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현지 취재] ‘논증적 글쓰기 강좌’ 총괄 지휘하는 토마스 젠 교수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대학교는 전 세계 최고의 인재 집단으로 평가 받는다. 그런데 하버드대는 신입생들을 ‘글쓰기 초보자’로 간주하고 혹독하리만치 철저하게 글쓰기를 교육한다. 고교 때까지 이미 실력이 검증된 영재들에게 의무적으로 글쓰기 과정을 이수하게 하는 이유는 뭘까. 하버드대의 글쓰기 훈련 과정은 다른 교육기관과 어떻게 다를까. 하버드대 글쓰기 수업의 성과는 무엇일까.

하버드대학교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총괄 지휘하는 토마스 젠 교수(오른쪽)와 글쓰기 지도 교수인 제임스 헤론 교수(가운데), 그리고 하버드대 글쓰기센터의 제인 로젠츠와이그 소장(왼쪽).
하버드대학교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총괄 지휘하는 토마스 젠 교수(오른쪽)와 글쓰기 지도 교수인 제임스 헤론 교수(가운데), 그리고 하버드대 글쓰기센터의 제인 로젠츠와이그 소장(왼쪽).

궁금증이 들었던 기자는 하버드대를 현장 취재하기로 결정했다. 한 달 넘게 전화와 전자우편으로 취재 협조를 요청한 끝에 어렵사리 성사돼 2007년 10월 7일(현지시간)에 방문했다.

인터뷰 절차를 밟기까지는 힘들었지만 하버드대에서 환대해 주었다. 하버드대 글쓰기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교수 2명(토마스 젠 교수, 제임스 헤론 교수)과 제인 로젠츠와이그 글쓰기센터 소장이 직접 나와 기자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줬다. 1차 인터뷰(오전) 뒤 자리를 옮겨 점심 식사를 함께 하고 2차 인터뷰(오후)까지 하면서 ‘하버드대 글쓰기 교육’의 모든 것을 공개했다.

이 교수들은 “왜 우리 학교의 글쓰기 교육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이냐”면서 하버드대 글쓰기 프로그램 자료와 영상물도 듬뿍 안겨 줬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진행하는 글쓰기 교육을 취재하겠다며 태평양을 건너온 기자가 신기하다는 표정도 엿보였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철저하게 글쓰기 교육을 받는다. 사진은 하버드대 교정을 거닐고 있는 학생들.
하버드대 학생들은 신입생 때부터 철저하게 글쓰기 교육을 받는다. 사진은 하버드대 교정을 거닐고 있는 학생들.

기자도 한국 홍삼 엑기스를 선물했다. “인삼 중에서 가장 좋은 게 홍삼인데 인종과 체질에 상관없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자 활짝 웃었다. 하버드대 교수들도 인삼의 효능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한 나라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된 상황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그 해 10월 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간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우선, 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교육을 총괄 지휘하는 토마스 젠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젠 교수는 2007년 8월부터 신입생들이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논증적 글쓰기 수업(Expos, Expository Writing Program)’을 총괄 지휘하고 있었다.

“하버드대는 신입생 1,600명에게 한 학기 동안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듣게 합니다. 입학할 때 시험을 거쳐 입문 단계인 ‘논증적 글쓰기 10’과 고급 단계인 ‘논증적 글쓰기 20’ 중 어느 강좌를 수강해야 할지 결정하지요. ‘논증적 글쓰기 10’을 마친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 ‘논증적 글쓰기 20’을 수강할 수 있습니다. 교수들은 학기 당 15명으로 구성된 반 두 개를 맡습니다. 꼼꼼하게 지도하기 위해 한 반 수강생을 15명으로 제한하지요. 한 학기 동안 최소 3편의 글을 쓰고 교수와 학생이 적어도 세 차례 1대 1로 토론합니다. 글을 쓸 때마다 초안과 고쳐쓴 글을 함께 제출해야 한답니다.”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창안한 주인공은 낸시 서머스(Nancy Sommers) 교수다. 서머스 교수는 2007년 7월까지 하버드대에서 이 프로그램을 총괄 지휘했으며 (기자가 취재를 갔던) 그해 10월 당시엔 안식년을 맞아 쉬고 있었다. 서머스 교수는 교육 방법에는 다소 변화가 있었지만 15년 이상 이 프로그램을 관리하면서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최상의 글쓰기 교육을 받도록 이끌었다. 특히 90년대 중반에 지금처럼 별도의 건물에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담당하는 공간을 두고 글쓰기 프로그램을 발전시켰다.

논증적 글쓰기 수업은 정확히 말하면 ‘대학 학술 작문(Academic Writing)’이다. 그런데 이것을 ‘논증적 글쓰기 수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명(Exposition)’은 서술(narration), 기술(description), 논쟁(argumentation)과 함께 문장 서술 방식 중의 하나다. 그런데 대학에서 작성하는 글은 대부분 ‘설명’을 사용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토마스 젠 교수는 2007년 8월부터 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글쓰기 전문가다.
토마스 젠 교수는 2007년 8월부터 하버드대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총괄 지휘하고 있는 글쓰기 전문가다.

한 편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을 동원한다. 예를 들어, 글의 도입부는 ‘설명’과 ‘기술’을 주로 사용하고, 본문은 주로 ‘설명’과 ‘논쟁’을, 결론은 ‘서술’과 ‘논쟁’ 그리고 ‘설명’이라는 표현 방식에 의존한다.

따라서 한편의 글(학술적인 글을 포함한 다양한 글의 갈래)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서술 방식이 바로 ‘설명’인 것이다. 그래서 하버드대뿐만 아니라 미국 대학의 대부분은 학부생 글쓰기 프로그램을 ‘논증적 글쓰기’라고 부른다.

하버드대 학부 글쓰기가 ‘설명’을 전면에 내세우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고등학교까지는 주로 표현 위주의 작문 교육을 한다. 그런데 그 서술 방식은 주로 서술이나 기술 혹은 간단한 논증 구성을 차용하는 논쟁에 중점을 둔다.

토마스 젠 교수는 ‘논증적 글쓰기 수업’이 전공과목 공부에 도움이 되도록 연계하는 데에도 무척 신경을 쓴다고 했다. 신입생 때 배운 글쓰기가 전공에 필요한 글을 쓰는 데 요긴하게 활용되도록 한다는 말이다. 흔히 이것을 ‘학제 간 글쓰기(WAC, Writing Across the Curriculum)’라고 한다.

실제로, 경제학, 심리학, 역사학, 영문학 등 전공 수업에서 요구하는 글은 각기 서로 다른 구성과 전략을 사용한다. 그래서 하버드대는 이와 같은 전공별 글쓰기의 차이점을 염두에 두고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문학 전공자는 독창적인 논지 전개에 신경을 써 가면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지만 전자공학 전공자는 당연히 실험 결과의 정확성을 중시한 실험 보고서를 써야 한다. 논증적 글쓰기 수업에서는 신입생들이 상급 학년에 올라가 전공에 필요할 글쓰기를 할 때 얼마든지 응용할 수 있도록 작문 지도를 하는 것이다.

하버드대 유니버시티 홀 정면에 있는 하버드대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 하버드 칼리지는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 총독부의 표결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버드대 유니버시티 홀 정면에 있는 하버드대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 하버드 칼리지는 1636년 미국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 총독부의 표결에 의해 설립되었다.

하버드대는 ‘학제 간 글쓰기’를 하기 위해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하는 교수들이 전공과목 교수들과 대학원생들, 그리고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있다. 전공과목 교수들과 학생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글쓰기 교육을 하기 위해서다. 과거에는 교수들이 잡지나 신문기사, 논픽션 등을 활용하여 수업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전공 수업에 맞춘 글쓰기를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 학기 전에 어떤 종류의 글쓰기가 필요한지 파악해 두는 것은 기본이다.

하버드대 글쓰기 교육의 성과에 대해 젠 교수는 “논증적 글쓰기 수업을 학제 간 글쓰기로 연결하기 때문에 신입생들이 고학년이 되면 좀 더 사려깊게 생각하여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를 수 있다”면서 “학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다른 전문적인 학업을 할 때 필요한 사고법을 배웠다고 느낀다면 우리 프로그램은 성공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학교 측의 노력에 화답하듯 글쓰기에 열성적으로 참여하여 교수들을 흐뭇하게 한다. 학생들은 보통 수업 전날 밤 과제를 하는 경향이 있는데, 새벽 4시에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며 (교수가 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전화를 걸거나 전자우편을 보내는 사례도 있다.

하버드대는 학생들이 글을 써내야 하는 분량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통계에 따르면 6명의 학생들이 4년 간 제출한 글이 600파운드(273kg)를 넘을 정도다. 전공 과목 대부분을 글쓰기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미국 보스턴 캠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 입구 지하철역.
미국 보스턴 캠브리지에 위치한 하버드대 입구 지하철역.

인터뷰 말미에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하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단언하느냐”고 공격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젠 교수는 “증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주장을 글로 쓰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고 글을 고쳐보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답변했다.

“생각하는 힘을 100%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글쓰기를 하면 생각을 명석하게 정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우는 게 가능해집니다. 자신의 추측과 주장을 너무 보편적으로 믿는 것은 아닌지, 반대 의견은 없는지 등은 글을 쓰는 과정에서 검증할 수 있지요. 머리로만 생각해서는 윤곽이 보이지 않습니다.”

취재를 마친 기자와 기념 사진을 촬영한 토마스 젠 교수는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언론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 즐겁고 유익했으니 맛있는 음식으로 점심을 대접하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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