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구 대사관 이야기(22)] 고국에서 온 위문품, 위문편지

[편집자 주] 주독일대한민국대사관 정범구 대사의 ‘대사관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정 대사는 대사관 주변 이야기와 한독 관계 등을 사회관계망서비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정확하고 간결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외교관의 소소한 일상과 깊이 있는 사색,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담고 있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쓰기’의 모범사례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현장 사진을 곁들여 국민들에게 외교관이 일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범구 대사는 충북 음성 출신으로 16대,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지난해 1월 독일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광주의 한 시민이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에 보내온 마스크 100개.
광주의 한 시민이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에 보내온 마스크 100개.

"저도 일본에 살 때 동북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며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지금 교민들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꼭 두 달만에 다시 대사관 이야기를 씁니다. 국내에서는 2월 하순부터 심각해지기 시작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독일에서는 지금 한창 극성을 부리고 있어 이곳 대사관은 두 달째 초비상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환난"에 모든 기존의 일상생활들이 무너지고, 주요 사업들이 취소되거나 무기 연기되는 그런 나날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독일에서 한국과의 비행기 연결편은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수시로 변경되는 항공 스케줄을 파악하여 교민들께 알리고, 아프리카나 중동 등 제3국으로 부터 독일을 경유, 귀국하는 국민들 지원하는 문제도 소홀히 하지 못합니다.

국가 기간시설인 대사관을 외부감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단행한 여러 비상조치들도 언제 해제할 수 있을지 아직 깜깜합니다. 각 영사관 관할지역에서 보고되는 우리 국민 확진사례와 그 후속조치들을 들으면서 제발 우리 교민사회에 큰 피해 없이 이 환란이 지나가 주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특히 독일 교민사회 1세대를 이루고 있는 과거 파독 광부와 간호사 분들이 이제는 모두 고령화하고 있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와중에 오늘 한국에서 아주 소중한 위문품이 도착했습니다. 가슴 뭉클한 위문편지와 함께. 그래서 오랜만에 다시 대사관 이야기를 씁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지,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채.

* 광주에 사시는 한 시민께서(본인의 이름을 밝히기 원치 않으심) 12살짜리 아들과 몇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손수 만드신 면 마스크 100장을 보내 오셨습니다. 직접 천을 사다가 잘라서 재봉틀로 박아, 한 장씩 곱게 포장하여 보낸 그 정성에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분인걸 알기에 더욱 애틋한 선물이었습니다. 특히 본인 자신 외국생활을 오래 하여 해외 교민의 생활이 어떤지를 잘 아시는 분이어서 그 마음이 더 소중하였습니다.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달된 위문편지와 마스크.
주독일 대한민국 대사관에 전달된 위문편지와 마스크.

* 한때 우리나라가 중국 다음으로 많은 코로나 확진자를 냈을 때 대사관에서는 우리 국민에 대한 인종차별이나 혐오 범죄를 걱정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이 코로나의 온상이 되고, 한국이 방역의 선진국임이 증명되자 이곳저곳에서 한국의 사례를 배우자는 움직임이 부산해져서 그 와중에 또 대사관은 바빴습니다.

메르켈 총리실 수석 장관인 헬게 브라운은 한국 방역시스템 현장 견학을 급하게 추진하다가 비행편이 여의치 않자 우리측 주요 관계자들과의 화상통화를 요청해 왔습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일은 한달 전, 적어도 2-3주 준비시간이 필요한 사안인데 독일 측도 급했는지 4-5일 안에 해 달라고 졸라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또 코로나 와중에 우리나라가 총선을 성공적으로 치른 것이 이곳 언론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끝이 어디일지는 모르지만 한국은 이곳에서 이제 "놀라운 나라"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 한 가운데서 이곳 대사관은 이렇게 "냉탕"과 "온탕"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광주의 한 시민이 보내온 위문편지.
광주의 한 시민이 보내온 위문편지.

* 다시 위문품, 위문편지로 돌아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우리 국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놀랍습니다. 무섭게 뭉치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어려운 일에 내가 먼저 앞장서는 그 모습들. 대구의 방역현장으로 앞다투어 달려가던 의료진들, 고립돼 있던 대구 시민들을 위해 각지에서 답지한 먹을거리들, 대구의 중환자들을 나눠 맡아 치료해 준 광주 등 다른 도시의 시민들, 전국 곳곳의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휴업과 실직의 고통 속에서도 방역당국의 지침을 충실히 따라준 성숙한 시민들. 정말 앞으로의 시대 구분을 BC(Before Corona)/AC(After Corona)로 나눈다면 AC 시대의 글로벌 리더는 대한민국이 될 것입니다.

* 보내주신 귀한 마스크는 이곳의 필요한 분들께 잘 나눠 드리겠습니다. 님의 그 사랑이 이곳 분들의 가슴 속에서 더 큰 사랑으로 피어나길 고대합니다. 고맙습니다.

저작권자 © 자연치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