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일제강점기에 우리 문화 말살하려고
우리말 못 쓰게 하면서 자기네 한자말 퍼뜨려
일상 용어들까지 일본식으로 물들 수밖에 없어
해방 뒤 군 조직 급히 갖추면서 일본 영향 받아
우리의 군대용어는 일본식 한자말 투성이

[편집자 주] ‘글쓰기’ 신문은 ‘엄민용 기자의 우리 말글 산책’을 주 1회 연재합니다. 경향신문의 엄민용 기자(부국장)는 정확한 우리 말글 사용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입니다. 대학과 기업체, 관공서 등에서 글쓰기 바로쓰기 특강 강사로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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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들려주는 얘기 가운데 여자들이 정말 듣기 싫어하는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군대 얘기와 축구 얘기, 그리고 군대에서 축구를 한 얘기라고 하네요. 그만큼 남자들은 군생활을 하는 동안 겪은 일을 얘기하기 좋아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한 모두 군대를 가야 하는 까닭에 군대 얘기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좋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 빠지지 않는 말 가운데 하나가 ‘고참(古參)’이지요. “나이도 어린 고참에게 엄청 시달렸다”거나 “고참이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켰지만, 그것들을 다 해냈다”는 식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합니다. 또 ‘고참’은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고참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와 달리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따위처럼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하지만 이처럼 흔히 쓰이는 ‘고참’은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도 ‘고참’을 ‘선임’ 혹은 ‘선임자’로 순화해 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 문화를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을 못 쓰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네 한자말을 퍼뜨렸지요. 그러다 보니 일상 용어들까지 일본식으로 물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광복과 함께 군대 조직을 급히 갖춰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군은 일본의 영향을 크게 받은 만주군관학교나 일본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을 요직에 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의 군대용어는 일본식 한자말 투성이입니다. 이제는 일상용어로도 쓰이는 ‘약진’이나 ‘포복’은 물론이고 군대 하면 떠오르는 ‘유격’ ‘각개전투’ ‘제식훈련’ 등이 모두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몇 발짝 앞서 근대화 물결을 받아들였고, 새로운 물질문명의 언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니 근·현대어 대부분이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철학, 입장, 역할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을 수 없는 말들도 대개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쓴 말이지요.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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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을 죄다 쓰지 못하게 하고 순우리말로 쓰자고 하는 것은 언어의 사회성과 경제성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일본식 한자말은 안 되고, 중국식 한자말은 된다는 사고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도 ‘약진’ ‘포복’ ‘유격’ ‘각개전투’ ‘제식훈련’ 등을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제어로 올려놓고 있습니다. 이제 이들 말은 우리 국어라는 얘기이지요.

하지만 군대에서 여전히 많이 쓰이고, 이 때문에 일반인 대부분이 표준어로 알고 있는 군대용어 가운데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일본식 한자말도 많습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환복’을 해서 ‘관물대’에 넣고 ‘총기 수입’부터 한다”는 표현에서 보이는 ‘환복(換服)’ ‘관물대’ ‘총기 수입’ 등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 말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다들 아는 단어입니다. 그러다 보니 신문과 방송 등에서 “류태준은 갑작스레 ‘환복’을 시도하며 상의 탈의 몸매를 과시했다” “서울구치소 독거실에는 접이식 매트리스와 관물대, TV, 책상 겸 밥상, 화장실 등이 있다” 따위처럼 군대 밖의 일에도 쓰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총기 수입’은 대체할 말을 모를 정도로 흔히 쓰이고요.

하지만 이들 말은 아예 국어사전에도 없는 일본식 한자말입니다. 특히 관물대의 경우 관물(官物:관청 소유의 물건)을 놓아 두는 대(臺)라는 뜻으로, 그 의미가 현실과도 많이 동떨어집니다. 과거에는 군복과 철모 등을 군 공동 소유의 물건으로 의식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현재 군인들이 ‘관물대’에 두는 물건들은 각각의 군인에게 지급된 것이고, 아주 사적인 물건도 많습니다. 따라서 그 공간을 더 이상 ‘관물대’로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개인보관함’입니다. 보통은 ‘사물함(私物函)’이라고 하는데, 사물함 역시 일본식 한자말로 국립국어원은 ‘사물함’을 ‘개인 물건 보관함’이나 ‘개인보관함’으로 순화해 쓰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총기수입’의 ‘수입’은 “손을 들인다”, 즉 “손질을 한다”는 의미의 일본말 ‘데이레(手入)’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국립국어원은 ‘총기수입’ 대신 ‘병기 손질’로 쓰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군대용어에는 ‘점호’와 ‘요대' 등 일본식 한자말이 무척 많습니다. 여기에는 태생적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순화해서 우리말 식으로 고쳐 쓸 수 있는 것 역시 많습니다.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환복’을 해서 ‘관물대’에 넣고 총기수입부터 한다”를 “힘든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어 개인보관함에 넣고 병기 손질부터 한다”로 고쳐 쓸 수 있듯이 말이죠. 국방부에서 이들 군대용어를 두루 살펴서 일본어의 잔재들을 걷어냈으면 참 좋겠습니다.

제주도 한라산(사진=김일현 기자 / 전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사진부 근무)
제주도 한라산(사진=김일현 기자 / 전 스포츠조선 조선일보 사진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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