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의 아인슈타인, 낮엔 특허국서 일하고 밤엔 논문 집필
반년만에 물리학 뒤흔든 논문 5편 발표...그 중 한 편은 노벨상
그의 천재적 창의성은 일필휘지 논문 완성하는 데 결정적 도움
독창적 ‘아이디어’와 ‘증명방법’ 있으면 논문 빨리쓰기 어렵지 않아

사진=윤성학 고려대 교수
사진=윤성학 고려대 교수

모든 학자들, 아니 석박사 학생들의 꿈은 논문을 빨리 쓰는 것이다. 논문 마감이 다가올수록 이런 꿈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렇지만 현실은 “이 연구의 목적은...”에서 커서가 멈춰져 있다.

논문 빨리 쓰기의 대가는 아인슈타인이다. 1905년 26살 약관의 아인슈타인은 낮에는 스위스 베른에 위치한 특허국에서 일하고, 주로 밤에 논문을 썼다. 그런데 약 6개월 동안 물리학을 뒤흔든 논문 5편을 발표하였다.

3월=광전효과(노벨 물리학상 논문)

4월=분자크기와 아드보가르드수 결정(취리히공과대학 교수 취임 논문)

5월=브라운 운동

6월=특수상대성이론

9월=에너지&질량 등가 공식(유명한 공식인 E=mc2)

아인슈타인의 논문 빨리 쓰기의 비법은 ‘창의성’이다. 그의 천재적인 창의성은 일필휘지의 논문을 완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있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논문을 빨리 쓰는 게 절대로 어려운 작업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독창적인 아이디어도 별로 없고 증명하는 것은 더더욱 힘들어한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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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이 논문을 빨리 쓸 수 있는 비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논문 제안서를 만들어 논문을 잘 설계하여야 한다. 사실 이 단계가 논문 빨리 쓰기에서 가장 중요한다. 잘 계획된 제안서는 그대로 논문이 될 가능성이 많다. 혼자만의 제안서는 의미 없다. 제안서를 만들어 교수님이나 동료, 하다못해 온라인의 고수들에게 피드백을 받아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나중에 논문 심사에서 퇴짜 받는 것보다 제안서에서 ‘비판’ 받는 것이 훨씬 좋다. 제안서에는 반드시 목차가 있어야 한다.

둘째, 논문은 연구를 시작하면서부터 써나가야 한다. 논문은 아이디어와 자료를 준비하고 정리한 뒤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자료들을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은 제안서 목차에다 그대로 집어넣어라. 표절은 나중에 처리하면 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적어야 한다.

관찰과 실험의 결과를 기술하는 자연과학 논문도 마찬가지다. 모든 실험이 끝나고 난 뒤 논문을 쓰면 또 하나의 실험을 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논문은 실험 시작과 동시에 써나가야 한다. 처음에는 그냥 일반적인 정보에 불과하지만 글을 써야만 실험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연구 실험이 끝난 뒤 실험장치를 치워버리고 논문을 쓰다 보면 데이터는 있지만 막막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논문 쓰는 과정에서 빠진 것을 보충하다 보면 또 한번 실험해야 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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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논문을 목차 순서대로 쓰는 것은 논문 지옥에 빠지는 길이다. 서론을 쓰고 2장, 3장, 4장 등 본론을 쓰고 마지막으로 결론을 쓰는 것이 전통적인 논문 기술의 방법이었다. 초보자가 이런 식으로 논문을 쓰면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중간에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에코가 말했듯이 논문은 굳이 서론부터 시작하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논문은 소프트웨어를 짜는 것처럼 써야 한다.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수준에서 논문의 목차를 구성하여 먼저 장과 절의 제목을 정하라. 나중에 제목과 구성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으니까 너무 고심해서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 그 다음 자신이 읽은 자료들이나 아이디어를 관련 장과 절에 갖다 넣어라. 글의 재료들만 늘어놓아도 초고는 완성된 것이다.

넷째, 버전 0.1이 만들어지면 이제부터 버전을 높여 나가면 된다. 1단계로 완성된 논문에다가 중간에 읽거나 새로 발견된 내용을 적절한 장과 절에 삽입한다. 혹은 다른 자료나 통계를 넣어서 내용을 보충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장과 장, 장과 절 사이의 논리적 연결성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장과 절을 수정하거나 다시 새롭게 써야 할 일이 발생하면 고치면 된다. 컴퓨터로 논문 쓰는 즐거움이 여기에 있다. 자신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것을 일단 써놓고 난 뒤 수정과 보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빨리 쓰는 전략의 핵심이다.

자연과학 논문은 빨리 쓰기가 인문사회과학보다 훨씬 중요하다. 대부분 중요한 실험은 여러 팀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세상은 ‘처음’만 기억한다. 몇 년 연구 중인 과제가 다른 팀에 의해 이미 논문으로 제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멘붕’에 빠져본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잘 안다. 프로들에게는 ‘빨리’가 돈과 명예를 보장한다.

빨리 쓰기가 논문의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시중에는 ‘공장형’ 논문들이 너무 많다. 수준 이하의, 자기 복제와 데이터만 살짝 바꾼, 표절로 범벅된 논문들이 실적으로 둔갑한다. 이것은 학계의 자정에 맡기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빨리 논문 쓰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하나의 논문을 완성하면 다음 논문은 훨씬 쉬워지고 수준은 올라간다. 논문 쓰는 것이 즐거워질 수도 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보통 사람들은 자주 써보아야 진짜 의미있는 논문을 생산할 수 있다.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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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 교수는 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연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러시아 경제를 전공하였다. 박사학위 논문은 “러시아 석유산업의 구조조정 연구”다. 대우경제연구소, UzDaewoo Bank, 러시아 IMEMO 연구소, 대외경제정책연구소, 지금은 고려대학고 러시아CIS 연구소에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남북러 가스관의 경제적 효과에 관한 연구”, “중앙아시아 진출 외국기업의 사회적공헌활동에 관한 연구” 등이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러시아 비즈니스”, “러시아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현대 중앙아시아의 이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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