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 교수 '글쓰기 특강' 9]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제를 체계적으로 다룰 수 없어
조리있는 서술이 될 수가 없게 된다
- 이는 마치 한 조직체가 여러 하위 부서 조직을 통하여
업무를 체계적으로 처리하여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

4. 여러 단락으로 이루어지는 글

1) 단락과 긴 글의 구성

우리는 앞에서 단락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대강 살폈다. 이제 이런 단락들이 한 편의 글을 이루는 과정을 알아 보기로 한다. 단락들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고 이어져서 한 편의 글을 엮어 가는지 익혀 두도록 한다.

우선, 실례를 살펴 보기로 하자.

[보기 4.1] 병상에서 보낸 우유

(1)새벽에 배달되는 우유가 오지 않았다. 첫날은 "누가 집어 갔나보다"고 생각했는데 사흘이나 계속해서 배달이 끊겼다. 궁금해서 우유 배달 대리점에 전화를 했더니 우리집 담당 배달 아저씨가 교통 사고로 입원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라 하였다. 더구나, 앞으로 2,3주 동안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2)이 소식을 듣고 나는 딴 제품의 우유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식구들이 우선 아침에 우유를 마시는 오래된 습관 때문에 그 아저씨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릴 수없다고 성화였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신선한 우유를 집어 드는 상쾌한 기분을 느낄수 없는 점은 사실 내게도 무척 아쉬웠다. 또 평소에 다른 우유 대리점에서 자기네 물건을 사달라고 부탁해 오기도 하였으니 이번 기회에 딴 데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이 났던 것이다.

(3)그런데 이날 아침 10시쯤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느긋한 마음으로 쉬고 있을 때에 초인종 소리가 났다. 외판원인가 싶어 나가지 않았더니 조심스럽게 초인종이 또 울렸다. 뜻밖에 7,8세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여자 아이가 빨개진 얼굴로 "우유예요"라고 말하며 서있지 않은가. "아빠가 병원에서 아줌마 댁에 가져다 드리랬어요" 하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는 것이었다.

(4)나는 우선 부질없는 생각을 했구나 하는 후회의 마음이 앞섰다. 어려운 일을 당한 이웃을 위로는 못할망정 그새를 못 참아서 딴 마음을 가졌으니 말이다. 고객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문제와 생계 걱정으로 병상에서도 편치 못할 우유 아저씨 생각을 다시 하며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나의 인정 머리 없는 마음가짐에 가책을 느끼기도 했다.

(5)또 그 아이의 딱한 처지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찬 바람이 일기 시작하는데 매일 아빠를 대신해 수고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언짢았다. 내가 그애에게 해줄 것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여 본다. 무엇보다도 그 아빠가 빨리 회복돼 그애의 고생이 끝나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 최귀인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위 글은 5개의 단락이 이어져서 한 편의 글을 이루고 있다. 각 단락은 그 시작점을 한칸 안으로 들여 넣어 씀으로써 구분하고 있다. (각 단락 앞의 번호는 편의상 필자가 붙인 것이다).

글을 시작할 때 또는 글의 중간에서 줄을 바꾸고 한 자를 안으로 넣어서 쓰는 것을 "들여쓰기(indention)"라 부른다. 이것은 단락의 경계를 겉으로 알아 볼 수 있게 하는 표지이다. 만일 위와 같은 긴 글에서 이런 들여쓰기가 없이 모든 문장이 한데 잇대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글의 내용 파악에도 힘이 들 것이다. 그래서 이런 단락의 표지인 들여쓰기는 현대의 거의 모든 글에서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다.

[새김] 아주 옛날 글에서는 띄어쓰기나 쉼표, 마침표 뿐 아니라 단락 구분이 없었다. 글의 내용이 복잡해지고 길어지면서 그런 여러 문장 부호들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들여쓰기도 그 중의 한 가지이다. 서구에서는 몇 백년 전부터 단락 구분의 표지가 나타나게 되었고 우리 나라에는 금세기 초에 이런 들여쓰기가 일본을 통하여 들어왔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글에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들여쓰기의 구실을 바로 알고 쓰는 일이 드물다. 곧 글의 내용 전개와는 관계가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들여쓰기를 한다. 그래서 들여쓰기만 많고 정작 단락 구분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글이 많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다.

이런 들여쓰기로 표시되는 각 단락은 우리가 앞에서 다룬 단락의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다. 들여쓰기로 구분되는 단락은 각기 글 속의 글로서의 짜임새를 보인다는 것이다. 곧 위의 글과 같이 긴 글에서는 들여쓰기가 내용적인 조직체인 단락을 외형적으로 알아 볼 수 있도록 하는 경계 표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용적으로 관련이 없는 문장들을 임의로 나누어 놓는 들여쓰기는 단락 표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들여쓰기는 업무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람들을 아무 기준 없이 갈라 세워서 부서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혼선만 빚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내용적으로 한 덩이를 이루고 있는 단락을 서로 구분해 주는 들여쓰기만 단락 표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내용과 관련 없이 함부로 쓰는 들여쓰기는 어떤 경우에도 단락 표지로 인정될 수 없다.

그러면 위 [보기 4.1]에서 들여쓰기로 구분되는 각 단락이 각기 어떤 구실을 하며 그 자체의 짜임새는 어떤지 살펴 보기로 하자. 첫 단락은 이야기의 발단을 서술하는 도입부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단락은 본문에서 다루어질 내용을 이끌어 들이는 길잡이 노릇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앞에서 다룬 일반 단락 곧 한 소주제문과 그것을 펼치는 뒷받침문장으로 이루어지는 단락과는 다르다. 이런 단락은 "특수 단락"이라 이른다. (이런 단락은 뒤의 '특수단락을 이루는 방법'에서 따로 다룰 것이다).

단락 (2)에서는 앞의 첫 단락에서 도입된 이야기 내용의 일부를 다룬 것인데, 그 요지는 첫 문장에 나타난 대로 "나는 딴 제품의 우유로 바꾸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이다. 이것은 이 단락의 소주제문이다. 이 단락을 이루는 다른 모든 문장들은 이 소주제문을 떠받치는 데에 집중되어 있다. 결국, 이 단락은 앞에서 우리가 말한 두괄식 단락의 짜임새로 펼쳐지고 있다.

단락 (3)에서는 "아이가 우유를 배달한 사건"을 다루었다. 이 단락은 이 글의 한 고비(절정)를 이루고 있다. 이 단락에서는 그 이야기만 서술하고 소주제문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는 무괄식 전개를 하였다. 이런 경우에는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극적인 효과를 충분히 거두었으므로 더 이상의 부연이나 소주제문은 오히려 군더더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단락 (4)에서는 "나는 우선 부질없는 생각을 했구나 하는 후회의 마음이 앞섰다."라는 소주제문을 두괄식으로 다루었다. 곧 이 단락에서는 이 소주제문을 앞에 내걸고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풀이하여 펼쳤다. 원망하는 마음을 가진 것을 후회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반성하게 된 점 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단락 (5)에서는 "그 아이의 딱한 처지에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라는 소주제문을 역시 두괄식으로 펼쳤다. 찬 바람이 나는데 어린 아이가 일찍부터 우유 배달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딱한 처지를 가엾게 여기고 그애를 도와줄 마음까지 일어났음을 서술하였다. 이 단락은 글의 마무리의 구실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위의 글은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제로 삼고 그것을 몇 개의 단락들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곧 그러한 주제를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서 몇 단락으로 나누고 각 단락이 차례로 그 주제의 일부를 떠맡아 짜임새 있게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를 간추려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전체 주제 :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단락 (1) 도입 단락 곧 본문에서 다룰거리를 이끌어 들임

단락 (2) 내용 서술의 일부 곧 딴 제품의 우유로 바꾸어 보려는 생각을 서술

단락 (3) 내용 서술의 한 고비 곧 아이가 우유를 배달한 극적인 사건의 서술

단락 (4) 내용 서술의 또 한 국면 곧 후회하는 마음의 서술

단락 (5) : 내용 서술의 마지막 부분 곧 측은한 마음의 서술

위에서 보듯이 각 단락의 내용 서술은 글 전체 내용을 몇 단계로 나누어 다룬 것이 되는데, 이를 종합하면 "불우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주제가 부각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보기 4.1]은 이러한 전체 글의 주제를 몇 가지 단계로 나누고 그 각 단계는 각 단락에서 다루고 있다.

일반으로 글은 이처럼 여러 단락으로 나뉘어 단계적으로 서술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글의 주제가 체계적으로 다루어질 수가 없으며 따라서 조리있는 서술이 될 수가 없게 된다. 이는 마치 한 조직체가 여러 하위 부서 조직을 통하여 업무를 체계적으로 처리하여 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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