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한글을 지키고 갈고 닦은 건 독립운동

일제 때 조선어학회는 학문과 학술연구학회지만 보통 학회와 다르게 우리말과 글을 갈고 닦아 우리 얼을 살리고 지키는 일을 한 우리 겨레독립운동 단체이며 광복 뒤 나라를 세울 준비를 한 모임이었다. 처음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로 깃발을 들 때에는 모임이 작았지만 그 뜻과 목적은 매우 크고 거룩했기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모임 이름을 “배달말글몯음, 한글모, 조선어연구회, 조선어학회”들로 바꾸면서 끈질기게 버텼다. 조선어학회가 한 일은 평화로운 방법으로 한 독립운동이었고 조국 광복운동이었다. 일본 강점기에도, 미국 군정 때에도 건국 준비를 하고 겨레를 사랑한 으뜸 자주독립 모임이었다.

나라를 잃은 일본 강점기에 이완용 같은 기회주의, 이기주의자들은 일본을 제 조국으로 알고 일본에 충성하고 제 이익을 챙겼지만 조선어학회 사람들은 우리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우리 말글과 우리 얼을 지키고 갈고 닦았다. 그래서 나라를 되찾은 뒤에 우리 말글로 가르치고 배우고 생각하고 말글살이를 할 수 있었다. 조선어학회가 일제 강점기에 그렇게 안 했다면 오늘날도 조선시대나 일제 때처럼 한자 속에 살고 있을 것이다. 조선어학회 분들이 목숨까지 바치며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갈고 닦아 놓은 덕분에 광복 뒤부터 우리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왼쪽부터 일제 때 나온 ‘한글’지 창간호, 우리말 말모이 원고, 동아일보 한글날 특집호.
왼쪽부터 일제 때 나온 ‘한글’지 창간호, 우리말 말모이 원고, 동아일보 한글날 특집호.

한글은 훌륭한 글자인데 그 임자인 조선 사람들은 한글이 태어나고 400년이 넘게 한글을 업신여기고 한자를 더 좋아했다. 중국 지배를 받고 있는데다가 중국 문화와 중화사상을 숭배하는 무리들이 판치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고 대한제국 때부터 한글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그 깨달음이 물거품이 될 번했는데 1908년에 국어연구학회가 태어나서 한글을 살리겠다는 분들이 모였고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이들은 한글을 널리 쓰게 하는 연구와 활동을 했다. 그리고 주시경이 돌아가시면서 잠시 활동을 멈추었다가 1921년에 조선어연구회란 이름으로 다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1926년에 한글날(처음 이름은 가갸날이었다가 두 해 뒤에 한글날로 이름을 바꿈)을 만들고 한글날마다 먼저 한글을 살리고 빛내겠다는 다짐을 하고 한글을 널리 쓸 수 있도록 연구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사랑 정신을 알리고 심었다. 이 한글날은 바로 우리 겨레 독립을 다짐하고 건국을 준비하는 날이었다. 이 한글날은 우리 겨레에게 매우 기쁜 날이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이 한글날이 한글을 사랑하는 겨레를 모이고 뭉치게 해주었고 광복 뒤에도 우리말과 한글을 살리고 지키고 빛내게 하는 고마운 날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국경일이 되었는데 국경일 가운데 가장 경사스런 날이다.

이 학회는 1927년에는 ‘한글’회지를 만들고 오늘날까지 나오면서 한글 연구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한글을 알렸다. 1929년에 우리말 사전 편찬위원회를 조직하고 우리말 말광을 만들기 시작했고, 1933년 ‘한글맞춤법통일안’, 1936년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공표했다. 1940년에는 ‘외래어표기법통일안’을 제정했다. 그런데 1942년에 일제는 이 일을 하는 이들과 돕는 이들 48명을 홍원경찰서에 잡아다가 취조한 뒤에 서른세 분을 치안유지법 내란죄로 기소하고 함흥형무소에 가두었다. 이 때 모진 고문과 추위에 이윤재, 한징 두 분은 옥에서 돌아가셨다. 이른바 일제가 우리말과 겨레를 짓밟아 없애려고 만든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왼쪽은 표준어사정위원회 기념사진, 오른쪽은 정세권이 기증한 조선어학회 회관 터.
왼쪽은 표준어사정위원회 기념사진, 오른쪽은 정세권이 기증한 조선어학회 회관 터.

이 학회가 이렇게 큰일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은 학회 분들이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과 독립정신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이극로는 독일 유학을 마지고 귀국해서 대학 교수나 또 다른 직장에서 편하게 일하며 살 수 있었지만 우리 말글 독립이 더 중요하고 급하다고 생각하고 우리말 사전 만들기를 시작으로 학회 일에만 매달렸다. 정태진도 미국 유학을 다녀왔기에 더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었지만 이 학회에서 우리말 사전 만들기에 몸 바쳤다. 최현배, 김윤경, 이윤재 들들은 우리말 연구에 힘썼고 이우식, 이인, 김법린 들들은 학회 후원을 해주었다. 정세권은 학회 회관을 기증하였다. 이밖에 많은 분들이 우리말 독립운동에 힘쓰고 도와주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저작권자 © 자연치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