장, 국립창극단의 손진택 연출 '심청가' 공연평]

정중헌 이사장.
정중헌 이사장.

[편집자 주] 정중헌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의 공연평을 매주 연재합니다. 문화 전문기자 출신인 정 이사장의 공연평은 비평적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정중헌 이사장은 스포츠조선 문화부장, 조선일보 문화부장,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 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습니다.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1기), 성균관대학교 일반대학원 공연예술협동에서 공부했으며 인터넷 전문신문 ‘인터뷰 365’의 기획자문위원도 맡고 있습니다.

‘소리’에 중점을 둔 창극 <심청가>. 국립창극단이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 중인 손진책 연출의 <심청가>는 제목에서 보듯이 연극중심보다 소리중심으로 옮겨 소리의 맛과 멋을 살리고자 했다. 또 사실주의 무대에서 벗어나 원목으로 만든 대소도구들로 변화를 주는 미니멀 무대를 선보여 구성지고 신명나던 창극과는 달리 독창과 합창이 어우러진 오페레타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필자는 문화부 기자 시절에 창극의 현대화에 관심이 많았고 세미나 주제도 발표했다. 판소리의 전통을 살리면서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의 취향에 맞게 변화를 줄 것인가, 또 세계화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아직도 모색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간 국립창극단은 창극의 다양화와 대중화로 외연을 넓히는 시도를 해왔는데 필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다. 그리스 비극이나 오페라 원전의 창극화가 부자연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심청가>는 창극 본령으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또 판소리 이수자 유수정 씨가 창극단 예술감독을 맡고, 요즘 TV 예능으로 알게 된 유태평양과 김준수 같은 젊은 소리꾼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호기심, 지난해 못 보았던 작품이라 이번엔 놓치고 싶지 않은 점 등도 작용해 관람했다.

손진책 연출은 1970년대부터 전통의 현대화 작업을 해와 신뢰가 가는데 이번에 대본 작업과 연출을 통해 ‘손진책표 창극’을 선보였다. “소리예술의 사회성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시도”라는 것인데 판소리 원형을 살리면서 외형은 경가극, 미니멀리즘 같은 서구적 형식을 취했다.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이에 대한 호불호나 예술적 평가는 엇갈릴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심청가를 이처럼 관중이 이해하기 쉽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호감을 가졌다. 어려운 사설을 한영 자막으로 보여주고, 특히 도창의 역할을 증대시켜 극을 매끄럽게 이끈 점이 좋았다. 도창과 자연스레 맞물리는 주역들의 소리가 각 인물의 개성을 잘 부각시켰고 합창도 신선했다. 특히 아직 20대인 유태평양은 심봉사 역할을 깊은 소리와 옹골찬 연기로 탁월하게 해냈다고 생각한다. 창극의 대중화는 이같은 소리꾼과 공력 있는 전문가들의 역량이 뒷받침되어 가능했을 것이다.

국악 합주단의 화음이 뒤편에서 다소곳이 받쳐주면서 고수를 무대에 앉힌 것도 새로웠다. 심청을 태운 배가 인당수를 지나는 장면에서 불린 ‘범피중류’의 애절한 소리와 연출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심청이 탄 연꽃의 상징성도 그림이 좋았다. 형식에만 치우치지 않고 고전이 주는 ‘효’의 의미를 극적으로 형상화시킨 점도 평가할 만하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런 시도가 아직 과도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리’에 집중한다는 콘셉과 미니멀 이미지의 접목은 새롭다고 해도 관객 수용에는 아직 미진한 점이 적지 않다. 우선 같은 형식의 반복은 지루함의 요인이 되었다. 변화를 주기 위해 휴게 시간을 두었지만 완창 판소리가 아닌 이상 공연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심청가’, '심청전‘은 줄거리가 다 알려져 있다. 아는 이야기를 주요 대목으로 나눠 도창, 독창, 합창으로 재구성하고 극적인 볼거리들을 넣다보니 반복에서 오는 피로감이 누적될 우려가 있다. 마당극은 다양한 변화와 스펙터클이 있지만 같은 판이라도 같은 배우, 같은 의상, 엇비슷한 소리의 반복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만한 대작을 작창해낸 안숙선 명창의 열정은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배우들이 강조하는 대목에서 으레껏 목청을 높이는 관행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창극 '심청가' 장면.(사진=정중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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